[Review] 남겨진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 연극 '미래의 여름'

글 입력 2020.08.1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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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에 비해 성숙한 초등학생 미래, 남모를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미래의 고모 동아, 마냥 해맑은 석우, 석우의 형이자 따뜻한 도시 남자 찬우, 그리고 그 밖의 어른들의 이야기. <미래의 여름>은 미래가 어른이 된 시점에서 초등학생에 겪었던 여름날의 기억을 풀어낸다.

  

 
관객들은 ‘이미래’라는 아이의 눈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신선하고 유쾌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 유쾌함은 곧 가슴을 아리는 먹먹함으로 바뀐다. 우리 사회가 잊고 살았던 소외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감성 힐링극인 줄로만 알았던 <미래의 여름>. “시골의 여름날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겠다.”라는 기대를 품고 간 나온씨어터. 시골에 가본 적이 거의 없는 나는 이 연극을 통해 시골 특유의 정겨움과 사람 냄새를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이 연극은 나의 기대에 부응하는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슬픈 감정을 안겨주었다.

 

그 이유는 미래가 들려준 고모 동아의 이야기가 너무나 안타깝고 씁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잊고 살았던 소외된 주변 사람 ‘동아’. 지금부터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동아의 이야기


 

나이 30이 넘도록 시골에서 떠날 생각이 없는 동아. 그리고 그런 그녀를 한심하게 여기는 어른들. 사실 그녀에게는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다. 10년 전, 연인인 그녀를 버리고 서울로 떠나버린 찬우를 기약 없이 기다린 것이다. 심지어 그녀를 위해 성공하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기고 간 그를 말이다.

 

그 당시 너무나도 어리고 순수했던 동아. 그녀에게 세상 전부와 마찬가지였을 남자가 떠났으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평생을 시골에서 살아온 그녀에게 찬우의 부재로 인해 찾아온 외로움과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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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좁은 시골에 갇혀 그의 동생인 석우와 흘려보낸 10년의 세월. 그 시간 동안 그녀는 많이 변했다. 누구보다 밝고 당찬 미래와 닮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가끔 찾아오는 가족들 외에는 누구와도 만나려 하지 않고 집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미래가 놀러 온 여름날. 우연히 찬우 역시 그녀를 찾아오게 된다. 십 년 만에 찾아온 그에게 동아는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아예 못 본 사람 취급해버리는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미래는 둘 사이를 이어주려고 노력한다.

 

결국, 미래의 노력으로 다시 마음을 연 그녀. 그러나 그는 또 한 번 충격적인 사실을 전한다. 다른 여자와 결혼 예정인 동시에 지적장애가 있는 석우를 시설로 보내기 위해 왔다고 말이다. 이에 자신 때문에 여기 있지 말고 떠나서 그녀의 인생을 삶을 살라는 충고까지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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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동아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버리고 소식마저 끊겨버린다. 그녀가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관객에게 맡기는 열린 결말로 끝나는 것이다. 참으로 씁쓸한 마무리였다.

 

 

 

어른이라고 해서 성숙할 필요는 없어


 

같은 시골에서 자랐지만, 찬우와 동아는 다른 삶을 선택했다. 성공을 위해 서울로 떠난 찬우와 시골에서 안주하며 살아가는 동아. 살아가는 환경의 변화로 인해 달라진 두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찬우가 동아에 큰 상처를 남겼고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 찬우 같은 인물이 있다면 비난할 수 없을 것 같다. 현실과 많이 닮아있는 인물이니까. 오히려 동아를 별종 취급하겠지.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한심하다 여길 이유는 없다.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도 괜찮다. 이겨내든 이겨내지 못하든 그건 남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가장 순수한 어른일지도 모르지.

 

우리는 어른이라면 성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며, 그로 인해 더욱 아름다운 존재인데도 말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계획된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 어른이라면 난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되지 않는가.

 

 

 

그들의 연기에 빠져들다


 

내가 본 연극 중에 배우들의 연기력이 가장 뛰어났다. 모두가 온전히 그 캐릭터가 된 느낌이랄까. 그 순간만큼은 극 속의 인물로 빙의한 것 같았다.

 

미래 역을 맡은 김희정 배우가 성인이다 보니 초등학생을 연기하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내 기우에 불과했다. 진짜로 몸만 큰 초등학생 같았다. 어른과 아이를 교차하는 연기가 미묘하게 달라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 역의 한송희 배우는 작가를 겸하셔서 그런지 캐릭터 해석이 확실했다. 이해도 높은 섬세한 연기에 깜짝깜짝 놀랐다. 작은 떨림이 전달될 때마다 슬픔이 더 극대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찬우 역을 맡은 김호진 배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교적 후반부에 등장했지만, 연기하는 순간 극의 흐름을 가져와 자신의 무대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지적장애가 있는 석우를 맡은 김방언 배우. 그리고 멀티맨을 맡은 장세환 배우. 둘의 연기는 극을 한층 더 빛내주었다. 두 분이 나오실 때마다 관객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톡톡히 해낸 감초 연기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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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여름날은


 

무엇보다 무대연출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다. 시골의 여름날이 배경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초록빛이 가득했다. 또 전형적인 시골집의 풍경을 그대로 가져다 놨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잔잔한 분위기 속 흘러나오는 라디오 음악, 여러 만화와 잡지가 가득 찬 그 공간에 빨려 들어가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실제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한 것? 예를 들면 물수제비 같은 것 말이다. 이를 몸짓과 음향으로 표현하여 관객들이 상상하게 해주었다. 눈앞에 없어도 그려지는 느낌이 들었달까. 좁은 공간 속 드넓은 풍경이 펼쳐졌다. 그들의 스토리텔링으로 불어오는 나는 나무 밑에 앉아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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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감성이 담긴 극이다 보니 내가 공감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30~40대를 겨냥한 연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코믹 요소가 등장하는 부분에 같이 웃을 수가 없으니 조금 아쉬웠다. 어느 순간 그때의 향기로 빠져드는 분들을 보며 부럽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연극은 처음이었다. 항상 흥미롭거나 스릴 넘치는 연극만 봐왔기 때문에. 깊은 감정의 깊이를 느낀 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더욱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에 남은 여운과 그 공기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몇몇 분들이 훌쩍거리는 소리에 끝나도 끝나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의 삶을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한송희 작가가 쓴 극본에 걸맞은 연극이었다. 우연히 진정한 어른의 세계를 알게 된 미래. 어린 미래를 보는 어른 미래가 전하는 방식이 참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결말이 맘에 들었다. 주변에 동아 같은 사람이 나에게도 생긴다면 절대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지. 어렸던 미래가 놓친 동아를 내가 대신 붙잡아 주고 싶다.

   

 

“고모가 어떻게 살고 있는진 몰라요. 근데 저는 그 여름이, 고모가 자꾸 떠올라요.”

 

  

 

미래의 여름

 다시 보면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일자 : 2020.07.30 ~ 2020.08.16

시간
월, 수, 목, 금 오후 8시
토 오후 3시, 7시
일 오후 3시
화 공연 없음

장소 : 대학로 나온씨어터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주관

창작집단 LAS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관람연령
14세 이상(중학생 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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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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