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수밤바다 2. [여행]

글 입력 2020.08.1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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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에서 끊이지 않는 맥주 공급을 목적으로 움직였던 반면, 언니의 목적은 그 장소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을 먹는 일이었다. 관광지의 소문난 맛집이 그렇듯 다들 유명세에 비해 그렇게 엄청난 맛은 아니었지만, 나는 가리는 것 없이 언니가 고른 식당을 따라다녔다. 여수하면 바닷가, 바닷가 하면 회. (나는 몰랐지만) 언니가 여수에서 가장 원했던 건 회였다. 하지만 불꽃놀이가 끝나고, 늦은 저녁 시간에 낭만 포차 거리에 갔을 땐 이미 대부분의 횟집이 만석이었다. 식당마다 자리가 없는지 사람들은 거리까지 나와 매운탕이니 소주를 먹었고, 아주 시끄러웠고,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난데없이 내 팔을 잡아당기고 끄는 바람에 기겁 했다. 그 거리의 횟집은 모두 협소한 공간 안에 얼마나 많은 인원을 집어넣을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자리처럼 보였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랑 등이나 팔을 부딪치면서 먹고, 큰소리로 종업원을 불러야 하고, 소음에 시달리면서 비싼 음식을 먹느니 아무도 없는 편의점에서 오징어땅콩이나 먹고 싶었다. 내 인생에 맛집을 가겠다고 줄 서서 기다려본 적이 없는데, 이번 여행에선 언니를 위해 몇 번이나 참고 기다렸으니 이 정도면 되지 않나. 내가 생선을 잡으러 가면 갔지 저 콩나물 시루같은 식당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언니한테 어떻게 설명하지. 언니도 나만큼이나 북적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조금만 옆으로 가면 파리 날리는 널찍한 호프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불편하게 회를 먹느냐 편하게 맥주나 마시느냐. 고뇌에 빠진 언니의 옆에서 나는 은근슬쩍 계속 호프집에 가자고 바람을 넣었다. 언니는 마침내 “그래, 생맥주나 먹으러 가자.”라고 말할 때까지. 나는 두 번 물어볼 것 없이 호프집으로 갔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어떤 사악한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고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폭염에 수분은 족족 땀으로 빠져나갔고, 우리 등짝에 그려진 화투패도 밤이면 습기와 땀에 젖어서 흐리게 번졌다. 넓고 쾌적한 곳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쉬는 일은 내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완벽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언니는 호프집에 들어와 생맥주 500리터를 신나게 들이키다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사례가 들릴만큼 뱉을만큼 놀라서 허둥지둥거렸다. 아니 누가 그랬어. 왜 울어.

 

“여기까지 와서 회를 못 먹고 가다니..!”

 

언니는 구겨진 휴지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울었고,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나는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서 해산물이라면 물리도록 먹었다. 누가 회를 못 먹어서 울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럼 지금 먹으러 가!”

“아니야, 이미 배가 불러...”

 

물론 단순히 회 때문은 아니었다. 언니가 슬퍼한 건 여행을 하면 으레 성취할 법한 일들, 바닷가 회 먹기나 불꽃놀이 보기, 관광 명소 둘러보기 같은 일 중 하나를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진작에 콩나물 시루 속에 뛰어들어 부대끼면서도 회를 먹자고 언니를 끌고 갔어야 했는데. 다른 사람의 속내를 아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성공적인 여행을 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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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욕심으로 언니에게서 회를 뺏어서 그런지, 나는 그날 지갑을 잃어버렸다. 오 년 동안 쓴 지갑인데 호프집에서 항구로 향하는 길 어드메에서 사라져서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때 우리는 이미 얼큰하게 취한 상태여서 길바닥을 쓸고 다니며 지갑을 찾았지만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드니 어느샌가 배가 묶여있는 항구에 도달했고, 우리는 항구 끄트머리에 앉았다. 배들이 서로 묶여 덜그럭거렸고, 발 밑에서 바다가 찰랑거렸다. 흙먼지가 묻은 내 다리도 밤바람에 맞춰 흔들거렸다. 언니가 운 게 한 시간 전인데, 그 짧은 사이에 나는 땡전 한 푼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밤은 습했고, 수평선은 고요했으며 나는 세상의 아주 먼 곳까지 보이는 듯한 몽롱한 느낌이 들었다. 언니는 옆에서 코를 훌쩍였고, 곧 죽어도 여기서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를 들어야겠다고 주장했다. 너무 진부하지 않아? 내가 물었지만, 우리가 여기서 진부한 관광객말고 무엇이 더 될 수 있단 말인가. 회를 먹고, 불꽃놀이를 보고, 여수밤바다를 듣고. 괜히 이런 진부함을 피하겠다고 인기 없는 식당을 고집했다가 언니를 울리는 바람에 죄책감만 더 늘었다. 옆에서 스무 번 정도 반복재생되고 있는 장범준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내게 멍청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언니, 우리 하루 더 있다가 회 먹고 가자.”

“부산은 어떡하고?”

“취소하면 되지. 시간 많잖아.”

“나은아, 너 이제 돈 없잖아...”

 

사실 그 순간 나한테 그런 건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돈이야 어떻게든 되겠지(전혀 어떻게든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언니한테 회를 먹여야 한다구. 내 두뇌가 온갖 비합리적인 시나리오를 짜고 있는데, 어쩐지 왼쪽 발바닥이 시원했다. 샌들이 사라져 있었다. 갈색에 파란 끈이 발목을 감고 있는, 일 년 전에 인터넷에서 만오천원 주고 산 샌들. 그 샌들은 서울에서 여수까지 하루에 만 이천보씩 걸어다니느라 이미 낡아 있었고, 길바닥에 주저 앉아 지갑을 찾는 사이 한계에 도달했다. 그러다 내가 항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신나게 다리를 흔드는 바람에 왼쪽 샌들이 중력과 바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미 떨어진지 꽤 된 것 같았다. 핸드폰 후레시가 비춘 창백한 바다에서 내 왼쪽 샌들은 이미 두둥실 떠가고 있었으니까. 밑창은 물에 잠기고 앞코는 살짝 위에 뜬 채로. 저거 내 신발이야. 내가 어리둥절하게 그걸 보고 있는 동안 언니는 항구가 떠나가라 웃었다.


“...언니, 저거 내가 가져올 수 있을까?”

“아무리 너라도 저건 안 돼. 보내줘야 해.”

 

언니가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내 등을 툭툭 쳤다. 뛰어들까 말까. 밤이었고, 내 사고능력은 알코올에 흠뻑 젖었고, 정체 모를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가여운 내 왼쪽 샌들은, 내게 그만 돌아가라고 말했다. 집을 나선지 일주일. 이제 나는 돈 한푼 없이 신발 한짝만 신고 기우뚱하게 항구에 서 있었다. 그 꼴을 못 봐주겠다는 듯 샌들은 점점 시야에서 사라진다.

 

나는 멀리 떠나는 언니에게 완벽한 마무리를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결국 우리가 한 건 기다리고, 헤매고, 중요한 걸 잃어버리고, 술에 취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더 간다는 건 이 흥청거림을 조금 더 이어간다는 말일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여행 내내, 낮이면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밤이면 세상 끝까지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신발 떨어진 맨 발바닥으로 멀뚱히 서 있으니, 나를 폭염 아래서 계속 움직이게 했던 동력이 순식간에 푸쉬식 꺼졌다는 걸 알았다. 여행을 끝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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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젊고, 어디든 갈 수 있다. 그해 여름 내 속에선 이 감각이 술기운처럼 몸을 타고 돌았다. 이역 만리의 해외도 아니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집을 두고서 왜 이런 무대뽀 감정에 사로잡힌 걸까? 그건 이 여행이 갑자기 즉흥적으로 떠난 배낭 여행이자, 해외처럼 이동하는 과정이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캐리어를 풀 필요도, 공항 시간에 신경쓰며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떠날 때 그랬듯이 돌아갈 때도 배낭을 들고 아무 기차역으로 가기만 하면 됐다. 그 간편함. 허공에 붕 떴다가 눈을 뜨니 해외 낯선 곳의 이방인으로 도착할 때 느낄 법한 그런 두근거림은 없었다.

 

대신 딱정벌레처럼 땅에 딱 붙어서 계속 이동하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그 때 알았다. 기차, 자동차, 버스 무엇이든 순간순간 변하는 풍경을 보고 망설임 없이 앞으로 계속 움직일 수 있다. 적당히 낯설고 적당히 익숙한 한국의 풍경 속에서, 여기가 마음에 안 든다면 가방을 들고 다시 떠나면 됐다. 나는 스물 한 살이었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있던 것도 여행 도중에 잃어버렸다. 젊어서 여행이 중요하다는 건 이 때문일까. 사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어디로 갈까만이 그 날의 문제일 때, 미래는 더이상 내가 신경쓸 일이 아니다. 집에서 하던 고민들, 돈과 취업과 내 장래과 기대에 못 미치는 인생에 대한 걱정이 뒤에 놓였다. 우리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그렇기에 흐르는 물처럼 자유로웠다. 돌아보면 어이없을만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그 때를 떠올려보면,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익명의 사람들도 맨얼굴로 말하고 움직이고 밥을 먹는다. 그렇게 부대끼고 만지고 시끌벅적 떠들면서 여행하던 시절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코로나가 앗아간 것 중 하나에는 젊다는 느낌이 아닐까.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지 않고 문어발처럼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는 능력, 매이는 것 없이 훌훌 털고, 새로 시작하는 느낌. 이는 지금 시기에 가장 필수적인, 책임이나 의무같은 단어와 반대되는 것들이다. 그 폭염 속에서 언니와 내가 했던 온갖 고생과, 우리에게 있는지도 몰랐고, 잃어버릴 줄도 몰랐던 그 무아의 감정이 그리워지다니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집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데도.

 

이렇게 그리워지기 시작할 때가 가장 조심해야 할 때다. 이 때 내 속의 얼간이가 눈을 뜨고 옆구리를 찌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갈까?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더 멀리, 더 제 정신이 아닌 채로. 눈 딱 감고 한 번만 더 죽어라 고생하고 오는 거야. 그러면 난 다시 오만상을 찌푸리고 도로변에 서 있게 된다. 매번 내 멍청함을 후회하면서.

 

이젠 나도 나이를 먹었다. 돈도 시간도 체력도 없다. 모두가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온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다음날 여수에서 서울까지 오는 내내 난 마트에서 산 삼선 쓰레빠를 신고 있었다. 남은 오른쪽 샌들은 항구에서 숙소에 오는 길 어딘가의 쓰레기통에 버리고. 벌써 집에 도착한 듯한, 내 발을 감싸는 쓰레빠의 익숙한 쿠션감.

 

결국 무엇이 남았을까. 언니는 빨간 플라스틱 병따개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호주로 떠났다. 내가 회를 사줄 수도 없고, 회같은 건 먹지도 않는 나라로. 나는 삼선 쓰레빠와 함께 한국에 남았다.

 

돌아오면 내가 꼭 회 사줄게. 하고 약속했지만 세상사는 이상하게 흘러서 우리의 재회는 자꾸만 미뤄진다. 화투패가 흐리게 번진 셔츠는 옷장 구석에 처박혀 있고, 맥주는 맛이 없고, 인생은 지루하고. 밤이 되면 언니에게 시시한 연락을 하고 싶어진다.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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