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식물처럼 사랑하기 - 로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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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년 하반기 문단을 가장 크게 흔들어놓은 작가 중 한명이다. 이 신인 작가는 오늘날 우리 문단에 불어온 신선한 바람이다. 김초엽이라는 작가, 그리고 그녀의 작품이 문단과 독서에게 가져다 준 충격은 굉장히 복합적인 것이라서 한 편의 짧은 글로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일단 일반적인 등단 루트가 아닌 ‘한구과학문학상’을 통해 처음으로 작품을 대중에 선보였다는 점, 문학도가 아닌 이공계 연구원 출신이라는 점은 문학 독자층으로 하여금 매우 흥미롭게 다가온다.
작가의 출신에서 눈을 돌려 작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면 놀라운 점들이 더더욱 많다. 문단에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녀의 단편 작품 7편이 실린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심지어 알라딘에서 선정한 ‘2019년 올해의 책으로 뽑히며, 단순히 베스트셀러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넘어서 문학 시장의 가장 대표적인 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작년 하반기와 올 상반기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가 일제히 진열된 장경을 기억할 것이다.
한편 SF 소설이라는 장르를 고려할 때, 그녀가 이룩한 결과는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김초엽 특유의 서술을 통해 한국 문단에서 비주류 장르로 여겨지던 SF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2017년에 「관내분실」로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에 이어 2019년에 ‘올해의 책’에 선정되면서, 김초엽은 2010년대 후반 문단에 장르소설, SF 소설이라는 새로운 경향을 유행시키게 된다. 기존 SF 소설들이 장르적 색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과 달리, 김초엽은 오늘날 독자의 감정을 SF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문학 독자와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여성 SF 작가라는 점 역시 주목할 가치가 있다. SF 소설이라는 장르는 젠더적으로 오랜 시간 남성성이 강한 장르로 여겨져 왔다. 여기에 여성 작가의 서술로서 의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도 높이 평가될 만하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 이로부터 오늘날의 독자와 오늘날의 사회에게 있어 중요한 이야기, 중요한 질문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지면에 발표된 (다시 말해 아직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않은) 그녀의 단편 소설 「로라」를 소개하고자 한다. 「로라」는 2019년 11월에 문학웹진 《비유》에서 발표된 작품으로, 그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출간된 뒤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녀가 새로운 소설을 출간하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이고, 새로운 작품집이 출간되어서야 서점에서 「로라」를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웹진 《비유》는 인터넷을 통해 별도의 비용 청구 없이 접근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 그녀를 비롯한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의 발표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서 김초엽 작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독자는 물론이고, 아직 그녀의 소설을 만나보지 않았지만 이 글을 읽고서 그녀의 작품 한 편을 읽어보고 싶다면 웹진 《비유》 홈페이지에 접속해 단편 소설 「로라」를 만나보길 바란다.
웹진 《비유》 2019년 11월호 표지
「로라」는 주인공 ‘진’이 그의 애인이자 ‘고유수용감각’이라는 인간의 고유한 감각에 장애를 가진 인물인 ‘로라’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펼치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유수용감각’은 인간이 자신의 몸과 신체기간을 인식하는 능력을 뜻한다(고 소설에서 소개하고 있다). 고유수용감각이 정상적인 인간은 눈을 감고 있어도 자기의 양팔과 양 다리, 자신의 신체 기관이 어디에 있는지 느낄 수 있으며, 이 감각을 통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유수용감각이 어긋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과 자신의 인식이 ‘불일치’된 느낌을 안고 산다. 소설 속에서 고유수용감각이 어긋나 있는 ‘로라’는, 자신에게 세 번째 팔이 존재해야 할 것처럼 느끼지만 자신에게 팔이 두 개밖에 없어서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궁극적으로 인조 팔 수술을 통해 세 번째 팔을 만들고 싶어 한다.
진은 그러한 로라를 이해하지 못한다. 대화를 나누며 로라의 상태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지만 로라의 상태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진은 로라를 이해하기 위해 고유수용감각 장애를 호소하는 전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보기 위해 일주에 떠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책을 집필하며 로라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더욱 노력한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진은 로라의 감정에 완벽하게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사랑은 이해나 공감과는 다른 것이라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진의 순수한 사랑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작가 특유의 서술 속에서 드러난다.
김초엽이 소설 속에서 그리고 있는 풍경은 우리의 기억 속, 선입견 속의 SF 작품들이 그리는 풍경과는 현저히 다르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SF 영화에는 《가타카》나 《아일랜드》, 《인터스텔라》가 있고 SF 소설에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이 있을 것이다. 이 작품들 속에서 SF적인 요소는 세계의 형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새로운 세계관과 사회구조 속에서의 인간 군상의 모습과 다양한 갈등을 그려낸다. 이들 이야기에서 과학기술은 획기적이고 충격적인 것으로 묘사되며, SF 소설의 주인공들은 새로운 기술사회의 등장에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그러나 김초엽의 ‘SF스러움’은 거대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로라」에서 주인공 진의 관심사는 오직 로라와 그녀의 불일치된 감각이다. 작가의 서술은 과학기술 자체의 충격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다만 고유수용감각이 무엇인지 담담하게 서술한 후, 두 주인공이 주고받는 미묘한 감각에 집중할 뿐이다. 결국 김초엽에게 있어서 과학이라는 소재는 소설의 관심 영역을 이들 둘만의 세계로 국한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문학에 있어서 SF적인 요소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거대한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과학의 급격한 발전에 따른 사회 구조의 변화를 사람들이 피부로 느껴왔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기술은 세계의 변화에 있어서 가장 큰 추동력을 제공해 왔고, 그래서 소설에서 과학기술은 세계와 사회, 그 속의 거대한 갈등과 부조리를 보여주는 역할을 해왔다. 90년대 이후 문학에서 SF소설이 한국 문학 시장에서 주류적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비로소 개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문학계에서 과학기술의 이야기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 속에서 김초엽은 SF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내었다. 그녀의 서술 속에서 과학적 이야기는 거대한 사회의 이야기와 분리된다. 그녀는 과학과 세계라는 거대한 서사에서 벗어나 개인과 개인 사이의 유의미한 지점을 짚어주고 있다. 과학은 더 이상 우리의 생활양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무서운 대상이 아니다. SF는 오히려 개인과 개인의 갈등을 새롭게 조명해주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오늘날 김초엽의 작품과 문학 독자들의 반응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이러한 변화들이 나의 눈에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김초엽을 통해 서술되고 있는 SF 소설을 젠더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김초엽은 SF의 관심영역을 세계에서 자아로 전환시켰다. 여기에서 기존의 남성 SF 작가들이 가닿지 못한 영역, 반대로 김초엽의 작품이 도달할 수 있었던 영역이 드러난다. 거대한 사회, 그리고 이를 돌파해나가기 위한 의지와 같은 것들은 전통적으로 남성성이 강한 것으로 치부되어 왔고, 남성 SF 작가들은 이 지점을 건드리고 있었다. SF 작품의 독자층 역시 한국 주류 문단 문학과는 반대로 남성 독자가 더 많았으며, 이러한 특징들은 SF 시장을 한국 문단과 분리된 매니악한 장르로 분류하는 근거가 되었다.
김초엽이 SF 소설에 새로운 국면을 불러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개인적 서사를 세심하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SF 소설들과 달리 그녀는 거대 구조에 가려져 있던, 가장 내밀한 개인의 이야기를 이끌어내어 소설에 담았다. 우리 문학 시장에서 여성 문학이 하나의 주류적인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김초엽이라는 신인의 소설이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이러한 문학 시장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문단의 훌륭한 여성 작가들은 오늘날 인간을 바라보는 가장 세심한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경직된 사회구조 속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외면되고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들을 포착한다. 최근 몇 년간 작가와 독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폭발적으로 활발해졌고, 외면된 인간의 권리들이 비로소 소설에 담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인의 사회 극복을 드라마틱하게 다루는 (젠더적으로 남성스러운 것으로 간주되는) 기존의 서사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들은 오늘날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김초엽은 이러한 섬세한 관점을 SF 소설 속에 만들어냈다. 김초엽의 소설은 섬세하다. 과학은 (일반적으로) 발전과 혁신인 동시에 파괴이기도 하다. 과학의 폭력성을 지워낸 SF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소설은 우리 문학에 새로운 빛이 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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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의 이야기가 SF라는 바탕 위에 서있지만,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일상적 감정과 떨어져 있지 않다. 그녀의 소설은 말하자면, 오늘날의 작가가 오늘날의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섬세한 질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권력과 폭력이 계승되어 온 공간이다. 이러한 구조는 현재에 와서 불평등, 구조적 차별의 형태로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한동안 주류적인 문단의 작품들은 개인을 이러한 구조 속에 위치시킴으로서 개인의 삶을 거대한 권력의 영향 하에서 조망해왔다.
그들과 비교하자면 「로라」는 이러한 문단 문학의 반대편에 서있는 느낌을 준다. 그녀의 이야기는 한없이 커다란 권력의 풍경을 담지 않는다. 다만 두 사람을 그릴 뿐이다.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일상적인 감정들이 펼쳐진다. 이러한 감정과 부조화는 권력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사랑의 풍경 속에서는 모든 거대한 권력은 사라지고 두 사람만이 남게 된다. 과학적 소재는 비현실적이지만 명시적이다. 소설 「로라」는 어쩌면 사랑의 풍경에 만연하게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목되지 못한 오묘한 감정선을 과학이라는 수단으로 포착했는지도 모르겠다. 「로라」 속 ‘고유수용감각’은 우리 현실 속에서 또다른 형태의 갈등으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김초엽은 두 사람의 ‘과학적’ 갈등 구도를 통해 독자에게 ‘현실적’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김초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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