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낭만, 우울, 그리고 녹색광선 [영화]

영화 녹색광선을 본 후
글 입력 2020.08.1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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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따르면 녹색광선은 그것을 본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의 감정 속에서 더 이상 속지 않게 해주는 효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광선이 나타나면 헛된 기대와 거짓말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일단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게 된다.”
 

 

위 구절은 해저 2만리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쥘 베른의 소설 <녹색광선>의 일부이다. 아주 맑은 날의 해질 무렵, 수평선 너머 찰나의 순간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신비로운 녹색의 빛 줄기. 이 환상 같은 이야기는 그렇게 에릭 로메르의 <녹색광선>의 토대가 되었다.

 

누벨바그의 대표감독 에릭 로메르에게 제4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겨준 이 영화는 ‘델핀’이라는 한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여름휴가를 앞두고 원래의 계획이 틀어진 델핀은 어쩔 줄 몰라 한다. 새로운 남자를 소개시켜준다는 친구의 제안도, 함께 떠나자는 가족의 제안도, 이도 저도 아니면 혼자 떠나라는 주변 사람들의 제안까지도 모두 거절한다.

 

함께 놀러 간 친구의 집에서는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다 떠난다. 혼자 놀러 간 해변에서도 다가오는 이들에게 융화되지 못하고 도망쳐버린다. 영화 내내 그녀는 계속 도망치고 또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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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본 후 다른 이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래서 많은 글들을 찾아보았다. 델핀에게 공감을 하는 이들도, 그녀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며 답답함을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의 경우는 전자에 가까웠다. 그리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델핀에게서 자신을 보았으리라. 많은 글에서 델핀을 소심하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스스로를 투영해 보이는 이들 또한 이런 유형의 사람인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델핀까지도 말이다.

 

얼핏 보기에는 충분히 그래 보인다. 영화 내내 델핀은 끊임없이 도망가고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늘 자신의 의견을 잘 전달한다. 할 말이 있음에도 무작정 입을 다물고 있지도 않고 싫다는 말을 못해 억지로 끌려 다니지도 않는다. 마지막 남자와의 이야기는 주도하기도 한다. 이런 이를 사회부적응자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낭만이라면 낭만일 것이다. 단지 델핀이 원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이다. 내 안에 너무 많은 내가 있다는 말처럼 그녀는 다분히도 복잡스런 사람이다. 델핀이 가장 행복해 보인 순간은 영화의 엔딩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한 모습은 눈물을 흘리던 장면들이다. 델핀의 눈물 앞에서 사람들은 당황한다. 그리고는 ‘도대체 왜 그래?’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도대체 왜, 왜 우는 거야? 이들은 평생 이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델핀 그녀 자신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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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울음에서 그녀는 사는 게 지루해ㅡ라고 말한다. 거기에 아일랜드로 함께 휴가를 떠나자는 가족들의 제안을 왜 거절했는지 자신도 모르겠다고 한다. 델핀은 비눗방울처럼 얇고 섬세한 사람이지만 쉬지 않고 고민한다. 이 세상은 무엇이며, 이 곳에서 나의 존재는 어떤 의미이며, 그 의미 속에서 내가 찾는 것은 어떤 것인지 말이다. 고요하거나 안정되어 보이는 이들은 두 가지 부류일 것이다. 고민하지 않거나, 이미 고민을 끝냈거나. 늘 자아의 존재를 찾아 떠나는 이의 마음은 전쟁터 자체이다.

 

사람들은 이런 그녀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을 뿐인 그녀에게 비난 아닌 비난을 쏟아낸다. 만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그녀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비웃는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느낌을 싫어한다. 델핀의 생각이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며 걱정을 핑계 삼아 비난한다. 논쟁적인 상황에서 델핀은 늘 별난이로 취급당하며 생각을 강요 받는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더 자신의 안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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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에서 델핀은 결국 녹색광선을 마주한다. 눈물을 흘리며 감격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와 주변사람들은 계속해서 남자 이야기를 한다. 인연을 찾는 것, 새로운 남자 등등. 마지막 순간에도 그녀는 남자와 함께한다. 그러나 그렇게 모두가 외치는 남자들은 영화에서 별다른 힘을 가지지 못한다. 애초에 델핀의 우울은 그곳에서 오는 게 아니었기에.

 

마주하는 순간 상대방의 마음을 정확히 읽을 수 있다는 녹색광선이지만, 그녀가 그리 기뻐한 건 그들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사람들과의 소통의 부재가 아닌, 자아와의 소통의 의지, 그것이 바로 델핀이 지녔던 모든 낭만과 우울의 근원이다. 결국 마지막의 녹색광선은 델핀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바라보게 해주는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델핀에게서 자신을 보았던 이들을 위해, 반 고흐에게 바쳐졌던 올드팝의 가사를 다시 바친다.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이 세상은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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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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