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반니의 방 [도서]

제임스 볼드윈, 『조반니의 방 GIOVANNI’ S ROOM』
글 입력 2020.08.1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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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책을 둘러보던 어느 날, 하늘색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색은 예뻤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표지는 참 단순했다. 하늘색 바탕 위에 닫힌 창문 하나와 살짝 틈이 벌어진 창문 하나가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창 안에 뭐가 있는지 일말의 힌트도 없었다. 창 안은 그저 검은색으로 칠해놓았으니까. 마치 불 꺼진 방, 아무도 살지 않은 방 같았다. 창문 위와 밑에 각각 한글과 영어로 조반니의 방 GIOVANNI’S ROOM이라 적혀 있었다. 책을 읽게 된, 지극히 단순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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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인연


 

소설의 주 무대는 프랑스 파리이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프랑스에서 만난 여자친구 헬라에게 결혼하자고 하지만, 헬라는 자아를 찾아 떠나고 싶다는 말로 데이비드의 말에 대한 답을 미뤄놓고 혼자 스페인으로 떠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데이비드는 돈이 떨어져 가게 된다. 미국에 있는 가족을 떠나 홀로 파리에 왔지만 직장을 구하지도 못했고, 그럴 시도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에 벌어놨던 돈 또한 아버지가 맡고 있었는데, 돈을 찾으려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야 했고, 편지를 쓴다 해도 당장이라도 아들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길 바라던 아버지는 쉽게 돈을 보내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데이비드는 돈을 빌리러 자크를 만나게 된다.

 

데이비드는 자크와 함께 게이바를 운영하는 기욤의 가게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거무스름한 피부에 위풍당당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탈리아인인 조반니를 만나게 된다. 동성애자였던 자크는 조반니를 처음 보는 순간 그를 마음에 들어 했고, 조반니와 같이 술 한 잔하고 싶어 데이비드에게 한 번 말을 걸어보라고 한다. 데이비드는 처음에 싫다는 식으로 얘기하다가 어쩔 수 없이 조반니에게 말을 걸게 되고, 점차 그에게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자신에게 여자친구인 헬라가 있음을 상기하며 조반니에게 향하는 호기심을 부정한다.

 

그런 데이비드의 상황을 모르는 조반니는 데이비드가 마음에 들어 적극적으로 그에게 호감을 표현한다. 바의 영업이 끝나고 조반니, 데이비드, 자크, 기욤은 2차를 가게 되는데, 2차에 가서도, 그리고 조반니의 방에 들어가서도, 데이비드는 계속 조반니에 대해 알 수 없는 마음을 부정하길 반복한다.

 

 

그가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끌어안았다. 그 몸에서 배어나는 시큼한 땀처럼 내게 스며드는 그의 고통이 느껴져서, 안타까워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서는 뜨악스러운 회의감과 경멸감이 들었고, 예전에는 어째서 그를 강하다고 생각했던가 싶어 의아하기도 했다.

 

- 『조반니의 방』, p206

 

 

돈이 없어 원래 살던 곳에서 나오면서 데이비드는 조반니와 함께 살게 된다. 그리고 하루의 반 이상을 조반니의 방에서 보내면서,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조반니에 대한 생각을 부정하고 누르고, 번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조반니가 일하던 바에서 해고를 당하게 된다. 기욤이 조반니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그를 해고해버린 것이다. 해고 당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도둑놈, 남창으로 오해받은 채 갖은 수모를 겪은 조반니는 그날을 계기로 데이비드에게 더욱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곧 데이비드는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는 헬라의 편지를 받게 되고, 헬라가 돌아오는 당일 말없이 조반니를 떠난다. 조반니에게 말 하나 하지 않고 그를 떠난 지 며칠 되던 날, 우연히 서점에서 헬라, 데이비드, 자크, 조반니가 마주하게 된다.

 

데이비드는 조반니의 방에서 물건을 가져오기 위해 오랜만에 그의 방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들어본 적 없던 조반니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된다.

 

 

기껏 만난 연인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내가 알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사람이라니. 당신은 모르지, 그렇지? 밤에 누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느라 잠도 못 자고 누워 있는 기분이 어떤 건지? 당신은 절대로 모를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당신은 끔찍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몰라. 그래서 그런 식으로 웃고, 그런 식으로 춤추고, 그 짧은 머리에 동그란 얼굴의 여자애와 하는 희극 연기를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 『조반니의 방』. p272

 

 

조반니의 이야기를 들은 데이비드는 그에게 삶을 함께 할 수 없다며, 돌아오지 않을 거란 말을 남기고서 또다시 떠난다. 헬라가 돌아온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던 때, 데이비드는 다른 사람을 통해 조반니가 다시 기욤의 바에서 바텐더로 일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듣게 된 일주일 후 기욤이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범죄는 아니지만, 혐오의 대상이었던 독특한 취향(동성애)과 외국인이라는 조반니의 신분은 그를 뒤쫓아 결국 사형대 앞으로 내몰게 된다.

 

조반니의 처형 날이 가까워질수록 데이비드는 헬라를 방치하기 시작했고, 결국 헬라에게 조반니에 대한 사랑을 말하게 된다. 헬라가 떠나고 홀로 남겨진 저택에서 데이비드는 그제야 자신이 조반니를 사랑했으며, 앞으로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다시는 누군가를 그처럼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실이 내게 큰 안도감을 줄 수도 있었으리라.

 

- 『조반니의 방』, p218

 

 

 

상징적인 의미 : 조반니의 방


 

『조반니의 방』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먼저 작가 제임스 볼드윈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다.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백인으로 봤을 때 당연하게도 작가 또한 백인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제임스 볼드윈은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흑인 작가들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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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볼드윈은 1924년 할렘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난한 목사이자 공장 노동자였던 의붓아버지와 젊은 어머니 밑에서 많은 형제들과 자랐다. 그는 집안에서는 무뚝뚝하고 폭력적인 의붓아버지에게, 집 밖에서는 공기처럼 만연한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작가의 꿈을 펼치기엔 힘들었다. 그는 재능이 있음에도 부모의 지원을 받기는커녕 흑인이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상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졸업하자마자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부당한 해고와 조롱을 당했으며, 각종 시설에서 쫓겨나는 경험을 반복했다.

 

이런 경험을 겪은 그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건 당연한 일이었다. 볼드윈은 자신이 앞으로 어떤 글을 쓴다 해도 미국 안에 있는 한 ‘작가’이기 전에 언제나 ‘흑인’이라는 이름표가 앞설 것이라 예감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로 떠나 인생의 절반을 거기서 보냈다. 어쩌면 『조반니의 방』의 배경이 프랑스 파리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볼드윈은 유색 인종일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였다. 하지만 그는 ‘흑인 작가’라는 이름표를 거부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게이’라는 개념과 등치 시키지 않았으며,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흑인이기에 미국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였고, 게이이기에 흑인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였으며, 또 흑인이기에 게이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인이기에 프랑스 사회에서도 아웃사이더였다. 그의 세상은 모두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그나마 미국보다 프랑스 파리가 성소수자들에게 관용적인 편이었기에 볼드윈은 파리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조반니의 방』에 나오는 주인공 데이비드는 백인으로 묘사된 걸까?

 

파리에 체류하고 있는 미국인 남성 데이비드는 언뜻 봤을 때 볼드윈과 비슷한 입장이지만, 인종의 차이에서부터 볼 수 있듯이 데이비드가 볼드윈을 나타내는, 그런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데이비드는 동성인 조반니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만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부인하는 인물이며, 그로 인해 끊임없이 방황한다. 그가 뉴욕에서 파리로 도피한 것도 10살쯤에 있던 일(동성에게 성적으로 끌렸던 일) 때문이다. 또한 소설 중후반에 파리에서 프랑스 남부 시골로 도피하는 것도, 남부 시골에서 니스의 해안으로 자꾸만 도피하는 것도 모두 그의 방황을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에서 지내는 동안 난 깨달았어. 내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소속되기 전에는……아니, <헌신>하기 전에는, 난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것.

 

- 『조반니의 방』, p246

 

 

그냥, 내 인생 이야기를 하는 거야. 이제 내겐 당신이 생겼잖아. 내가 돌보고, 먹이고, 괴롭히고, 속이고, 사랑할 사람. 내가 견뎌 내야 할 사람. 이제부터 나는 여자로서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거야. 그 대신 내가 여자가 <아닐>까 봐 무서워할 일은 없겠지.

 

- 『조반니의 방』, p247

 

 

당시 미국 사회에서 “정상적인 남성”이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고, 소유하고, 책임질 수 있는 가부장적인 사회였다. 그렇기에 게이는 여성을 소유하는 데에 불능하다는 점에서 “남성에 미달”한다고 여겨졌고, 다른 남성들의 성적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여성이나 마찬가지”인 열등한 존재로 격하되었다.

 

그렇기에 소설 속 데이비드는 그런 사회적 편견 때문에 불행에 빠져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피해자로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사회에 어떻게든 속하고 싶어 헬라와 결혼하며 주위 사람들을 끊임없이 기만해 불행하게 만든 가해자이기도 하다.

 

소설의 제목이며, 주요 공간인 ‘조반니의 방’에 대해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조반니의 방’이 나타내는 건 무엇일까. 조반니는 자신의 방을 ‘파리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이 그곳에 다 쌓여 있는 것’같다고 묘사한다. 또한 데이비드는 조반니가 방으로 자신을 데려온 이유가 방을 파괴해주고 그에게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주기 바라서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같이 방을 청소하기도 하고, 개조해 보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바뀐 건 없다. 오히려 더 어질러졌으면 어질러져 있을 뿐이다.

 

 

이 방에서 우리가 무슨 삶을 꾸릴 수 있는데? 이 조그맣고 더러운 방에서? 애초에 남자 둘이서 대체 무슨 삶을 함께할 수 있다는 거야?

 

- 『조반니의 방』, p278

 

 

조반니의 방은 데이비드와 마찬가지인 외부인 조반니의 삶을 보여주는 반면 데이비드의 정체성을 비춰주기도 하는 곳이다. 동성인 조반니에게 성적 끌림을 느꼈지만 두려움 때문에 욕망을 부인해오던 데이비드는 피난처로 조반니의 방을 선택한다. 온갖 쓰레기와 냄새로 인해 벗어나고 싶음에도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어쩌면 데이비드는 조반니의 방을 개조하려 하는 순간에도 그의 생각을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방을 개조해도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고 이미 생각을 끝내놓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방안에 있을 때 계속 커튼을 쳐놓았으며, 결국엔 떠난 것이다.

 

갖고 있는 것을, 혹은 가지게 될 것을 잃는 게 두려워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부정한 적이 있는가. 데이비드는 전통적인 의미의 성공과 가치를 버릴 수 없어 조반니를 버렸고, 결국엔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게 된 케이스이다. 혹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런 적이 있는가. 꼭 동성애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포기할 생각도 없으면서 다른 것을 갖길 원해 결국엔 자기파멸을 불러온 일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김승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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