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의 정말로 존재할까?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글 입력 2020.08.0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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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만큼이나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 또 있을까? 특히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신이 전지전능하고 선하다는 기독교의 신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끔찍한 살상과 공포가 정말 당신의 뜻이냐 거듭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고 동시에 제발 이 상황을 해결해달라 기도할 수도 있을테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병리학자아자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은 들어본 이름일거다. C.S 루이스 역시 그 이름은 모를지언정 그의 유명작인 [나니아 연대기]는 우리에게 친숙한 제목이다. 무신론적 세계관이야말로 과학적 세계관이라 주장하고 종교적 신념을 정신강박으로 본 무신론자 프로이트와 20세기의 대표적 유신론자인 루이스가 전쟁과 죽음이 짙게 드리운 그 순간, 무대 위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구강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말년의 프로이드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또 계획하며 라디오에서는 독일과 폴란드의 끔찍한 전쟁 소식들이 흘러나온다. 나치는 유대인을 학살하고, 폴란드는 전쟁 속에서 이틀 만에 이 만명의 사람들이 죽어간다. 예고 없이 울리는 사이렌과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소리에 일상이 멈추고 서랍과 가방에 방독면을 휴대하며 어린 아이들의 옷에는 이름표를 꿰메 붙인다.

 

어쩌면 그 어느 시절보다도 갑작스러운 죽음이 가까운 그 시절, 1939년 세계2차대전의 순간에 프로이드와 루이스는 신과 종교,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상윤(1)(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사진제공 _ 파크 컴퍼니

 

 

신이 정말로 있을까?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온 이 질문에 대한 대답들을 나열하자면 수십 수백가지는 되겠지만 단순히 하자면 있다, 없다, 모르겠다 쯤 되겠다.

 

신이 정말 있을까, 그런 질문 전에 신이란 게 대체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선행되어야 할 것도 같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밀어두기로 한다. 프로이드나 루이스나 그들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바로 그 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음은 동의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애초 무신론자였던 루이스는 어느 날 신이 존재함을 깨닫는다. 어떤 전설같은 기적이나 계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루이스는 자신의 생각을 끝임없이 숙고하다가 그렇게 결론 내린다. 그리고도 계속해서 의심하고 생각하고 찾아본다. 성경과 역사 속에서 그는 이제 신이 있다고 믿는다. 신의 뜻이라는 것이 정말 있다고. 인간의 본성에는 선함이 있고 그것을 보상하고자 한다고.

 

그렇다면 프로이드의 가족들이 겪은 불우한 죽음들과 그의 암도 신의 뜻이란 말일까?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악들도 신의 뜻일까? 프로이드는 그것을 되묻는다. 결국 사이렌과 비행기 소리의 앞에서 마주하는 것은 신의 뜻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 아니냐고, 이기심은 그 자체가 보상이니 다른 보상이 필요가 없다고, 결국 그 도덕률이라는 것은 교육의 결과가 아니냐고.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상윤(2)(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사진 제공_ 파크 컴퍼니

 

 

그들의 대화는 합의되는 해답 없이 서로가 부딪혀 계속해서 그 방향을 바꾸어나가며 끊임없이 계속된다. 어쩌면 당장에 답을 내릴 수 없음이 당연하다. 신이 정말로 전지하고 전능하고 절대선한 존재라면, 인간이 어떻게 신이 있다면 이리했을 것이다 이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추측하고 가정할 수 있을까? 루이스와 프로이드를 포함한 모든 인간 중 그 누구도 전지하고 전능하고 절대 선한 세가지 요소 중 단 하나도 충족한 사람이 없을텐데 말이다.

 

때로는 이 알 수 없음이 신에 대한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우리는 어떻게 전지하고 전능하고 절대로 선한 어떤 존재를 가정할 수가 있을까? 그 막연하게 거대하고 추상적인 존재를 말이다. 우리는 말을 알고 둥근 뿔을 알기에 유니콘을 머릿속에서 조합해 낼 수 있지만, 신을 이루는 요소는 단 하나도 알지 못하는데.

 

프로이드와 루이스는 말 한마디 한마디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적대적이지만은 않다. 루이스는 프로이드의 고통에 도움을 주려 노력하며 프로이드는 루이스가 저서를 통해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어찌보면 사상적인 배신을 저질렀음에도 그에대해 비난하지는 않는다. 서로의 생각이 정 반대임은 틀림이 없으나 적어도 서로를 존중한다.

 

기나긴 논쟁 끝에도 서로의 입장을 전혀 좁히지 못한 채 끝이 나지만 그렇다고 서로가 벽에다 대고 이야기 한 것은 아니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동요를 극도로 거부하던 프로이트는 음악을 듣지 않았지만, 루이스가 다녀간 후 그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오케스트라 음악을 끄지 않고 듣는다.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석준,남명렬(3)(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사진 제공_ 파크 컴퍼니

 

 

1930년대 그들이 나누었을 법한 질문을 우리는 아직도 한다. 그들처럼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으니 합의를 찾지 못함은 더욱 자명하다. 모두가 납득할 만한 해답이 있기 전까지 계속해서 그럴 것이다.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으니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 길이 없고 믿음이니 계시니 하는 것들이 타인과 온전히 투명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모두가 납득할 증거가 되기에 애매하다.

 

나로 말하자면 ‘있다’ ‘없다’ ‘모르겠다’ 중 모른다를 택해야겠다. 그렇지만 있다와 없다 중 무엇이 답인지 알고 싶기는 하다. 농담조로 최후의 심판이나 미륵하강이 빨리 닥쳐왔으면 하고 이야기하고 다니기도 했으니까. 그러니까 ‘있다’와 ‘없다’ 중 하나를 택하고 싶은데 아직 어느 쪽도 확신이없는거다.

 

논쟁 끝에도 결국 서로의 간격을 좁히지 못한 프로이드와 자신에 루이스는 “시대를 초월한 최대의 미스터리를 하루 아침에 풀어보겠다고 생각하는 건 미친짓”이라고 말한다. 프로이드는 이렇게 대답한다. “딱 하나 더 미친 짓이 있지 그렇다고 생각을 접어버리는 것.” 무신론과 유신론, 대척점에 선 두 사람의 논쟁을 담은 연극 <라스트 세션>은 수 많은 생각의 단초들을 제공하지만 어느 하나 완벽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 한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생각해야한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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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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