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전히 세련된 '모던 수필' [도서]

글 입력 2020.08.0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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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백석, 정지용, 이효석, 현진건, 박태원...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한 번씩은 마주쳤을 이름들이다. 우리는 김유정의 소설을 배우고 백석의 시를 분석했다. 시험을 보려고 문학 작품을 외우기 급급했던 때에 교과서 속 작가들은 납작하게 재단된 모습이었다. ‘방언을 통해 사실성과 현실성을 강화’하거나 ‘유음을 활용하여 운율을 형성’하는 말이 곧 작가의 특징이었다.

 

그렇기에 시인의 작품은 시뿐이고, 소설가의 작품은 소설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시인이라고 산문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고, 소설가라고 운문을 쓰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교과서와 참고서에서 시인의 산문을 보여주지 않았고 소설가의 운문을 소개하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다.

 

다행히도 생활인으로서 이들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글들이 있다. 바로 수필이다. 수필은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경험을 토대로 적는 글이다. 그러다보니 일상의 수많은 체험이 글의 소재가 되고 글 속에 솔직담백한 감상이 녹아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라 읽는 데 부담도 없고 대개 분량도 길지 않다.

 

<모던수필>은 1920년대에서부터 해방 직후까지의 기간에 발표된 명산문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우리가 아는 작가들의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풍부한 문장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그런 문장을 보는 것이 독자에게 어떤 유용함을 주는가를 하나씩 이야기해보겠다.

 

 

 

다르지 않음에서 오는 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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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괴롬을 누구더러 덜어 달라는 것도 아니요, 이 슬픔을 누구에게 하소연하려는 것도 아니외다. 이 괴롬, 이 슬픔은 나 아니면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다만 이 괴롬을 괴롬으로서 맛보고, 이 슬픔을 슬픔으로서 맛보려 할 뿐이외다. 나는 그것을 물리치려고 하진 않고 받으려고 하며, 그저 보려고 하지 않고 밟으려고 할 따름이외다. 나는 거기서 내 생명의 약동을 보고 내 생명의 법열을 얻으려고 합니다.

 

봄, 괴로운 봄, 슬픈 봄, 추억의 이봄은 나에게 얼마나의 괴롬과 슬픔과 추억을 주려 하며 그 모든 것은 내 생명의 약동을 얼마나 더 늘려, 내 생명의 법열을 얼마나 더 돋우려는가.

 

최서해, 「봄!봄!봄!」, 『신생』, 1929.3.

 

 

봄은 매년 돌아오는 계절이지만 봄을 마주하는 마음이 달라진다.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 겪는 일들이 나로 하여금 아무것도 모르던 봄을 비교하게 만들기도 한다. 흘러간 시간이 남기고 간 추억과 상처는 다시 겪을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면서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돌아보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봄을 맞이하며 생겨난 복합적인 감정이 「봄!봄!봄!」에 적혀 있다.

 

한번쯤은 마냥 좋았던 봄꽃들이 여러 생각을 불러오는 시기가 있다. 그들이 보았을 풍경과 내가 보았을 풍경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만 같다. 이제나 그때나 같다는 것에서 시공간적 거리가 사라진다. 물질적 조건은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고 그 뛰어난 문장가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을 지녔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한다. 사람살이 다 똑같구나 싶으면서도 다 이렇게 사는 것이라면, ‘누군가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겠구나.’하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시선의 섬세함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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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나는 이제껏 내 손이 펜을 잡을 줄 알아 내 마음의 사자使者가 되어 주는 데만 감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펜이 바른손의 장손가락 끝마디의 왼모에 작은 팥알만 한 멍울을 만들어 놓은 것을 자랑으로 알고 있었다.

(...)

그러나 그 멍울 한 점만을 가질 수 있는 그 손은 이제 확실히 불안과 우울을 가져다 준다. 내 손으로 정복해야 할 그 원고지에 도리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네가 그 멍울의 자랑만으로 능히 살아갈 수가 있느냐’ 하는 힘찬 훈계와도 같았던 것이다.

 

계용묵, 「손」, 『조선문단』, 1940

 

 

글을 쓰는 작가로서 자신이 글을 적어야 하는 종이에 손을 벤다는 것은 종이보다도 연약한 자기 자신에 대한 무력함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작가에게는 종이에 손이 베는 일이 그런 사건이었지만 정리하려고 쌓아올린 짐 더미가 쓰러질 때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고, 스파게티 소스 통을 열려다 실패하는 순간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짧은 만큼 일을 하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찾아오는 순간을 한숨 한 번 내쉬고 지나가기도 쉽다.

 

가끔은 그 감정을 직시하는 것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현재 놓여 있는 상태를 분명하게 느낄 때 그 상태가 어디에서 출발했으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게 된다. 어떤 마음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현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상태를 표현한 다른 사람들의 말과 글을 보는 것이 좋다.

 

그렇게 여러 글을 읽으며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을 알게 된다. 가령 ‘슬프다’가 지닌 많은 결을 표현하는 방식을 알게 되면서 나의 ‘슬픔’이 지닌 여러 가지 결도 알게 된다. 그러면 여러 슬픔이 발생하는 원인을 알게 되고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더 충분히 감각할 수 있게 된다. 무심코 지나갔던 순간을 묘사한 글을 보며 찰나의 감정을 포착할 수 있게 된다. 문득 언젠가 읽었던 글을 떠올리며, 이 순간은 이렇게 쓸 수도 있는 것임을 새삼 깨달아 본다. 그렇게 새삼스럽게 느끼는 순간이 늘어나면 일상을 더 풍부하게 감각하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

 

번역이 아니라 모국어 작품을 읽는 즐거움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와 독자가 공유하는 관습과 관용적 표현, 어쨌거나 비슷한 문화적 토대. 이런 것들을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글이기에 개인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아름다운 문장을 읽고 듣기를 주저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한다. 특히 수많은 문장이 모여 있는 책을 더 가까이 해야겠다.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이태준, 「책」, 『무서록』 1941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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