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국문과생의 시선으로 바라본 건축디자인 - 더 터치 [도서]

<더 터치> 리뷰
글 입력 2020.08.0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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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터치

머물고 싶은 디자인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답하는 책이다. 단순히 보기에 매력적이거나 자극적인 이미지는 영혼을 울리지 못한다. 삶의 질을 생각하는 라이프스타일 커뮤니티 ‘킨포크’와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디자인 스튜디오 ‘놈 아키텍츠’가 협업하여 탄생한 책으로, ‘사람이 중심이 되고, 마음이 쉬어가며, 오래도록 그 안에 머물고 싶은’ 건축물 25곳의 정수를 담았다.

 

 

The TOUCH_Cover3.jpg

 

 

몇 달 전, <공간의 심리학>이라는 책에 관한 리뷰를 게재한 적이 있다. 구구절절 늘어놓았던 텍스트 중 가장 핵심적인 한 문장을 뽑으라면, “어떠한 공간이든 그 공간을 대하는 태도, 인식 등은 모두 원시로부터 비롯되었다.”를 고를 것이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원초적 욕구가 곧 삶의 목적이었던 시대에 형성된 공간인식은 현대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결국 ‘공간’이란 그곳에 방문하고 머무르는 “인간”과 무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 터치>도 이와 마찬가지로 공간에 관해 다루고 있다. 다만 심리학의 관점으로 카페, 영화관 등 포괄적인 공간을 다룬 <공간의 심리학>과는 달리, <더 터치>는 건축디자인의 관점으로 특정한 공간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사실 이 책은 ‘책’이라 부르기에는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크기와 레이아웃은 마치 디자인 잡지 같지만, 표지의 두께와 독특한 감촉, 무게는 전문 서적 같기도 하다. 이 같은 겉모습이 풍기는 위압감은 건축이나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나 따위가 감히 펼쳐 봐도 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Don't judge a book buy its cover라고 하였던가. 이 책은 결코 저자의 지식을 뽐내거나 독자를 가리는 콧대 높은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빛, 자연, 물질성, 색, 공동체라는 5가지 요소를 주제로, 제목 ‘더 터치(The Touch)’처럼 그 공간을 직접 ‘터치’하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하며 그 속에서 휴식을 누리게 한다. 특정 공간에 대한 취향과는 별개로, 사진과 텍스트를 매개로 모든 공간만의 의미와 매력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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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인문대생(이자 국문과생)의 관점으로 이 책을 소화한 감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건축디자인이란 곧 글쓰기와도 공통점이 많은 것 같다는 점이다.

 

 
건축가 역시 선택한 재료를 사용하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차갑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에디팅editing이라고 합니다. 재료들을 한데 모으는 작업이죠. p.47
 

 

edit, 사전적으로는 ‘편집하다’, ‘교정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작가에 따라 그 단어를 사용하는 의미, 위치, 빈도 등이 모두 다르듯이, 같은 재료라도 건축가마다 그 재료를 모으고 사용하는 방법이 모두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똑같은 재료를 사용하여 건축을 하였더라도 완성된 건축물들을 모두 ‘다른 공간’이 될 수밖에 없게 한다.

 


건축이란 건물을 짓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때론 무언가를 없애는 것도 건축이 될 수 있다. p.110
 

 

글쓰기 수업을 한 번이라도 경험했더라면 틀림없이 들었을 말은 ‘덜어내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쓰는’ 것뿐만 아닌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지우는’ 것이 진정한 글쓰기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내가 제일 못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는 건축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넓은 부지, 화려한 가구 등을 제공하거나 다채로운 색감을 사용한다고 해서 좋은 공간, 편한 공간이 되지는 않듯이, 이른바 ‘투머치’한 공간과 디자인은 과감하게 삭제하는 것이 비로소 ‘인간’을 위한 좋은 건축을 완성한다. 양이 많거나 화려한 미사여구가 쓰였지만 막상 알맹이는 없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닌 것처럼.

 

하나의 공간은 곧, 건축가가 선보이는 ‘한 권의 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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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간이 배경 내지는 캔버스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삶이 펼쳐지는 거니까. 색채감이 있는 요소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그들이 먹는 음식,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어야 한다. 깨끗한 캔버스에서는 중요한 것만 부각된다. 함께하는 단순한 삶이 그것이다.” p.172
 

 

글은 인간이 쓰는 것이듯, 건축도 인간이 하는 것이기에 결국 모든 것은 인간, 즉 “삶”과 연결되는지도 모른다. 그 삶을 어떤 방향, 어떤 방식으로 꾸려나갈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에 달렸겠지만, 글의 시작은 백지였던 것처럼 건축의 시작도 허허벌판이었음을 떠올려보면 건축이 추구하는 삶을 어렴풋이는 알 것 같다.

 

건축은 그 허허벌판 속에 건물을 지탱할 뼈대를 세우고, 비바람을 막아줄 지붕을 만들며, 그 지역의 특성과 용도에 맞는 최적화된 디자인을 설계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완성된 세상의 무수히 많은 공간들 중, 틀림없이 ‘나만의 공간’, 혹은 ‘나만 알고 싶은 공간’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꼭 이 책에 소개되지 않았더라도 그 공간 속에서 마음의 휴식을 찾는다면, 그곳만큼은 가히 ‘좋은’ 건축이자 디자인이 될 것이다.

 

 


 

 

더 터치

-머물고 싶은 디자인-

 

 

저자: 킨포크, 놈 아키텍츠

 

옮긴이: 박여진

 

펴낸곳: 윌북

 

발행일: 2020년 6월 30일

 

면수: 288면 | 판형: 210*288mm

 

정가: 29,800원

 

ISBN 979-11-5581-282-2 (03540)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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