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의 질문에 대한 건축의 대답 - 더 터치(The Touch) [도서]

우리가 얘기하고, 우리를 얘기하는 디자인.
글 입력 2020.08.02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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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상상하는 힘


 

빛, 물질성, 자연 등 주제에 따른 분류는 건축적 상상력의 얼개를 이루는 요소들이다. 시각만이 아닌 ‘감각’을 아우르는 건 좋은 디자인의 조건이자 좋은 건축의 궁극적인 목표다.

 

“느리고 단순한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 킨포크가 시각 외의 감각을 통해 공간 인지를 논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인과일 것이다. 놈 아키텍츠는 포괄성을 지니되 ‘인간’이라는 축으로 건축에 접근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감각에 대한 상상력, 건축과 디자인의 경험적 측면에서 둘의 지향성이 밀접해 있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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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과 느낌을 상상하는 능력이다.”_유하니 팔라스마
 사진 출처 : 『더 터치』

 

 

 

자연과 물질성


 

존 포우슨이 이야기한 ‘에디팅’은 재료를 모으는 작업이다. 여기에는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경험과 인식 지평이 반영된다. 에임과 놈 아키텍츠가 설계·디자인한 스리랑카 갈의 K 하우스는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작업하고 촉각적 요소가 드러나되 정갈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주변의 자연환경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공과 사의 공간이 고루 나뉘어있다. 인상적인 지점은 해당 지역의 건축가(제프리 바와)의 방식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건축물에서 엿보이는 유기성이 사람과 사람 사이, 공간과 사람 사이의 유대와 영향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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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갈의 K 하우스. 에임과 놈 아키텍츠가 설계·디자인했다.
사진 출처 : 놈 아키텍츠 홈페이지  

 

 

이런 유대감은 ‘물질성’으로 분류된 노르웨이의 예비크 하우스에서도 두드러지는데, 독립적인 주거환경에 연결성을 가진 클러스터 주택으로 공간 안팎을 이루는 자연과 집 자체, 공동체 구성원이 건축물을 통해 경험과 감각적인 요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목적을 지닌 공간은 장소로 변모한다. 예비크 하우스는 장소로 변모할 가능성을 지닌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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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크 하우스(Gjøvik house).
사진 출처 : 놈 아키텍츠 홈페이지

 

 

 

공간을 감각하기


 

앞서 인용한 유하니 팔라스마를 비롯한 건축가들이 공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지 않는 것은 바로 ‘분위기’다. “공간의 전체적인 인상”과 다양한 감각을 통해 전해오는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 책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건축가 페터 춤토르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분위기에 대해 대해 언급했다.

 

 

건물에 들어가서 실내를 보는 순간 바로 떠오르는 감정이 있다.

 

_페터 춤토르

 


책에서 소개한 건축물 중 유독 다른 것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공간이 있는데, 바로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프라마’다. “보이는 것은 모두 그 존재 이유가 있다.”라는 주제의식이 단순히 비워내고 정제하는 식의 철학보다 인간적이고 진솔한 정신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서는 분명 그만의 특별한 감각이 동할 것이다.


반면 놈 아키텍츠의 시사이드 어보드는 캔버스 같은 공간에 대해 얘기한다. 공간에 색채감을 부여하는 것은 그곳의 사람들과 생활양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에 방점이 찍혀있다. 그래서 시사이드 어보드는 주변 경관에 스며들고 공간을 이루는 색감 역시 해변의 돌이나 모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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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시사이드 어보드(Seaside Abode).
사진 출처 : 놈 아키텍츠 홈페이지

 

 

 
색의 본질은 빛에 있다.


 

여러 색에 관한 부정적이고 조심스러운 건축의 경향 앞에서 매클라클런은 공간적 해석을 변화시키는 색에 대해 얘기한다.

 

여기에는 색에 대한 신중한 접근(판 베르켈)과 더불어 빛 입자로 인해 색이 변한다는 본질이 담겨있다. 이런 의미에서 데이비드 툴스트럽의 색에 대한 접근은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볼만하다.

 

얼룩이나 재료의 질감 등 물질성에서 색이 발현된다고 말하는 그는 단순히 어떤 색을 선택해 페인트칠을 하거나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내구도나 물질의 상태가 변하는 과정을 존중하는 방향을 추구한다.

 

 

 

공동체를 상상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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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빌리온 스위스(Pavillon Suisse). 사진 출처 : fondationsui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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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빌리온 스위스(Pavillon Suisse). 사진 출처 : fondationsuisse

 

 

파빌리온 스위스에서 느껴지는 르 코르뷔지에의 야심.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로 된 유토피아 건설이 그의 지상 과제인데, 이 기숙사는 그런 공동체의 작은 실험장이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여기에는 벽화와 다양한 색채의 팔레트 같은 그의 시도가 엿보인다.

 

젊은 영혼의 장에서 공간과 공동체에 대한 상호적인 실험이 있었다면, 카를로 스카르파의 톰바 브리온은 공간이 망자와 산자 모두의 쉼터가 되길 바라는 건축가의 상상력이 깃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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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바 브리온(Tomba Brion). 사진 출처 : 『더 터치』
“죽음에 사회적이고 시민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_카를로 스카르파

 

 

두 건축가의 각기 다른 콘크리트 건물에는 자기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방향성과 공동체에 대한 지향이 담겨있다. 데비카 레이는 분화되는 공동체와 건축을 통해 이러한 의식을 형성하려는 고민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국 공동체 구성원들이 설계의 과정에 동참하고 기능적인 요소와 배려가 투입돼야 한다는 귀결이다.

 

 

 

우리가 얘기하고, 우리를 얘기하는 건축.


 

건축가들의 상상력은 놀랍다. 신형철 평론가가 시인들이 어느 분야의 누구보다도 잘 묻는 사람들이라고 했다면, 누구보다도 참신하고 오롯이 자신의 언어로 대답하는 사람들은 건축가가 아닌가 싶다. 감각과 경험이 맞닿아있는 건축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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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캐서린 칼리지(Saint Catherine College). 사진 출처 : 『더 터치』
“진행자는 세인트 캐서린 칼리지가 다른 칼리지들의 ‘꿈의 첨탑들’과 충돌하지는 않는가 하고 물었다. 이에 야콥센은 간결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현대적인 스타일로 첨탑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진행자가 “꿈은요?”하고 물었고, 야콥센이 대답했다. “현대적인 꿈이길 바랍니다.”


 

팔라스마가 이야기한 건축의 궁극적 과제는 ‘일상생활을 고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의 고상함이 우리와 우리 감각 사이의 관계를 긴밀하게 만들고, 또한 우리를 둘러싼 공간과의 관계를 더 내밀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마중물이 된다고 믿는다. 이 책은 그 믿음을 간직하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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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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