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언택트와 디지털 - 온라인으로 넘어가는 세상

글 입력 2020.08.0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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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류 사회는 국가와 인종을 넘어 코로나 19에서 태어난 급격한 변화의 흐름에 삼켜진 체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휩쓸려 가고 있다. 국경과 지역 봉쇄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거리에는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며 집단생활을 지양하고 점점 개인 생활이 주류가 되는 사회를 맞이하면서 비대면을 중요시하게 됐고 그렇게 언택트 산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 언택트의 핵심이 되는 것은 '온라인 네트워크' 즉, 디지털의 세상이며 우리 사회의 생활 범위가 점차 디지털로 넘어가는 변화에 대해 나는 다양한 의문을 품는다.

 

 

 

우리의 자아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데카르트가 남긴 말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문장이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을 아주 짧고도 간결하게 잘 요약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생각 없이 살지 말라는 소리도 하고 생각 좀 하고 말하라는 소리도 간혹 하는 편인데 이 ‘생각’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서 문맥이 극명하게 달라진다. 내가 풀이하는 생각은 곧 인간의 자아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아가는 동물인데 이는 무슨 거창하고도 어려운 학문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내일은 뭘 먹을까에 대한 것부터 시작해서 무슨 일을 할지, 뭘 좋아하는지,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등을 포함한 일상 속의 모든 생각이 곧 자아로 이어지는 사고회로 작용의 연속이다.

 

물리적인 오프라인 세계에서 우리의 몸은 한 개뿐이라 자아를 담아 둘 수 있는 그릇도 한 개로 제약을 받지만 온라인의 세상에서 자아를 담을 수 있는 그릇에는 제약이 없다. 온라인에서 우리의 자아는 ID 또는 계정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대표되는데 이는 내가 계정을 생성하는 플랫폼의 수 또는 한 플랫폼 안에서 생성하는 계정의 수에 따라 무한정으로 늘어나며 그 하나하나의 그릇에 모두 같은 자아를 담을지 혹은 전부 다른 자아를 담을지는 전적으로 계정을 생성하는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인스타그램 계정만 6개 정도가 있는데 패션, 글, 카페 투어, 사진 촬영물 등 목적에 따라서 분리한 결과다. 하지만 이런 배경은 나만 알고 있는 것이고 내가 따로 명시하지 않는다면 인스타그램에 접속하는 사용자들은 그 모든 계정이 동일 인물인지 다른 사람인지 알 수가 없는데 이것이 자아의 충동을 불러올 수 있는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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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Thought Catalog on Unsplash

 

 

패션 계정에서 보이는 내 모습은 옷을 좋아하고 자기를 꾸미는 것에 열중하는 사람이다. 사진 촬영물 계정에서 나는 여러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고 글 계정에서 나는 다양한 글귀를 올리는 글을 쓰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그 모든 사람이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단 한 명이지만 온라인 세상에서는 3명의 각각 다른 자아를 가진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는데 만일 이런 상황에서 나 자신이 어떤 것이 진짜 나인지 혼동하게 되면 자아 충돌이 발생한다.

 

지나친 비약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를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소재로 자주 활용되는 가상 현실 게임으로 바꿔본다면 좀 더 심각성을 잘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명이 3개의 서로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캐릭터에서는 감성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고, 어떤 캐릭터에서는 사진작가로 살아가고, 어떤 캐릭터에서는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했을 때 외관이 전혀 다르다면 그 캐릭터를 마주하는 타인은 속내를 알 수가 없고 연기를 이어가는 그 한 명의 동일 인물이 각 각의 자아에 대한 분별력이 사라진다고 했을 때 어느 것이 진정한 자신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마치 히스 레저가 조커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해 끝내는 안타까운 선택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해킹이라는 수단을 통해 누군가가 온라인 세상에 만들어낸 자아를 훔쳐내 그 사람으로 가장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실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으나 실체를 만날 수 없는 온라인에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 사람이 밝히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고 신원을 도용당한 사람도 자신의 자아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모른 체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매우 추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자아지만 이처럼 우리의 일생에 매우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고 그만큼 점차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시대에서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할 문제다.

 

 

 

디지털 정치의 시대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앱 스토어에서 각종 공공기관과 정부 부처에서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스마트폰 하나로 행정이나 민원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됐다. 국민 청원 등 온라인으로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고 최근에는 온라인 주민등록증도 개발에 착수하는 등 정치 분야도 점점 온라인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와중에 코로나로 인해 물리적인 공간에 모여서 회의를 할 수 없다 보니 컴퓨터 앞에 앉아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온라인상에서 국가의 다음 방향을 결정하는 정책에 관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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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astasia on Unsplash

 

 

이전에는 하나하나 손으로 기록하고 각 관공서에 문서로 자료를 보관했던 것들이 지금은 작은 금속 상자에 들어있는 서버에 디지털 자료로 담기는 시대가 됐고 목록을 손으로 뒤지던 것에서 검색창에 원하는 대상을 입력만 하면 자료를 조회하여 찾아낼 수 있다. 이마저도 CD나 USB에 담아 사람이 옮기는 것을 벗어나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형성된 전산망을 이용하여 메일로 곧바로 전송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기업을 넘어 정부, 정부를 넘어 범세계적 정치 기구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시대에서 물리적인 정부가 사라지고 온라인 세계에만 정부가 존재하는 시대도 오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오프라인에서 살아가는 시대였기에 정부는 오프라인에 있었고 국민과 시민으로부터 태어나는 정부이니 국민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 정부도 옮겨 갈 것이라는 사고도 어느 정도는 타당성을 가진다고 본다.

 

트럼프와 힐러리의 대선 경쟁 당시에 힐러리 후보의 이메일 유출 이슈가 미국 대선의 결과에 무시 못 할 영향력을 행사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사이버 공격을 가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들이 발견된 적이 있으며 우리나라도 북한으로부터 디도스 공격을 빈번하게 받고 있다. 덧붙여 최근에는 중국의 틱톡을 비롯한 애플리케이션이나 화웨이의 5g 장비에 대한 스파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미국 내 대사관 폐지 명령이 내려지는 등 온라인 세계와 연관된 정치적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며 아랍의 봄과 같은 디지털 혁명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사건들은 물리적 세계에 한정돼있던 국민의 정치 참여나 각국 정부 기관 관의 정쟁 또는 외교 관계에서 온라인 세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면서 디지털 정치라는 인류 사회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언택트의 세계


 

코로나 19는 나를 비롯한 일반인들에게 상상조차 못 했던 존재였고 사람들 간의 만남을 자제하며 마스크를 끼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도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삶이었으나 지금의 우리는 그런 삶을 실제로 살아가고 있다. 금방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티는 것을 지나 이제는 서로 직접 만나지 않고 살아가는 삶에 적응하며 이런 세계를 살아나갈 방법을 고민하는 자세를 취하는 광경을 보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대기업들은 이미 언택트 시대의 블루 오션으로 떠오를 클라우드 산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투자를 하고 있고 일부 발 빠른 사람들은 이런 변화에 맞춰나갈 새로운 사업 아이템 구상에 열을 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고 가축을 기르는 법을 배우며 농경 사회를 이룩한 뒤로 소수의 인원으로 이곳저곳을 떠돌던 수렵 사회는 끝이 나고 한 곳에 정착하여 구성원의 수를 차근차근 늘려가는 농경 사회가 시작됐다. 사냥감을 찾으러 떠도는 것에 비해 작물을 재배하고 짐승을 잡아 기르면서 도축하는 것이 더욱 편리하고 생존에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산업 혁명으로 인해 수작업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농작물을 기르는 것보다 기계를 사용해서 대량으로 생산된 다양한 제품들을 팔아치우는 것이 더 이득이 되고 자본주의 사회의 생존 수단인 돈을 벌기에 유리함을 알기에 경제를 주도하는 것은 2차 산업으로 넘어왔다. 지금에 와서는 서비스업이 경제를 주도하는 사회가 됐고 서비스업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기에 다양한 소비 계층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온라인 세계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다.

 

이런 모든 변화 속에서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이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와 언택트,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힘들이 뒤섞이면서 미친 듯이 반응하고 있는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고자 발악을 거듭하고 있다. 아직은 어떤 기반도 잡지 못한 성인인 나도 내 나름의 노력으로 이런 시대의 흐름에 따라갈 방안을 갈구하는 중이지만 결과는 장담 못 하겠다.

 

시간은 절대 멈추지 않기에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간에 추월당했다면 따라 잡을 때까지 미친 듯이 달리는 것 말고는 답이 없고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회는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 대신 도태라는 신발을 신고 매몰차게 발길질을 가할 뿐이다. 발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누군가의 뒤를 따라 사라질 운명이니 다른 선택지가 없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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