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원룸살이, 모두의 불편함이 당연시되지 않기를 [사람]

최소 주거면적과 일반적인 자취생의 삶
글 입력 2020.08.0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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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표현이자 욕망 표출의 장소,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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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표현의 수단은 점점 더 다양해져 간다. 그럼에도 각각의 개성과 고유한 삶의 방식을 가장 짙게 드러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여전히 주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집은 house뿐만 아니라 home으로도 기능하기에, 건축적으로 삶의 내외부를 구분 지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서적 안정을 보장하는 최종 종착지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집을 보면 그 사람의 취향과 생활습관 등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집은 물적 욕망을 분출하기 위한 장소이기도 하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토피아>로 잘 알려진 근대 철학자 토마스 무어는 이상 사회상의 조건 중 하나로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거주 공간’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집 사이의 차이는 빈부격차에서 기인할 뿐더러, 더 극심한 빈부격차로 이어져 종국에는 사회적 대립을 낳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비록 무어는 이러한 집의 특성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오늘날 자신의 생활 공간을 더 편하고 아름답게 구성하는 것은 일종의 취미이자 권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집의 사회적 특성에 대한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한 것은, 내 새로운 거주지에 대한 작은 불평을 논하면서 집다운 집을 가질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의 새로운 거주지란 사실 특별할 것 없는 4평짜리 작은 원룸이다. 원래의 거주지 또한 평범한 아파트, 대학교 기숙사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원룸으로의 이사가 나에게 ‘집다운 집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에 앞서, 아파트와 기숙사를 오갈 때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원룸에서 느끼게 된 까닭을 먼저 살펴봤다.
 
 
 
원룸 생활을 하며 느끼게 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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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치즈인더트랩> 주인공 홍설의 자취방

 

 
나는 지난 2년 동안 ‘닭장 같은’ 4인실에서 나름대로 평화롭게 지내 왔다. 원룸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것 역시 기숙사 입사에 탈락했기 때문이지, 기숙사 생활에 불편함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룸에서의 생활은 기숙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더 큰 불편함을 느끼게 됐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모든 생활공간이 4평 남짓한 공간 방 안에 집약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기숙사 4인실의 경우 면적만 따지면 원룸보다 약간 큰 정도에 불과했지만 세탁실, 식사 공간, 휴식 공간이나 샤워실, 헬스장, 화장실이나 공부 공간 등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반면 원룸의 경우 요리, 설거지, 빨래, 공부, 숙면, 식사 등 모든 활동을 작은 공간 안에서 전부 해결해야 했다. 빨래라도 널면 건조대는 방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고, 어떤 행동을 하던 건조대를 다른 곳으로 밀쳐두어야 했다. 식사를 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직전까지 공부하고 있었던 책들을 정리해야 했고, 조리대라고 할 만한 공간이 없어 칼질이라도 하려면 앉은뱅이상을 펼쳐야 했다.
 
건조기나 제습기, 에어프라이어 등 생활에 필수적인 가전을 사려 해도 놓을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이유로 구입을 고사했고, 공간을 활용하겠답시고 벽 틈에 끼워 둔 짐 때문에 곰팡이가 잔뜩 슬어 애를 먹기도 했다. 밤에는 가로등의 노란 불빛이 창문으로 새어들어오고 냉장고의 소음이 잠을 방해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물론 철없는 불평을 늘어놓기에는 대부분의 자취생들이 원룸살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겪는 불편함이라고 해서 그것을 감수할 만한 것, 일반적인 것으로 합리화해도 되는 걸까?
 
 
 
최저주거기준과 최소 주거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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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법상 최소 주거면적

 

 

국민의 쾌적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건설교통부 장관이 정하는 '최저주거기준'에는 방의 개수나 부엌, 화장실의 설비 기준이나 안전성 등과 함께 최소주거 면적이 포함되어 있다. 1인 가구의 최소 주거 면적은 14제곱미터로 4.2평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이때 4.2평은 말 그대로 '최저' 기준에 불과하는 턱없이 좁은 면적으로, 이마저도 상향조정이 이루어졌던 지난 2011년 이전까지는 11제곱미터에 그쳐 있었다. 그러나 4.2평은 이는 자취를 하는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의 자취방 면적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크기이다. 다시 말해 많은 청년들이 거주하는 일반적인 원룸은 극히 최소한의 면적을 겨우 넘는 정도이다.

 
게다가 아무리 현행법상 일정한 면적을 법적 규제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다 한들, 최저주거기준에 미달되는 가구의 수는 여전히 적지 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비율에 의하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되는 가구는 2019년 기준으로 5.3%이다. 물론 전국적으로 보았을 경우 점점 줄고 있는 추세지만, 수도권으로 범위를 좁혀 살펴보면 그 비율은 6.7%인데다 감소폭 또한 비교적 좁다. 게다가 이중에서도 청년의 주거빈곤은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특히 서울의 경우 그 정도가 극심한데,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서울의 1인 청년가구 중 무려 20.2%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에 살고 있다. 이것이 서울에 밀집한 고시촌이나 쪽방촌 때문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주제에서는 약간 벗어나지만 셰어하우스 이야기를 꺼내 보자.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있는 셰어하우스의 경우 최저주거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셰어하우스는 거실과 주방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침실을 다인실로 사용하는데, 이때 침실은 주택이 아니므로 최저주거기준의 제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2018년 국토교통부가 만든 셰어하우스 가이드라인은 최소면적을 포함한 설비나 각종 시설 등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셰어하우스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즉 셰어하우스는 최저주거기준의 완전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해결을 향한 움직임, 그러나...

 

청년들의 주택빈곤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타파해야 할 심각한 문제이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은 LH청년전세임대주택 제도나 청년주택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LH전세대출의 경우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전세 매물을 찾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직접적으로 수익이 되는 것은 당연히 월세이기에 전세 매물 자체가 점점 귀해지는 상황에서, 절차가 복잡한 LH전세대출까지 가능한 전세 매물은 극히 드물다. 청년주택마저도 관리비나 월세 등을 따지면 메리트가 크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고, 공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좁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것 저변에는 인구 대비 작은 국토 면적이나 각종 시설의 수도권 집중 현상 등 복합적인 이유들이 존재한다. 또한 어떤 주거 형태던 그 장단점은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1인 가구의 증가와 집값 상승에 따라 자가 비율이 월/전세 비율보다 낮아질 것을 전망해 보았을 때, 원룸이라는 주택 형태 자체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어떤 이유를 대도 현재의 원룸 구조와 좁은 면적이 불러오는 불편함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최저주거기준에서 명시하는 최소 거주면적은 턱없이 좁고, 그 기준을 겨우 넘기기만 하면 정상적인 주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서울시에 홀로 거주하는 청년 5명 중 1명은 그 기준마저도 넘기지 못하는, 그야말로 열악한 곳에서 살고 있다는 점은 결코 간단히 볼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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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학이나 부동산학, 건축법을 공부한 적이 없지만 설사 공부했더라도 지금의 상황에 대해 이렇다 할 해결책이나 비판점을 내놓기 어려웠을 것 같다. 지금 당장도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명확한 정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의 불편함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의 뻔한 관용어들은 왜곡된 굴레가 되어 동시대의 청년들이 겪는 고충을 당연시해 왔지만, 그것이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정상적인 거주 환경마저 빼앗을 수는 없다.
 
나아가 오늘날의 청년들이 사회의 주축을 이루는 기성 세대가 되었을 때, 점차 변화해 가는 이들의 생활 방식에 부합하는 적절한 거주 형태는 무엇이 될 것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혼인율과 출산율이 점점 낮아지고 1인 가구의 급증이 예상되는 가운데, 어떤 거주 형태나 건축 방식이 최선책이 될지에 대한 고민은 일찌감찌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결국 현재의 결함에 끊임없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직면하는 태도가 가장 필요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어려움을 눈감아 버리는 것이 당사자들에게는 오히려 편안할지 모른다. 지금의 상황을 문제시한다고 해서 그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익숙한 것, 평범한 것에 속아 내 몸이 겪는 고충은 무시해도 괜찮은 것처럼 여기게 된다면, 더 나은 미래는 점점 불투명해질 것이다.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문제 제기는 결국엔 옳은 결론을 가져다 줄 것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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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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