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재수 옴 붙은 날

평온한 평일을 주세요
글 입력 2020.08.01 13:0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재수 옴 붙은 날'

 

 

재수.jpg

 

 

이상하리만치 재수가 없는 날이 있다. 나는 그런 날이 찾아오면 '재수 옴 붙은 날이구나' 한다. 문어적 표현이라 입에 올리지는 않지만, 노잼 시기처럼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유달리 재수 없는 시기.

 

최근에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생각한 건 회사에서였다. 예전에 했던 실수를 뒤늦게 발견하고 새로운 실수를 저질러서 과장님의 우려를 샀던 때. 내가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남도 인정하는 부분이 '꼼꼼함'인데, 사실 내가 가진 꼼꼼함의 범위는 넓지 않다. 당장 눈에 보이고 루틴한 업무는 신경 써서 확인하지만 시간에 쫓기게 되면 빈틈이 생긴다.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하다 보면 내 꼼꼼함에는 구멍이 따라붙는다. 그래서 일주일하고도 며칠 더 재수 옴 붙은 채로 지냈다. 어디서 과거의 실수가 또 튀어나올까, 갑자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유난히 재수 없는 날엔 버스도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 출근길 버스는 몇 분째 5분 전이라고 뜨고, 곧 도착이라는데 코빼기도 내보이지 않는다. 왜 내가 퇴근할 때는 버스 시간 배차가 유난히 길어지는지, 10여 분을 더 기다리라는데 그러면 승객들 꽉꽉 들어찬 (혼잡) 버스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평소라면 좀 더 걸어서 한산한 버스를 타겠는데 지난주는 왜 그리 비가 오거나 습하거나 더웠는지. 없는 기력 끌어모아 간신히 한산한 버스를 잡아탔다. 지친 상태로 터덜터덜 실려 집에 왔다.

 

 

 

사실 재수 없는 날 같은 거 시간 지나면 금방 잊히는데.


 

한 달만 지나도 내가 그때 기분이 안 좋았다는 감정만 남고 구체적인 기억은 잊게 된다. 작년 어느 날, 거래처에서 자꾸 말썽을 일으켜서 스트레스 가득한 상태로 약속에 나간 적이 있다.

 

이 기분을 뭔가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눈에 보인 상점에 들어가 랜덤 피규어를 샀다. 랜덤 피규어는 거의 1년째 회사 책상에 잘 있다. 거래처가 무슨 짓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렴풋한 감정과 감정이 불러온 소비만 남아서 흔적을 보여준다.

 

거래처 문제나 작은 실수는 늘 반복되는 일이고, 출퇴근길 버스는 들쭉날쭉하고, 날씨는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가 퐁당퐁당 섞여 있다. 그런데도 늘 새롭게 재수가 없다고 느끼고, 또 이러네 싶고, 기분이 좋지 않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시간이 지나면 그 날이 언제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못 한다는 사실이 그때는 나를 아주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미래의 내가 알게 뭐람, 당장 스트레스 받고 짜증 나는데.

 

 

 

기분이 태도가 되게 하지 말라지만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란 말이 굉장히 인상 깊어서 새해 다짐으로 새긴 적도 있다. 잘 작용하지는 않지만 그럴 수 있도록 신경 쓴다. 그런데 재수 옴 붙은 날엔 기운이 쭉 빠진다. 열의를 챙기기엔 내 그릇이 너무 작아서 시무룩해진다.

 

‘이게 다 회사가 나한테 많은 일을 시켜서 그런 거야’라고 주변에 투덜거리지만, 내가 실수한 건 명확한 사실이고 이럴 때는 잘 수습해서 마무리해야 하거나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근데 의욕이 안 생긴다. ‘내가 그럼 그렇지’하고 자책하는 일이 ‘이렇게 해결을 하고,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 저렇게 해봐야지’하고 수습하는 일보다 빠르다.

 

자책은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수습은 뒤늦게 정신 차렸을 때가 되어서야 조심스레 찾아온다. 재수가 없는 날은 뭘 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고, 그저 하루 평탄히 지나가기만 바라게 된다.

 

*

 

재수 옴 붙었던 지난주와 달리 이번 주는 지낼 만 했고, 이대로면 다음 주는 무탈할 예정이다. 그러면 이내 언제 재수가 없었냐는 듯, 지금의 감정이 흐려지고 평탄한 다른 감정들로 채워지겠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할 정도는 아니고, ‘예전에 그런 적도 있었지’하고 굳이 꺼내서 생각할 일도 아니지만, ‘재수 옴 붙었구나’ 했던 유달리 재수 없었던 날들.

 

이만큼 재수 없었으면 됐다. 평온한 평일을 주세요.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50854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