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끝나지 않은 현실의 이야기 - 대변인 리비 ① -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글 입력 2020.07.3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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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솔즈베리 언덕에서 삶을 끝내고 싶다는 듯 서 있는 한 중년 여성과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남학생이 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둘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느끼며 서로에게 다가가게 된다. 데클란에게서 예술적 재능과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발견한 리비와 리비를 통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을 알게 되는 데클란은 친구의 존재를 넘어 복잡한 관계가 된다. 그리고 함께 이야기를 만든다. 빨간 장미처럼 순식간에 매혹되지만 결국 가시에 찔려 서로를 할퀴고 점차 다른 결말을 향해 간다.

 

 

마우스피스.jpg

 

 

*

본 글은

연극 <마우스피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비

 

리비는 데클란에게 나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나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 괴리감에 극을 보는 내내, 그리고 극이 끝난 지금도 마음 한 켠이 괴롭다. 극의 중반부 넘어서까지 데클란보다 리비의 환경과 이야기에 절대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차세대 예술가로 주목받고 모두가 원하는 이야기와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다가 점점 그 시류에서 멀어져 버리고 내가 원하는 것조차 잃어버린, 중년이 되어 삶을 끝내려는 그녀의 말 하나하나가 내가 느끼고 있는 모든 감정들을 이미 그녀가 겪었다는 듯 아프면서 쓰리게 다가온다. 그리고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면서 허탈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이 이 극이 끝나갈 즈음, 마무리를 짓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과 맞닿아 더욱 나를 힘들게 한다.

 

 

나 자신을 몽땅 내려둬. 시대정신에 부합하면서도 위험부담을 지게 하지 마. 그를 충족만 시켜줘. 안정감을 위한 안전을 지켜. 극은 누구의 인생을 바꿀 만 하지 않을 정도로만 써.

 


그녀는 여러 제한과 지시사항 속에서 이에 충실하게 글을 써왔다. 그러다가 결국엔 그녀 자신만의 글도 잃어버린다. 그런 순간에 밀려 그녀는 무너졌고 세상에 대한 스위치를 꺼버리고자 한다.

 

그래서 이제는 이 사회가 추구하고 선호하는 소재의 예술작품을 만들기보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의 소리를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이 간절하게 다가온다.


 

지금보다 뭐든지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이게 날 나아가지 못하게 해. 앞으로 나가는 걸 못하게 해. 수치스럽고 내가 내 마음을 배신하는 거야. 점점 느려지고 결국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 널 둘러싼 인생이 점점 나빠져 가.

 


그녀의 대사 하나하나가 모두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여러 상황 속에서 너무나 내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보다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데 무엇을 위해 이런 노력을 했는지 아이러니하게 거꾸로 더 뒤로 쳐지는 이 상태와 감정을 무대 위 리비가 겪은 상황을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는 것에서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자꾸만 리비의 시선에서 데클란을 바라보게 되었다.

 

결국엔 그녀도 다수의 고만고만한 예술가가 되어 목소리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을 오히려 막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대변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대의로. 우리 모두는 안정을 느끼기 위한 안전을 지키고자 울타리를 친다. "나는 안정적이야"라는 위안을 얻고자 이 현실을 아등바등 살고 있다. 안정적인 겉모습 안에는 극도의 불안정과 온갖 불안한 감정이 섞여 있다.

 

 

 

나의 동의를 철회한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연극본을 데클란에게 보여주고 그가 화를 내자 그 뒤로 만나지 않고 연락을 끊고 계속 글쓰기에 매진한다. 그가 입을 열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걸 알면서 왜 입을 막아버렸을까?

 

정작 현실의 입을 막아버리고 예술작품을 통해 진정한 입을 대신해준다고, 내가 그 대변인이 되어보자고 생각하는 그녀가 씁쓸하기만 하다. 나도 그런 축에 속하는 것 같기 때문에. 그럴수록 가짜는 진짜스러워지고 진짜는 가짜스러워진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이고 무엇이 불안정이고 안정인지 이를 찾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안전은 무엇인지 흐려지게 된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선택과 행동이 최선이었을까. 내가 그녀였어도 현실을 외면한 채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째째한 연극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 같기 때문에 쉽사리 리비의 계속되는 거절과 무시를 비난할 수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이해가 갔다.

 

누구나 도덕적으로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해. 사회 복지도 중요하지. 위해야지 그들의 말을 들어주자.' 이런 주장을 하기도 쉽고 말하기도 쉽다. 막상 현실에서 오로지 이에 따라서 생활하며 선택하고 결정하기는 힘들다. 그처럼 리비도 한낮 다른 상업적 예술인에 대해서는 몸서리치지만, 결국엔 그에 걸맞는 그 결의 연극을 만들어내고 안정감을 찾았다는 듯 거짓 웃음을 짓는다.

 

 


누군가의 아픈 이야기를 더 아프게 포장해 전시하는 일. 대상화하여 더 극적으로 표현하는 일.


 

우리는 어느 시점에서 어느 기준으로 이를 바라보고 평가해야 할까? 무엇을 연극에서 사회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직도 난 잘 모르겠다. 무엇이 과연 그들을 위한 예술일지에 대해, 사실 그들을 위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데클란은 리비의 연극 <마우스피스>의 개막 소식을 지역신문에서 접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참여하면 리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극장으로 달려간다. 으리으리한 극장에 쭈뼛쭈뼛 들어가 남을 의식한다. 그러다가 차분한 미소를 짓는 여자 직원들과 눈이 마주치고 이야기하게 된다. 극장 티켓은 15파운드이지만 그가 가진 돈은 7파운드 20센트뿐이었다. 할인되는 증명도 없었지만 친절한 미소를 짓는 직원이 그냥 티켓을 준다. 그렇게 극장에 들어가 관객과의 대화에서 리비를 만나 자신의 진짜 입을 연다. 자기가 저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사실 현실에서 따듯한 미소로 돈이 없는 약간은 부랑자 같아 보이는 남자를 받아들여 티켓을 주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입장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이 연극에서는 친절한 직원 덕분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 시작조차도 할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의 데클란이다. 내가 이 연극을 본 것도 정당한 대가인 티켓값을 지불하고 자리에 앉아 보고 있는 것이니까, 현실에서는 데클란이 절대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과 굉장히 멀게 느껴지면서도, 사실은 가까운 이야기였다.

 

데클란은 극장에 들어가 비로소 대변인, 마우스피스가 아닌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말한다. 대변인이 되고자 했던 리비는 자꾸 그의 입을 막고자 하고 끝내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이어나간다. 이 클라이맥스, 절정에 치닫는 공간에서 관객의 심장 박동이 하나가 되는 그 시점에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건 데클란의 아무도 손길 내밀어주지 않는 추락의 끝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이 때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관객석에 조명이 희미하게 비쳐진다. 마치 실제로 리비 작가가 질문을 받기 위해 나와있고 데클란은 우리 옆에서 손을 들고 일어나는 것 같다. 내가 그 상황에 있었어도 '내가 지금까지 봤던 그 공연의 실제주인공이에요!'라고 외치는 한 소년이 나타난다면 신기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호기심에 찬 빈곤 포르노를 속으로 즐기고 있을 것이다.

 

자꾸 상황을 정리하고 그를 어색하게 존대하며 거리를 두고 연극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 노력하는 리비를 보며 어쩌면 나도 그녀에 동참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극보다 더 극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관객과의 대화의 대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해하며 리비가 우리에게 말하는 대로 데클란이 자신의 목에 칼을 그어 터져 나오는 핏줄기를 막으며 다시 손목에 칼을 그으며 수갑이 채워진 채 응급실에 실려 가는 그 모습으로 마지막을 끝맺고자하는 마음에 이기적으로 동참하고 있지 않을까? 이보다 더 완벽한 결말은 없으니까.

 

 

[Opinion] 끝나지 않은 현실의 이야기 - 데클란 ② - 연극 마우스피스 [공연] 에서 계속.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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