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20 시즌, 리버풀이 우승했다 - 축구에서 브랜딩을 찾다 #1

글 입력 2020.07.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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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드디어 ‘프리미어 리그’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코로나19로 인해 리그가 중단되는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9-20 시즌은 이번에도 숱한 화제와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수많은 축구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축구팬들의 이목을 끄는 건 당연히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 첫 우승을 차지한 리버풀의 이야기일 것이다. 1989-90 시즌을 끝으로 단 한 번도 자국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리버풀은 2015년 부임한 위르겐 클롭 감독의 지도 아래, 무려 30년 만에 오랜 숙원이었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렇다면 위르겐 클롭 감독은 도대체 어떻게 리버풀에 변화를 가져왔을까? 도대체 무엇이 만년 중위권이던 클럽을 다시 리그 최강자의 자리로 올려놓은 걸까?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리버풀 FC’라는 축구 클럽의 역사에 대해 간략히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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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는 1892년, 영국의 리버풀 지역을 연고로 세워진 축구 클럽이다. 안필드의 임대인이자, 1878년 에버튼 FC을 공동으로 창단한 존 하울딩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후 리버풀은 톰 왓슨, 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등 뛰어난 감독들과 선수들의 노력에 힘입어 강팀으로 자리를 잡았다. 리그 우승을 19번이나 차지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번)에 뒤이어 또 다른 리그 최강자로 군림하였다.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으로 거론되는 헤일즈 참사와 힐스버러 참사를 겪으면서 리버풀의 입지는 급격하게 흔들렸다. 감독과 주축 선수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하나둘씩 팀을 떠났다.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기나긴 침체기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리버풀의 그 시절이 마냥 어둡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로비 파울러, 마이클 오언, 스티븐 제라드 같은 뛰어난 선수들이 등장해 좋은 활약을 보여줬고, 라파엘 베니테스 같은 명감독의 지도 아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는 업적을 이뤄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안정성과 꾸준함이 요구되는 자국 리그에서 리버풀은 번번이 미끄러졌다. 이 시기에는 7위와 8위를 모두 합쳐 6번이나 차지했다. 6위도 세 번이나 했다. 물론 프리미어 리그의 치열함을 생각하면 이것도 나쁜 성적은 아닐 것이다. 사실 준우승도 세 번 했었다. 하지만 EPL 출범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함께 리그를 지배하던 강팀의 성적이라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플레이도 과거에 비해 단조로워졌다. 마이클 오언, 스티븐 제라드 같은 선수들의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플레이가 늘어났다. 리버풀 특유의 역동적이고 공격적인 축구는 사라졌다. 특히 2000년대 제라르 울리에 감독, 2010년대 초반 로이 호지슨 감독과 케니 달글리시 감독이 있던 시절은 끔찍할 정도다. 참다못한 구단의 보드진이 장기적으로 팀을 변화시키기 위해 당시 스완지에서 돌풍을 일으키던 브랜던 로저스 감독을 데려오기도 했지만, 그 역시 리버풀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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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2015년 10월, 브랜던 로저스 감독의 후임으로 위르겐 클롭 감독이 부임했다. 이미 2008년부터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이끌며 소위 ‘게겐프레싱’이라고 불리는 자기만의 축구를 선보이며 눈에 띄는 성과를 냈던 위르겐 클롭 감독은 이번에는 리버풀에 자신의 철학과 색깔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일단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게겐프레싱에 대해 간단히 말해보자면 압박 축구의 일종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오늘날 현대 축구의 트렌드는 바로 짧은 패스를 통해 볼의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점유율 축구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팀이 바로 티키타카로 유명한 스페인 라리가의 FC 바르셀로나다.

 

압박 축구는 이러한 점유율 축구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의 ‘아리고 사키’ 감독은 11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패스와 전개를 할 것을 요구하는 요한 크루이프의 ‘토탈 풋볼’에 더해 전방 압박과 지역 수비를 가미한 ‘컴팩트 풋볼(사키이즘)’을 통해 압박 축구의 탄생을 알렸다. 위르겐 클롭 감독의 게겐프레싱은 컴팩트 풋볼을 공격적으로 재해석한 전술이다. 보통 축구를 하다 볼이 상대에게 넘어가면 빠르게 수비라인으로 복귀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클롭 감독의 게겐프레싱은 볼을 뺏기는 순간 주변에 있던 선수들의 동시다발적인 전방 압박을 통해 6초 안에 주도권을 다시 가져와 역습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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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클롭 감독은 바로 이 게겐프레싱을 리버풀에 적용했다. 그는 축구 전술부터 선수들, 팀의 철학과 운영에도 자신의 색깔을 입히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클롭은 팀의 새로운 색깔에 맞지 않는 선수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한편, 그가 원하는 축구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인재들을 데려왔다. 예전처럼 대형 선수들의 영입과 이적에 집착하는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경기장에서는 팀 내 에이스에게 의존하던 모습이 사라졌다. 대신 모든 선수들이 한 몸처럼 나서서 상대를 빠르게 압박하고 공격을 전개해나갔다. 이를 통해 상대의 패스 길을 차단하고 경기를 장악했다. 리버풀 특유의 역동적이고 공격적인 축구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곧 성과로 이어졌다. 2016-17, 2017-18 시즌 리그 4위에 오르더니 2018-19 시즌엔 준우승을 차지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오랜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9-20 시즌, 그토록 염원하던 프리미어 리그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4년 안에 우승컵을 가져오겠다던 팬들과의 약속을 그대로 실천해 보인 것이다.

 

이러한 위르겐 클롭 감독과 리버풀 FC의 이야기는 ‘브랜딩’을 하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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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이란 무엇인가? 일단 브랜딩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마케팅’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마케팅 협회에 따르면 마케팅이란 조직이나 개인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교환을 창출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시장을 정의, 관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시장의 수요를 관리하는 경영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마케팅의 목표는 기업의 판매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맞춰져 있다.

 

반면 브랜딩은 어떨까? 사실 마케팅과 브랜딩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쉽지가 않다. 따지고 보면 브랜딩도 마케팅의 한 갈래이기 때문이다. 괜히 ‘마케팅의 완성은 브랜딩이다’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딩에 대해 굳이 정의를 하자면,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브랜드를 구축하고 이를 유지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통해 기업과 브랜드가 지닌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단,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비단 물질적인 가치만을 말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이상의 무언가도 함께 포괄한다. 이를테면 기업의 비전, 신념, 철학 같은 것들 말이다.

 

브랜딩을 한다는 건, 브랜드가 지닌 가치를 기반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의 모든 경영활동은 브랜드가 포함하거나 명시하는 가치의 범주에 속해 있어야 하며, 브랜드가 전하는 논리에 맞춰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고객의 행동과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브랜드야말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선호도를 창출하고 충성도를 형성한다. 고객을 브랜드의 열렬한 팬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브랜드의 세계는 더욱더 탄탄해지고 공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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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브랜드에 어울리는 가치를 설정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기까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난한 과정에 들어가기 앞서,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과연 무엇일까? 그건 바로 브랜드의 ‘스피릿(Sprit)’을 정의하는 것이다. 바꿔 말해 브랜드만의 색깔, 분명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30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리버풀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보자. 기나긴 침체기 동안 역동적이고 공격적이던 리버풀의 축구는 한두 명의 스타플레이어에게 의존하면서 조금씩 그들만의 색깔을 잃어버렸다. 그 결과, 자연스레 이적시장의 영향력이 커졌다. 만약 팀 내 에이스를 지키지 못하거나,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또 다른 스타급 플레이어를 데려오지 못하면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의미 없는 막무가내 식의 영입이 마구잡이로 이뤄졌다. 그런 와중에도 에이스들은 꾸준히 팀을 떠났다. 이러한 결과들은 결국 ‘30년간 리그 우승 0회’라는 기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2015년, 새롭게 부임한 위르겐 클롭 감독은 리버풀에 그들이 잃어버렸던 색깔을 다시 팀에 부여했다. 이번엔 선수들과 클럽의 보드진도 클롭이 원하는 색깔의 축구를 실현하기 위해 모두 나서서 노력을 기울였다. 빠르고 역동적인 축구, 화끈하고 공격적인 축구, 그리하여 보는 재미가 쏠쏠한 축구. 이게 바로 리버풀이 30년 만의 우승을 가능하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 팀의 색깔이 있느냐, 없느냐. 팀의 철학이 있느냐, 없느냐. 팀의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 바로 이것들이 강팀을 만드는 첫 번째 요건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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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팀이나 감독들에겐 그들만의 축구 철학이나 스타일이 있다. 이를테면 필드 위 11명 모두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요한 크루이프의 ‘토탈 풋볼’, 전방 압박과 지역 수비를 강조하는 아리고 사키 감독의 '컴팩트 풋볼', 짧은 패스를 통해 상대 수비 라인에 빈틈을 만들어 그 공간을 점유하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티키타카’, 공격 라인에서부터 동시다발적인 압박을 가하는 위르겐 클롭의 '게겐프레싱', 악명 높은 수비와 역습을 자랑하는 조제 무리뉴의 '안티풋볼(혹은 실리축구)', 크루이프의 토탈 풋볼에서 체력을 강조한 사키이즘의 영향을 받은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두 줄 수비' 등등.

 

이는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소위 성공한 브랜드, 혹은 글로벌 브랜드라고 불리는 브랜드들에게는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들만의 색깔과 철학이 존재한다. 디즈니가 영화를 만들고 놀이공원을 운영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애플은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제품을 만든다. 레드불은 사람들의 도전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음료를 만든다. 루이뷔통은 삶이라는 여행의 동반자가 되기 위해 존재한다.

 

이렇듯 성공하는 축구 팀과 브랜드에게는 그들만의 철학과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분명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갖는 것. 확고한 ‘브랜드 스피릿’을 정의하는 것. 바로 이것이 성공적인 브랜딩을 위한 첫 번째 명제다.

 

 

[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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