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4개월, 3주, 그리고 2일 [영화]

글 입력 2020.07.2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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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선 낙태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 단어는 '태아를 떨어뜨린다'라는 태아 중심적인 의미가 들어있어 '인공 임신중절' 또는 '인공 임신중단'이 권장되는 표현입니다.

 

*글에는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창 대한민국의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의 책과 동영상을 집중적으로 접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 중 <유럽 낙태 여행>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루마니아의 끔찍한 여성 재생산권 역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거를 고발하는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에 대한 언급이 있어, 이 작품을 보게 되었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2007년 칸 영화제에서 최고 높은 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으로, 수상 내역 때문에 기존에도 알고 있었던 영화이다. 또한 루마니아 영화이기 때문에 생소한 작품이기도 했다.
 
우선 책에서도 언급된, 영화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짚고자 한다. 시간적, 공간적 배경인 1987년의 루마니아는 차우셰스쿠(Nicolae Ceauşescu) 독재 정권의 시대였다. 이 정권은 기행을 꽤 많이 보였는데, 그중 영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행보는 인구 증가 정책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임과 낙태를 모두 금지시키고, 배란일 때마다 동침을 하는지 감시하는 비밀경찰이 있는가 하면 자연 유산일 시에 인공 유산인지 판단하기 위해 수술실을 들이닥쳤던 사실은 굉장히 비상식적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오틸리아와 가비타라는 여대생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낙태를 하고 싶어 하는 가비타와 그녀를 돕는 룸메이트 오틸리아, 그들의 이야기는 극사실적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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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독재 정권 당시의 열악한 경제 상황, 그리고 정부의 처벌에 대한 두 주인공의 두려움이 역력히 나타난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음울하며 인물들의 대화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들이 처한 상황을 비춘다. 영화 내에선 동네 곳곳에 비밀경찰들이 있고, 낙태가 이루어진 호텔에서는 신분증 검사가 엄격히 이루어졌다.
 
영화는 낙태를 돕는 오틸리아의 시점으로 진행이 된다. 다소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게 있는 가비타를 위해 그녀는 발로 뛰며 호텔방을 구하고 의사를 대면한다. 가비타의 임신 주수가 너무 차 낙태가 살인죄로 적용됐기 때문에 의사는 두 주인공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 그렇게 둘은 굴욕적인 성폭행을 당하고, 의사가 간 후에 오틸리아는 남자친구 어머니의 생신 파티에서 유쾌하지 못한 대화를 한 후 호텔로 돌아와 모든 뒷정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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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오틸리아와 남자친구의 대화이다.

 
"나도 임신하면 어떻게 하지?"
"무슨 걱정이겠어? 네 문제도 아닌데."
"생각은 해본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할 건데?"
"진정해, 혹시 일 생기면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결혼을 해야겠지... 낙태는 못하게 할 거란 말이었어 너무 위험하니까... 임신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임신했으면 어쩔거야?"
"너 임신 안 했잖아"
"의논조차 못하는데 뭘 도와줄 수 있겠어. 걱정 마. 너한테는 기대도 안 해. 적어도 가비타는 날 도와주겠지."
 
 
남자친구는 오틸리아와의 구체적인 의논을 피하고 있다. 알아서 할 것이라는 말뿐, 그녀를 이해하려 하지도 않거니와 낙태는 못하게 할 것이라는 말을 한다. 와닿는 문구, "적어도 가비타는 날 도와주겠지." 여기서 오틸리아가 왜 그렇게 무리하여 가비타를 도와줬는지 알 수 있다.
 
오틸리아는 가비타의 가족도, 절절한 친구나 연인도 아니다. 하지만 끔찍한 일들도 마다하며 가비타를 도왔다. 당시 사회 속에서 여성은 임신과 출산에 철저히 무방비하였기 때문에 오틸리아는 가비타의 상황을 그저 남의 상황으로 볼 수 없었고, 도움에 대한 희망이 남자친구에게서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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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낙태를 한 직후 호텔 레스토랑에서 가비타는 고기, 간, 뇌, 쇄골 등을 시킨다. 다소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장면이며 무심한 가비타와 아직 불안을 떨치지 못한 오틸리아가 대비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 제목과 같이 (4개월의 임신 주수, 3주의 고민 시간, 그리고) 2일 만에 끝나버린 서러우면서도 불안한, 짧은 이야기의 종점이다.

영화는 억압적인 사회가 얼마나 여성에게 위험하고 폭력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있다. 그리고 난 이런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였다. 직접적이고 음울한 표현법 때문이 아니었다. 구체적인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나 역시 여성이고 여성의 재생산권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이라는 것은 여성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에 그에 관련한 재생산권을 빠뜨릴 수 없다. 재생산권은 1994년 카이로 '인구 및 개발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정의한 바에 따라 '모든 부부와 개인이 자녀의 수와 이에 관한 시간적, 공간적인 환경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결정하고 이를 위한 정보와 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을 포함한 여러 사회에서 이 권리가 법적으로 침해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모자보건법에 따라 낙태가 제한적으로 허용되며, 이외의 경우는 불법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암암리에 낙태 시술은 수많은 병원들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낙태가 불법이지만 실질적으로 완전히 금지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낙태가 행해지는 것을 모두가 알면서 그것을 '불법'이라 하며 그와 관련한 의료 행위에 관해 조금의 권리도 보장하지 않는 상황이 한국의 현실이다.
 
여성이 국가의 인구 조절을 위한 수단이 아닌, 재생산권을 지닌 한 주체로서 인식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전세계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언제쯤 모든 여성이 자신을 위한 선택에 대해 정당한 권리와 복지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이 내려진 지 1년이 더 지난 지금, 관련 개정안을 정부에서 발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낙태라는 주제는 굉장히 민감한 이슈이고, 나의 글은 큰 주제의 담론 중 일부일 뿐이다. 이 글을 읽고 다른 의견을 가지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재생산권과 성적 권리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토대이자 최우선 순위인 기본적 권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낙태뿐 아니라 누군가가 하는 모든 '결정'이라는 것은 타인에게 도덕적 비난거리와 비동의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무조건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심지어 그 법은 헌법 불합치 대상이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현 여성 재생산권에 대한 생각에 잠겨보시길 바란다.
 
 


[노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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