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모두가 쓰는 시대

글 입력 2020.07.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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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책을 읽고 사는 독자는 점점 줄어드는데, 글쓰기 강좌는 어디에서나 흥하는 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도 활발하게 출판된다. SNS에 올린 글로 이름을 알려 책을 낸 사람들도 많아졌다. 독립출판은 이제 글 좀 쓰고 읽는 사람들이나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익숙한 문화로 자리잡았다.

 

이렇듯 출판의 문턱은 낮아지는 가운데 독자는 가벼운 책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다보니 별 내용 없는 소위 '힐링'류의 책이 쏟아져나오기도 한다. 이런 세태를 풍자하는 사람들이 아무 캐릭터 옆에 '-니까 괜찮아' 같은 아무 제목을 붙여 만든 책 표지를 만들고, 그것들이 유머로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출판계의 이런 흐름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점에 어느 정도 공감하긴 한다. 하지만 얼마 전에 한 에세이 도서에 누군가 별점 하나를 주고 이런 건 일기장에나 쓰라는 평을 준 걸 봤을 때는 왠지 반감이 들었다. 글쓰기 열풍이 불고 에세이가 범람하는 이 시대가 그저 질 낮은 출판물들을 양산하는 결과만을 낳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예전에는 일기장에나 쓸 수 있었던, 혼자 끌어안고 견딜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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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모친의 장례식에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정치계 인사들이 조문을 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조화를 보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피해자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라고 지적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분노한 사람들은 피해자와 연대한다는 메시지를 표출하기 위해 그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쓴 <김지은입니다>를 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초봄에 나온 책이 여름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온라인 서점에서건 오프라인 서점에서건 책 <김지은입니다>를 사려면 재고가 없어서 1주일 넘게 기다려야 했다.

 

<김지은입니다>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읽을 자신이 없어 포기했던 나 역시 이번 기회에 책을 주문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책에는 거대 권력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 그러나 동시에 '피해자다움'에 붙들려 폄훼되어야 했던 김지은 씨의 500여일이 담겨 있다. 읽으면서 김지은씨의 목소리보다 더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자극적인 헤드라인들이 떠올라 괴로웠고, 2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좀 더 지속적인 관심을 갖지 못한 것이 죄송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책 제목을 검색하면 이 책을 읽으며 용기 있게 이야기해준 김지은씨에게 감사하다며 이 사건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자신을 반성한다는 내용의 리뷰가 많다.

 

 

이 글을 쓰는 것은 나의 경험을 피해자의 언어로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들이 말하지 못했던, 감춰야만 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김지은입니다>, 316쪽

 

 

어떤 사람은 글쓰기를 통해 비로소 사람이 된다. 더 정확히 말해 사람으로 '여겨진다'. 딱딱한 기사문으로 설명되던 사람, 늘 뉴스나 신문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말하여지던' 사람이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를 이해하는 데 한걸음 가까워진다. 자기 자신을 쓰는 일의 힘은 거기에 있다.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내몰리는 노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낸 <임계장입니다>와 현직 경찰관이 쓴 <경찰관 속으로>같은 책들도 마찬가지다. '경비원'이나 '경찰'이라는 단어와 그 단어에 깃든 편견에 갇혀 있던 사람은 글쓰기를 통해 우리 앞에 고유한 한 명의 사람으로 걸어나온다. 그리고 말한다. 여기에 이런 사람이 선명하게 존재한다고.

 

모두가 쓰는 시대란 그런 개인의 이야기들이 바깥으로 나와 공감을 얻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는 시대다. 구체적인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에도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일기장에나 써야 할 이야기'의 경계란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새로운 시대는 견고한 울타리 바깥의 사람들을 배척하는 '우리'와 그들이 지키는 울타리 안의 거대한 무언가가 결코 울타리 밖 한 사람의 일상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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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얼마 전 사람들이 김봉곤 작가에게 실망한 것도 그런 지점이다. 그의 작품은 소설은 소설과 에세이,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기법으로 쓰였다. 실제로 김봉곤 작가의 작품들에는 '봉곤'이 등장할 때가 많다. 혹자는 그의 작품을 보며 속된 말로 '게이들이 나와서 연애하고 섹스하는 특별할 거 없는 이야기'라고 이야기했지만, 평론가들을 비롯해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전까지는 갈등의 소재로 '사용'되던 퀴어 소재를 일상적인 언어로 서술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퀴어단편선에서 '유월열차'로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던 나 역시 그런 점이 좋았다.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당사자이기도 한 그는 글쓰기를 통해 이야깃거리로 소비되던 성소수자의 삶을 자신의 언어로 주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이야기하기'는 모순되게도 다른 사람들의 삶을 전시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었다. 현실의 인물들과 주고받은 사적인 메시지를 상대방의 동의 없이 그대로 소설에 사용했다는 점이 폭로되었고, 단행본 두 권과 그의 작품이 수록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모두 판매가 중지되었다.

 

최근 늘어난 여성서사와 더불어 김봉곤 작가의 작품은 이성애자-남성과 동일시되던 기존 문학판에 새로운 담론을 제시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 역시 문단의 일부로 작가라는 권력을 가지고 개인을 압박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나를 비롯한 독자들의 실망은 더 컸다. 이번 논란은 자연스레 소위 '문단'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각종 문학상의 심사가 공정한가부터 고질적인 문단의 카르텔에 대해서 폭로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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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 작가와 문단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간다. 말하여지지 않는 무언가를 말하고자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모여 카르텔을 이루고 또다른 한 개인에게 결과적으로는 폭력을 행사했다는 점이 기묘하게 느껴진다. 이번 사건이 문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더 두고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퀴어문학의 창작이 주춤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모두가 쓰는 시대, 어느 때보다 개인의 이야기가 소중해진 시대에 <김지은입니다>를 비롯해 앞서 말한 책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희망한다.

 

더불어 글 내내 쓰는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했지만 모두가 쓰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읽는 사람일 것이다. <김지은입니다>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것도, 김봉곤 작가의 논란을 읽어내고 출판사에게 항의를 표한 것도 독자들이었다. 모두가 쓰는 시대는 그 모든 '씀'을 읽어내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떻게 쓰느냐못지않게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기준 역시 필요하지 않을까. 모두가 글을 쓰는 시대란 곧 읽는 자의 윤리가 필요한 시대, 읽는 사람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대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김선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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