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툴루즈 로트렉, 그가 그려낸 인생의 삽화들

나는 그저 기록할 뿐이다
글 입력 2020.07.27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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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의 마지막 섹션에서 상영 중인 영상

 

 

툴루즈 로트렉의 유화를 기대한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포스터의 대가였던 그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조명해 그의 인생을 전시를 통해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이번 전시는 해외 재단 측의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오는 다수의 기존의 예술의전당 전시처럼 그리스 재단에서 해외 순회 전시를 하던 것을 열네 번째로 가져와 서울에서 개최한 전시다. 기존의 컬렉션에서 1.5배 정도 되는 작품을 더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중간중간의 진열장은 따로 경매를 통해 구매한 작품을 담아 한국에서만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1960년대의 도록과 같은 아카이브적인 자료도 보여주려고 애썼다고 하고, 전체적으로 기획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 올해 5월까지 진행됐던 툴루즈 로트렉 단독전의 앵콜전시를 진행하게 된 계기는 코로나 19로 인해 미국 플로리다에서의 전시가 취소되고, 원작을 소장하고 있는 그리스로의 반출도 어려운 상황에서 코로나 19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재개관을 제안한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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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밀턴(좌)과 메이 벨포르(우)

동성 연인이었던 그들은

전시장 내에서 마주 보는 구도로 걸려있다.

여기서도 기획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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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메이 밀턴의 포스터는

피카소의 작품 <푸른 방(1901)>에도 등장한다.

 


19세기 프랑스는 예술가들이 기존의 귀족이나 부유층 고객만을 위해 예술품을 만들었던 작업 방식을 버리고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자신만의 예술작품을 창작해 시장에 팔기 시작한 시기였다. 19세기 중후반까지, 석판화나 사진 등 대량으로 예술품을 제작하는 새로운 방식이 개발되면서 일반 대중들도 예술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된 중요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툴루즈 로트렉은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화가였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벨 에포크인데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라는 뜻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전에 없던 풍요와 평화를 누렸던 파리, 하지만 툴루즈 로트렉은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와 밤 문화의 상징 물랭루즈 등을 무대로 그 풍요로운 시기 속에서도 소외당하던 이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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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4월에 열린 로트렉의 석판화 시리즈 전시회를 홍보하기 위해

<엘르(Elles, 여인들)>의 책 표지에 쓰였던 이미지를 사용하여 새로 제작한 포스터

 

 

그중에서도 나에겐 <엘르>라는 작품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1892년에서 1895년까지의 3년 동안 로트렉은 몽마르트의 유곽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 <엘르> 연작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자유분방한 일상생활을 그린 작품을 엮은 것이다.

 

이 장면들이 그 당시에는 추악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로트렉의 눈에는 이 여성들의 모습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비춰졌는데, 그 모든 것은 아마 친밀함과 우정어린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로트렉 이전에는 그들의 강요된 일상 속, 그 이면의 진정한 삶을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성공한 예술가는 없었다고 한다.

 

모던아트의 시작이라 불리는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을 보면 피카소가 주제는 다루는 태도에 있어 로트렉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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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렉은 몽마르트 유곽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진정한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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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의 영향을 받은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1907)>

 

 

로트렉의 친구이자 저널리스트인 타데 나탕송(Thadée Natanson)은 "앙리(로트렉)은 남성보다는 동물을, 동물보다는 여성을 좋아했다. 그는 미칠 정도로 말을 좋아했지만 말을 타지는 못했다."라고 회상했다.

 

로트렉은 가문의 계속되는 근친혼의 영향으로 장애를 물려받은 데다 14살 무렵부터 두 차례 넘어진 이후로 하반신의 성장이 멈추기 시작해 성인이 되었을 때 150cm가 겨우 넘는 키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알퐁스 백작은 말을 타고 사냥을 즐기곤 했는데, 로트렉은 평생 지팡이에 의지한 채 살아가야 했기에 아버지처럼 승마와 사냥을 즐기는 귀족의 생활을 누리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그 이후로 연필은 늘 그와 함께하는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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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valier, 잉크 드로잉 (좌)

Le Jockey, 석판화 (우)

 

 

하지만 귀족들 틈에서 자란 로트렉은 말에 대한 열정이 매우 컸다. 그의 신체적 한계도 그런 열정을 더 크게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이를 대변하듯 전시장의 여섯 번째 섹션의 타이틀이 말과 승마일 정도로 그는 말을 사랑했고, 그런 만큼 작품으로도 많이 남겼다.

  

특히 Le Jockey(경마)라는 작품은 1899년에 그려진 것으로, 그 당시의 로트렉은 알코올 중독과 과대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와 동시에 그곳에서 퇴원하기 위해서 그가 사랑했던 말을 다양하게 그렸던 때의 작품이라고 한다. 로트렉의 상황 때문이었는지 확실히 기존의 그림들과 다른 화풍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상적인 것이 아닌, 

진실된 것을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코멘트를 달지 않는다. 그저 기록할 뿐이다."

 

 -툴루즈 로트렉-

 

 

로트렉은 그가 보고 느끼는 세상을 기록했다. "언제 어디서나 추함은 또한 아름다운 면을 지니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짜릿하다."라는 말을 남긴 로트렉의 작품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전시를 관람한다면 꼭 도슨트와 함께하길 추천한다. 전시의 구성을 따라가며 작품 뒤에 숨겨진 로트렉의 일생을 함께 듣고 있다 보면 그가 그려낸 작품들 하나하나가 결국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스토리의 삽화였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툴루즈 로트렉展 - 앵콜전

- Henri de Toulouse-Lautre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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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일정

2020년 6월 6일 ~ 9월 13일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제 1,2 전시실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입장 마감: 오후 6시)


입장료

성인 15,000원

청소년 12,000원

어린이/유아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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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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