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흑인과 여행하는 백인을 위한, '그린북' [영화]

글 입력 2020.07.2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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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북이 2019년 오스카 상을 받자,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는 불쾌한 기색으로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파이크 리에게 그린북 수상은 “명백한 오심”이었다. 그린북의 오스카 수상은 영화 밖의 논란을 부추겼다. 작품의 실화 왜곡과 감독의 과거 행적, 영화가 인종 간 화해를 말하는 방식이 백인 중심의 태도라는 점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린북의 수상에 회의적이었다. 이들의 시점에서 영화를 볼 때 <그린북>은 과연 어떻게 보일까?

 

본래 <흑인 운전자를 위한 안내서(The Negro Motorist Green book)>라는 이름으로 1936년 출간된 그린북은, 첫판 발행 이후 꾸준히 개정판을 발행했다. 짐 크로 법과 인종 분리 정책이 견고하던 시대에 그린북은 여행보다는 생존의 문제였다. 도로에 선 흑인은 항상 목적지에 도달하기 이전에 살해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길을 떠났다. 그 과정에서 흑인의 안전을 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 그린북이나, 이 책은 흑인이 벗어나지 말아야 할 여행길, ‘갈 수 있는 곳’을 모아 제공함으로써 흑백 분리를 당연시하고 인종주의 근절에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은 백인들을 만족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시대의 인종주의를 여실히 드러냄과 동시에백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사 속 ‘그린북’과 영화 <그린북>은 기묘하게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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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간 우정과 화합을 말한 영화 <그린북>에 주인공 돈 셜리의 유족들은 기분이 상했다. 돈 셜리의 남동생 모리스 셜리와 유족들은 영화가 돈 셜리를 재현한 모습에 강하게 항의했다. 영화가 ‘실화에 기반한다(Inspired by true story)”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돈 셜리를 부정확하고, 허위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모리스 셜리는 영화계에 <그린북> 속 실화 왜곡을 조목조목 짚은 편지를 보낸다. “형과 토니 발레롱가는 친구가 아니었다. 발레롱가는 어디까지나 ’고용인‘일 뿐이었다” 토니는 불성실한 태도로 얼마 뒤 셜리에게 해고를 당했다. 이런 점으로 보아 둘 사이에 피고인-고용인을 벗어난 우정이 싹틀 기미는 없었다.

 

또한 모리스 셜리는 작중 둘 사이의 사회적 경계를 넘는 토니의 넉살과 셜리의 까탈스러움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프라이드 치킨‘ 장면이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우리 형은 절대 백인이 자기에게 치킨을 먹도록 가르치게 둘 사람이 아니었다." 이 장면은 재능 있는 예술가지만 가족과 단절한 채 고독한 삶을 사는 영화 속 셜리의 설정이 완전한 허구인 것만큼이나 유족들에게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셜리는 가족들과 단절된 적이 없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형제들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대소사에 잊지 않고 참석했다. 모리스 셜리는 ”영화의 설정은 허구에요. 형의 유해는 저의집에 있습니다. 유품도 제가 보관하고 있지요. 형이 그러길 원했습니다.“ 영화는 사전에 유족의 동의를 받지 않고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애초에 ’그린북‘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말아야 했어요. (...) 영화의 렌즈는 발레롱가 가족들의 것이에요. 이들이 정말 그린북이나, 돈 셜리를 다룬 실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면 아주 핵심적인 것들을 누락시킨 겁니다. 하지만 그게 바로 백인 구원자(White Savior)들이 하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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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린북>의 각본가이자 프로듀서인 닉 발레롱가(작중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와 비고 모텐슨 등은 유족들의 항의에 즉시 반발했다. ”유족들이 돈 셜리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며, 심지어 원한 관계라고 할 수도 있는 증거를 갖고 있다.“라며 유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셜리의 친구와 연락 후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돈 셜리가 직접 이 영화가 여행 기간만을 다룰 것을 요구했고, 생전 이 이야기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나는 고심했지만 당사자의 의견을 따른 것“이라며 해명했다. 유족들이 작품상 수상으로 인해 영화에 얽힌 이권을 탐내고 있는 거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왔다.

 

하지만 스크린 밖에서 이들의 행적은 그리 떳떳하지 못했다. ’그린 북‘ 논란 이후 닉 발레롱가가 9.11 테러와 관련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음이 드러나고, 감독 피터 패럴리는 과거에 여배우에게 성기 노출 행위로 여러 차례 성추행을 한 행적이 다시 구설수에 오른 것이다. 비고 모텐슨 역시 관객과의 대화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것이 드러나 재차 사과했다. <그린북>의 오스카 수상은 과연 이 영화가 스크린 밖에서도 자신이 말한 주제 의식에 걸맞은 태도를 취하고 있느냐를 낱낱이 파고들게 했다. 영화에 오스카 작품상이라는 권위가 뭉뚱그릴 수 없는 구멍이 많았기 때문이다. 돈 셜리를 왜곡해 재현한 데에 대한 항의와 서사 균형이 토니 발레롱가 측에 기울어져 있다는 비판을 잠재우기에 제작진의 해명과 과거 행적은 허술했다.

 

분명 모든 영화는 실화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실화 기반 영화는 각색을 거치면서 사실의 일부가 누락되고 없던 것이 더해진다. 그러니 영화 <그린북>이 실화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작품성을 매도하는 건 과도한 비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린북>은 실화를 각색한 데 그치지 않고, 마지막에 ’토니와 셜리 박사는 2013년 몇 개월 차이로 사망할 때까지 우정을 유지했다‘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영화가 따르고자 하는 실화를 만들어냈다. 셜리 측 유족의 말과 상반되는 이 문구는 발레롱가 가족들의 입장에서만 사실이다. 각본가 닉 발레롱가가 이 문구를 집어넣을 수 있는 건 그가 아버지 토니 발레롱가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고, 그의 가족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유족으로서 닉 발레롱가가 영화 내/외부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건 영화 오프닝과 엔딩에 등장하는 발레롱가 가족 중 대부분 실제 닉 발레롱가의 가족, 친척들이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그러는 동안 돈 셜리의 유족이 작품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영화 속에서조차 셜리와 완벽히 단절된 존재로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이한 불균형이다.

 

작중 돈 셜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면 이런 누락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으나, 문제는 영화의 작품성, 시의성이 돈 셜리의 삶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토니 발레롱가의 로드트립은 뒷좌석에 앉아 있는 흑인 예술가 돈 셜리가 아니면 영화화할 만큼의 의의가 없다. 영화 속 돈 셜리가 미국 흑인 공동체와 단절되고 기피하는 듯한 태도와 달리, 실제 그는 흑인 민권 운동과 셀마 몽고메리 행진에 참여했으며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영화 속에서 돈 셜리의 흑인 정체성은 토니와의 갈등 해소 끝에, 토니의 부추김대로 자신의 ’흑인다움‘을 마침내 인정하고 위스키를 피아노에 올려놓은 채 연주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토니는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본다. 영화 초반, 같은 컵을 사용하는 것조차 경멸했던 토니는 흑인 친구 돈 셜리를 크리스마스에 초대할 만큼 포용적인 인물로 성장하지만, 돈 셜리의 내적 변화는 자신이 소외감을 느꼈던 흑인 공동체에 (백인 토니의 도움을 받아) 편입되는 방식으로 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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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발레롱가는 인터뷰에서 영화가 어디까지나 두 인물의 사랑과 우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영화가) 오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각본가의 이 말은, 어디까지나 두 ’사람‘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고자 했으며, 과도한 정치적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건 오해라는 의미를 담겨 있다. 하지만 영화가 그리는 건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이 아니다. 흑인과 백인 사이의 장벽을 뛰어넘는 우정이 영화가 오스카 작품상을 탈 수 있던 핵심적인 이유이고, 여기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두 집단을 대표하는 인물의 재현이 불균형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 영화의 한계이다. 토니의 이탈리아 이민자로서의 억울함은 스크린에 재현될 법한 약자성이지만, 돈 셜리의 흑인 민권 운동 이력, 흑인 공동체와의 교류는 영화에서 배제된다. 검은 피부의 돈 셜리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정치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참고 참다가 비참한 상황에서 토니에게 구해지고 난 뒤에야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돈 셜리의 모습은 수동적이고, 영화 속 그의 감정적 반응은 대부분 토니의 행동에 대한 반작용이다.

 

영화 <그린북>과 이를 둘러싼 논란은 권력 차로 인해 차별받는 집단의 이야기가 보편적 서사 속에 편입될 때 무엇을 잃는지 보여준다. 우정과 사랑은 보편적으로 환대받는 이야기지만, 인종주의는 백인과 흑인이 서로를 몰랐기 때문에 생겨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백인이 흑인 인권을 다룬 작품은 사회가 마땅히 지녀야 할 ’사랑과 평화‘를 말하는 것으로 칭송받지만 흑인이 자신들의 사랑과 우정을 영화화하면 너무 ’흑인답다‘는 이유로 보편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돈 셜리의 ’흑인다움‘은 토니와의 우정을 위해선 잠시 뒤로 밀어두었다 토니의 손으로 직접 되찾아주어야 할 것이 되었다.

 

흑인 우편부가 백인우월주의로 인해 주유소, 화장실조차 맘 놓고 쓰지 못하는 흑인들을 위해 만든 ’그린북‘은 영화에서 내내 토니의 손에 들려있다. 그는 그 책자를 펼치고, 뒷자리에 돈 셜리를 태우면서 흑인의 서글픈 세계를 다시 알게 된다. 연애편지 쓰는 법을 새로 배우듯이. 셜리는 그의 무례함을 탓하지 않고, 가르치고 달래고, ’품위 있게‘ 토니의 과오를 수용한다. 그가 한층 성장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감동은 거기에 있지만, 돈 셜리의 눈으로 보았을 때도 이야기는 같은 과정을 보여줄까? 평생 차별과 억압 속에 살면서도 자신만의 예술가의 길을 개척한 셜리에게 백인 운전사와 함께한 두 달간의 짧은 여행이 얼마나 인상 깊었을지는 미지수다. 백인에게 흑인은 특별하지만, 흑인에게 백인은 특별하지 않다. 영화 <그린북>이 결국 토니 발레롱가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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