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경쾌한 우울에 대하여 - 툴루즈 로트렉 전

자신과 닮은 존재들을 오롯이 끌어안고자 했던 작가, 툴루즈 로트렉
글 입력 2020.07.25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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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기 전, 로트렉에 대한 인상



At the Moulin Rouge, The Dance.jpg

 

 

전시를 보기 전 툴루즈 로트렉이라는 작가에 대한 나의 인상은 무척 공고했다. '물랑 루즈'하면 떠오르는 작가. 하늘이 시커멓게 어두워진 밤, 화려한 조명과 북적한 인파의 소리, 형형색색의 조명과 빛이 뒤엉킨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고 춤을 추는 사람들의 향락을 담아내는 작가.

 

그의 페인팅 작업은 마치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로 피사체를 담았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꾸밈없는 감성이 느껴져, 다수의 드로잉 작업과 판화 작업을 볼 수 있는 이번 앵콜전에 기대감이 있었다.


 

 

로트렉, 연필로 자유를 사다.


 

이번 로트렉 전에서 가장 인상 깊게 살펴볼 부분은,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로트렉의 페인팅 작업에서 느껴지는 감성과는 또 다른 '날 것의 맛'이라고 생각한다. 두꺼운 유화물감에 덮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연필 선과 세월이 느껴지는 종이들에서 로트렉이 얼마나 습관처럼 드로잉하는 작가였는지 알 수 있다.

 

로트렉은 양쪽 다리 모두가 골절되는 사고를 겪은 후, 성장이 완전히 멈추어 무척 작은 신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덕분에 양질의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우울증을 앓는 등 몸과 마음의 고단함을 겪었다. 로트렉은 정신적 문제로 인해 입원 생활을 할 때 꾸준히 드로잉을 했었고 이 드로잉을 본 의사들이 퇴원을 결정해주자 자신의 지인에게 '연필로 자유를 샀다!'는 말을 남겼다.

 

흥미로운 것은 로트렉의 그림엔 그늘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던 로트렉의 초기 드로잉엔 다수의 자화상이 낙서처럼 남겨져 있다. 단신인 자신의 체형과 얼굴의 특징을 풍자하듯 직설적으로 남겼다. 자신의 삶을 미화시키길 원하지 않은 것이다.

 

 

Le Jockey.jpg

 

 

로트렉의 드로잉을 보면 '그린다'는 느낌보다는 '포착한다'는 느낌으로 휘갈기듯 빠르게 그려낸 것이 느껴진다. 그는 실제로 무척 빠른 속도로 다수의 드로잉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 형태가 정말 사진기로 찍어낸 듯해 생동감이 느껴진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경마(The Jockey), 1899>와 <조랑말 필리베르(Pony Philibert), 1898>는 청소년기 로트렉이 얼마나 천재적인 형태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로트렉은 귀족들 틈에서 자랐고, 아버지 알퐁스 백작은 숙련된 기수였다. 과거나 현재에나 승마는 무척 고급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말은 가장 그리기 어려운 동물로 여겨지는데 로트렉은 이 모든 것이 가장 일상적인 대상이자, 그리기 편한 대상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신기했다.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사이에서



Moulin Rouge, La Goulue.jpg

 


로트렉은 스스로의 작품이 어떤 특정 화파나 양식으로 묶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짜릿함이 무척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많은 사람이 알폰스 무하의 작품에 열광하는 것처럼, A도 될 수 있고 B도 될 수 있는 유연한 작품들은 언제나 어떤 틀에 규정되기를 거부해 흥미롭다.

 

로트렉은 현대 광고의 선구적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상업적인 포스터를 예술의 영역에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는다. 당시 수집가들은 그의 포스터를 높게 평가해 벽에 붙은 포스터를 떼어 가지려고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로트렉의 포스터와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작품에 담긴 대상이 대중적 카바레 쇼부터 고급스러운 공연까지 19세기 말 파리에서 벌어진 다양한 공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뮤즈로 삼았다는 점이다.

 

로트렉은 상류층 자제로 태어났고 미술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지만, 이러한 배경 때문에 자신이 평생 겪었던 신체적 결함과 우울의 그늘을 때때로 더 크게 마주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자기 삶의 우울을 드러내거나, 자신에게 있는 좋은 배경만을 작품에 녹이지 않고 가장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모습들을 담았다. 오묘하게 느껴지는 상류사회에 대한 자조, 비판과 대중을 긍정하는 모습은 어쩌면 '평범'을 가까이하고 싶었던 로트렉의 욕망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로트렉의 작품들을 하나로 축약해보라 한다면, '경쾌한 우울'이라 부르고 싶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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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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