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옛 해동주조장이 문화예술촌으로? : 담양 해동문화예술촌에 다녀오다 [문화 공간]

글 입력 2020.07.2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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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친구와 함께 근교에 자리한 담양에 다녀왔다. 대나무의 고장이라 불리듯, 오랜만에 방문한 담양은 푸릇푸릇한 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씨였는데도, 선명하고 깨끗한 빛깔은 자취를 감추지 않은 듯했다.

 

그런 담양에서도 삶에 깊숙이 자리한 문화예술은 빠질 수 없었다. 특색 있는 지역의 모습처럼, 그곳의 문화예술이 자리한 모습 또한 개성 있고 특별했다. 담양 주민들에게 옛 삶의 터전이었던 해동주조장을 개조해 만든 시설로써, 문화예술복합공간의 형태로 설립된 '해동문화예술촌'은 바로 담양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다.

 

 

 

해동주조장의 색다른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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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문화예술촌 안으로 들어서기 전, 그곳에 아직도 해동주조장의 팻말이 달린 걸 살펴볼 수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 듯, 옛 팻말은 여전히 출입문을 지키고 있다. 문화 공간으로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장소 본연의 수많은 이야기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에서 이 공간이 왠지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예술촌의 전신인 해동주조장은 1950년대 말부터 40년간 전통 주조 방식으로 막걸리를 생산했던 장소로써, 담양의 산업화 시기를 이끈 경제발전의 동력원이었다. 하지만 생산방식과 주류 소비패턴의 변화로 2000년대에는 경영이 악화됐고, 10년간 주조장의 가동을 멈추다 결국 2010년에 문을 닫고 말았다.

 

한때 담양 경제산업의 주축을 담당했던 해동주조장은 순식간에 폐건물이 되기에 이르렀고, 10여 년 동안 방치되다시피 해 주변의 일대 역시 우범 지대로 전락할 위기에 내몰리는 상황까지 맞닥뜨리게 됐다. 그러나 그때, 문화 재생을 통한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이 지역 사회로부터 제기되기 시작했고 주조장은 예술 거점 공간으로 탈바꿈해 제2막을 맞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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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상의 터전에 예술을 녹일 수 있도록 새로운 디딤돌의 역할을 맡은 해동문화예술촌은 2019년 6월에 오픈하며 담양에서의 사회적 위치와 삶의 관계에서 발현되었던 주조장의 역할에 대한 정신적 측면을 재해석한 운영 철학을 설립했다.

 

특히 노동과 쉼, 그리고 나눔의 문화 등 전통적인 해동주조장의 역할과 자율성, 창조성 등의 예술정신을 현대적으로 수용하면서 장소와 인간의 문제에서 출발한 이곳은 '예술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새로운 변화를 폐 건물에 불어넣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의 의미 있는 발자취와 21세기의 문화예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공간의 의미를 더하니, 마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여행한듯한 기분이었다.

 

한편, 갤러리의 뒤편에 자리한 건물에서는 주조장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체험 가능한 공간이 따로 마련돼있어 문화예술과 그것이 자리하기까지의 주된 흐름을 거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더하여 박상화 작가의 비디오 설치작업인 <이너드림-담양>을 통해 6분 47초의 재생 시간 동안 담양을 둘러싼 자연환경, 그리고 그곳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선대인들의 삶과 희로애락의 기억을 특별하게 만나볼 수 있다.

 

정교하고 반듯한 텍스트뿐 아니라, 유동적이며 다채로움이 돋보이는 매체인 비디오로 설명의 여백을 더하니 매우 흥미로웠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더불어, 내가 서 있는 공간의 개념에 보다 근본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장소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예술촌 내 아레아 갤러리에서는 어떤 전시가 열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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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문화예술촌은 현재 기획전인 <날 것, 그대로의 것>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를 보기 전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제목 그대로였다. 날 것, 그대로의 것이 지닌 가치를 탐색하고 발견해내는, 특정 대상에 관한 작가들의 진심 어린 눈길이 예술적으로 승화되어 작품에 오롯이 담긴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자체보다는, 대개 인공적이며 겹겹이 싸인 두꺼운 무언가에 휩싸여 그 대상이 지닌 본질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 역시 나를 이루고 있는 주된 속성이나 모습을 자연스레 두 갈래로 나누어 장점은 더욱 돋보이도록, 단점은 끝도 없이 감추려 한다.

 

이런 모습은 누구에게나 본능 혹은 의도의 지배하에 존재할 것이며, 더군다나 현재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의 온전한 모습이 실제적인 마스크로부터 한층 더 겹쳐졌기에 경계의 시선은 사람들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바로 이렇게, 보이지 않거나 보이는 두 가지의 측면을 비추어주며 전시는 가공되지 않은, 경계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순수성에 집중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에 집중하기 위해 두 작가가 택한 대상은 자연 그대로의 야생적인 속성이기도 하며, 반대로 사람들이 관심 가지지 않는 쓸모없는 대상이기도 하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신음하고 있는 오늘날, 사람들은 입과 코를 가리는 마스크나 타인에 대한 경계의 시선은 거두고 걱정과 근심을 훌훌 털어버린 채 떠나는 삶을 한 번쯤은 상상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날 것, 야생적인 것에 대한 상상력을 가득 담은 담양 해동문화예술촌의 전시 <날 것, 그대로의 것>은 바로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 전시기획 의도

 

 

 

날 것, 그대로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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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전시는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의 예술적 속성들에 집중한다. 아레아갤러리의 A동에서는 해외 각지를 순례하며 유목민의 삶처럼 야생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작품활동을 전개하는 임의진 작가를, B~C동에서는 쓰다 시간이 지나 버려진 것과 오래돼 기피된 공간 그 자체에서 보이는 날 것의 미적가치에 집중하는 유지원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두 작가의 작품 모두 인상 깊었지만, 그중에서도 유지원 작가의 작품은 생각지도 못했던 날 것의 대상을 전시장으로 끌어왔기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영상 설치작과 함께 폐지, 오래된 물건에 미적인 담론을 불어넣어 그것들의 가치를 재생산하려 하며, 영상 작품에서는 작가 본인이 움직임을 선보이는 배우로 등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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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e-Collector

 

 

작가가 발견한 대상은 죽음과 시간, 시간이 지나 결국 의미가 퇴색되어 그 존재 자체가 보잘것없는, 즉 우리의 인식에서 사라져가는 대상물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오래된 것을 재활용하는 게 아닌, 대상의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를 끄집어내는 작품을 선보인다.

 

'Trace-Collector'에서는 영상의 주인공이 된 작가가 폐품이 마구잡이로 방치돼있는 공사 현장과 폐허를 방문해, 쓸모와 가치를 상실한 사물들에게서 본질의 미학을 찾아내고 수집해 카트에 하나둘 싣고 가는 흔적을 담아 보여준다.

 

작가는 어떠한 말도 없이 그저 행동과 표정으로만 버려진 것들을 발견해 살펴보고 선택해 카트에 묵묵히 담기만 한다. 그가 사물들로부터 미적가치를 찾아내는 일정한 기준과 방법은 명시돼있지 않지만, 우리는 카트에 담긴 것들이 작가의 눈에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인지할 수 있다.

 

어쩌면 작가가 특정한 기준점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본래부터 선택의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을 보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보통의 것이 지닌,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소외되고 외면돼왔던 사물들이 어떤 의미를 지닌 채 다시금 쓸모 있는 존재로서 거듭날 수 있는지에 대해 고찰해보도록 의도한 작업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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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

 

 

노동의 가치를 수로 환산해 그것의 결과물을 거대한 작품으로써 표명한 설치작 역시, 시간이 지나 버려져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폐지로 존재하던 사물을 다시금 삶 속으로 거두어들이는 작업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존재 자체를 의미 있게 바라보고자 하는 작가의 시선이 작품 속에 담겼다는 걸 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술가의 시선 때문이었을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폐지 더미는 실생활에는 아무 필요도 없는 것들에 불과하지만, 결과 이전에 한 사람의 수고스러운 행위가 드러났을 순차적인 과정을 생각해보면 결국 이 작품은 노동의 가치를 대변한 완전체인 것이다. 이렇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어느 사물이 예술에 있어서는 무궁무진한 의미를 생산해낼 수 있는, 아이러니한 측면은 문화예술의 무한함과 강력한 힘을 직접적으로 표명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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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주제에서 다룬 '야생의 사고', '순수한 본질성'이라는 키워드는 현실 너머의, 마치 공상과 상상력을 기반으로밖에 둘 수 없는 비현실적인 것으로써 비추어진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들의 근본과 본질적인 바탕을 염두에 둔 채 그 대상을 바라본다면, 예상치도 못했던 특별함을 발견해낼 수 있다. 나 자신이 생각하기엔, 그것이 바로 전시를 통해 기획자가 시사해주고자 한 바인 듯했다.

 

또 한편으로는 '해동문화예술촌'의 공간 역시 한때엔 경제의 중심지였지만 폐허로 몇십 년간 자리했던 해동주조장을 일차적으로 설립의 기반으로 둔 채 변화를 끌어낸 장소이기에, 전시에서 시사해준 바와 같이 본질에서의 숨겨진 미학을 찾아내 의미 있게 구현한 실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폐허의 상태에서 영원히 머물 수밖에 없던 이 공간을 문화의 힘으로 바꾸어 해동주조장과 현재의 전시 공간을 모두 되살린 것, 이것이 바로 <날 것, 그대로의 것>의 진정한 완성작인 것 같았다.

 

전시는 8월 23일까지 진행되니, 담양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한번 관람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디에나 있는 문화예술, 그러나 어디에도 없는 문화예술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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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다른 설립의 목적을 가진 채 새 단장을 했는데도, 담양 주민들의 소중한 삶이 담긴 정체성과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예술적인 감각을 곳곳에 그려 넣은 담양 해동문화예술촌.

 

이 장소에 처음 방문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담양의 푸릇푸릇한 생기와 전통적인 가옥, 그리고 재발견되지 못 할 뻔한 옛 해동주조장의 숨은 진가를 발굴해내 그 곁에 자리한 문화예술의 아름다운 향연이 한데 어우러졌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마음과 기억에 오래도록 여운을 가져다줄, 앞으로도 여러 차례 방문하고 싶고 실제로도 방문할 계획인 담양의 해동문화예술촌을 알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 이 장소를 방문할 모든 이들이 본인이 기대하는 예술의 특별하고 온전한 가치를 전해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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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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