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와 천장 사이] 05. 어느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고백 part.2

게으른 완벽주의자로 살아가기
글 입력 2020.07.2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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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는 단어만큼 인간을 경직되게 하는 말이 있을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방패를 휘두르며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 말은 나 자신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말을 하며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내 앞에 열려 있는 여러 가능성들로 향할 수 있는 문들을 열어보지도 않고 자물쇠를 걸어 잠그는 일과 같다.

 

나는 원래 게으르니까.

나는 원래 시작하는 게 오래 걸리니까.

나는 원래 끈기가 없으니까.

나는 원래 완벽하지 않으면 안 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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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는 단어 뒤에 숨어있었던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일종의 학습된 무기력과 그로 인한 패배주의 같은 것이 숨어 있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이름 뒤에 숨어 쌓여왔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잡아먹는 괴물을 만든 것이다.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은 대체 무엇인 걸까. 나는 대체 무엇이 되고 싶길래 나를 이렇게도 괴롭히는 걸까. 난 완벽해지고 싶었다. 무엇에 대한 완벽인지도, 무엇을 위한 완벽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완벽하고 싶었다. 왜 그런 사람들 않은가. 누가 봐도 멋있는 사람들. 모두들 입을 모아 칭찬하고 존경하는 사람들. 결점 하나도 없을 것만 같은, 아니 그 결점 덕에 인간미까지 더해지는 그런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두’에 나는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결국에는 결점투성이 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완벽한 인간 따위는 될 수 없다. 애초에 완벽과 인간은 같은 문장에 쓰일 수 없는 반대 성질을 가진 단어들은 아닌가. 한 인간이 가진 작은 결점들이 그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 않는가. 결국 이 모든 일들은, 지금의 내 모습은 완벽하지 않은 나를 내가 인정하지 못해서, 내 결점들을 안아주지 못해서 일어난 결과물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라는 흔한 말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물론, 부족한 나조차도 사랑하게 된다면 이런 문제점들은 해결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나를 미워하는 일이 익숙한 사람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축적이 되어야 비로소 나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지금 당장 이 지긋지긋한 무기력에서 벗어나야 하고 당장 몸을 일으켜 움직여야 하는 나에게 적합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소리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성장과 퇴보를 반복하며 결국에는 상승 곡선의 궤도에 올라탈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를 속이고 구슬려가며 데리고 가야만 한다.

 

그리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그 방법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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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매일 작은 일이라도 하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괜찮았다.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든 무력감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적어도 오전에는 침대를 벗어나기. 영양제를 챙겨 먹고, 나를 위한 건강한 끼니를 먹기. 해야 할 일들을 오늘 완벽하게 다 끝내지 않아도 되니 조금만이라도 시작하기. 무기력에 빠져 어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일이라면 적어도 자기 전에 침대에서 좋아하는 시집이라도 뒤적이며 필사하기.

 

이런 작은 일들을 수행하는 것에서 오는 성취감은 나에게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이 존재할 때, 그로 오는 작은 성취감들이 하루를 채울 때, 그 성취감을 기억하며 잠에 들 때. 비로소 나는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머리를 비우는 일이다. <어느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고백 part.1>에서도 이야기 했 듯이 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계획하는 일에 내 힘을 다 써버렸고, 그리고 나서는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며 나를 자책했다. 나에게는 일상을 조금 더 가볍게 대하는 태도가 필요했다. 한 가지 일을 그르쳤다고 그 하루 전체가 망한 것도 나라는 사람이 엉망인 것도 아니라는 걸 계속해서 상기시키며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대하려 했다.

 

그리고 매일 자기 전 일기를 썼다. 나는 매일 일기를 쓰는 일도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앞 장만 너덜너덜한 수학의 정석 책처럼 1월까지만 열심히 꾸며가며 일기를 쓰다가 이내 던져버리고 말았다. 일기도 매일 꽉 채운 분량으로 예쁘게 쓴다는 강박을 버리고 내 하루와 내 기분을 그저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쓰니 정말 피곤한 날이 아니면 매일 같이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일기장은 나의 패턴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 베이스가 되어 주었다. 내가 언제 마음이 충만한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말했듯 완벽함은 허상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원하는 완벽한 나에 가까워진 적이 있다 해도 거기서 오는 행복은 일시적인 것일 뿐. 나는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더 엄격한 기준을 나에게 들이 밀며 내 목을 졸라왔다.

 

내가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잘 꾸려 나갔을 때라는 것을 나는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나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과 현재의 나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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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게으른 완벽주의자로서 살아가는 법을 나름대로 터득해 나가고 있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겪고 있다. 하루아침에 변화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가끔씩 무력감이 몰려오면 변하려 노력했던 내가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 눈 앞이 캄캄해진다.

 

이 에세이도 사실은 한 달 반 전에 기고할 계획이었다. 그때의 나는 변화의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문제는 내가 심하게 오버 페이스로 달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결국엔 다니고 있던 학기 막바지에 편도염이 심하게 찾아왔고 2주를 꽉 채워 앓아누웠다.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내가 해온 일들을 마무리 지어야 할 시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하고 서러워 입원한 병실에서 매일같이 울었다.

 

퇴원 후 2-3주는 아파서 하지 못한 일들을 수습하는 데에 온 힘을 다 썼다. 그렇게 6월 한 달을 보내고 나니 지쳐 떨어져 나가버렸다. 나의 패턴을 찾아야 하는데, 다시 상승 곡선에 올라타야 하는 데, 이 중요한 시기에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은 가득했지만 몸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리고 두려웠다 다시 시작하지 못할까봐.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이 글을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 달 전, 처음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와는 달리 빈 화면 앞에 앉는 것조차 어려웠지만-글을 완성해가며 내 몸을 묶어 두었던 무기력과 강박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다시 나를 구슬려가며 변화의 상승 곡선에 태울 준비가 된 것이다.

 

 

저는 '다시'라는 단어가 그렇게 부드러워요.

다시 하고 싶어 하는 마음,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

실수를 만회하고 

다시 용서받고 다시 힘을 얻고 

다시 깨졌던 관계는 복원되고.

어쨌든 '다시'라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 안에 이미 있는, 

새로운 출발하는 능력요.

 

이슬아 <깨끗한 존경>, 17p

 

 

게으른 완벽주의자로 살아야하는 이상 나는 계속해서 '다시'라는 단어의 힘을 믿으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번에도 어쨋든 '다시' 해보는 내 마음을 믿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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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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