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와 천장 사이] 04. 어느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고백 part.1

어느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변명
글 입력 2020.05.2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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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와 천장 사이] 04. 어느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고백 part. 1



누구나 각자마다 무엇인가에 대해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 것이다. 보통 성장의 과정 속에서 주변 환경과 자신의 성격에 따라 기준이 정해진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만들어지거나,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이 무의식중에 체화되기도 한다. 모두들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만의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위치나 상태에 따라 자신의 기준을 조정하고 수정해 나가는 반면 누군가는 완벽에 가까운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에 자신을 맞춰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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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의 완벽주의적 성향은 약간의 채찍질을 해주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 성향이 강박이 되면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발걸음을 오히려 잡는다. 말도 안 되게 높은 기준에 자신의 목을 매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해 놓은 기준과 점점 멀어져만 가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과 패배감 그리고 무력감을 느끼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고 말한다. 완벽주의자라는 말로 자신의 게으름에 이유를 만들고 싶은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마냥 수긍하기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탓에 이 글을 적어 본다. 이것은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적어 내려가는 변명 아닌 변명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

 

한때 나에게 가장 편안하고도 가장 불편한 광경은 내 방 천장이었다. 몸은 침대 위에서 늘어져라 누워있지만 머리 속은 수많은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텅 빈 천장 위에 해야만 하는 일들과, 하면 좋을 일들, 그럼에도 하지 않아서 내가 놓쳐버린 기회들을 그리다 보면 온몸과 마음이 무력감으로 마비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험 직전까지 공부를 미루다 벼락 치기를 하는 것은 일상이었고, 방 정리, 설거지, 도서관 책 반납 등 이런 간단한 일상적인 일들도 한 번에 하지 못하고 항상 미뤘다. 당시에는 완벽한 타이밍에 시작해서 완벽하게 일을 수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름대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비대한 자아에 비해 초라한 나의 진짜 모습을 마주 보는 것이 두려워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비겁한 생각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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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강박은 오랜 시간 동안 삶을 망가뜨렸다. 우선, 선뜻 무엇인가에 도전하지 못했다. 관심이 가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걸 통해 얻게 될 기쁨에 대한 기대보다 내가 그것에 재능이 없다는 게 드러났을 경우 느끼게 될 실망감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우선했다.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지 8년째가 되어서야 겨우겨우 기타 학원을 찾아갔을 정도이다.

 

항상 언제 시작해서 어떻게 실행해야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지를 계산해 보는 일에 하루 온종일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완벽하게 해낼 수 없을 것 같으면 시작을 하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했는데 안 좋은 결과를 보는 것보다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결과도 안 좋을 거, 괜히 노력해서 힘이라도 빼지 않는 게 몸은 편했다.


무언가를 하고 있던 중에도 작은 것 하나라도 어그러지면 모든 것이 망해버린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전 날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잤는데, 늦잠을 자 버리면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가 늦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할 수 있었을 일들에 대해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분노하며 우울해했다.

 

과제를 실수로 제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다른 과제나 시험을 통해 부족한 점수를 메꾸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수업 자체를 포기해버렸다. 전편 <예쁘지 않은 여자애>에서 이야기한 폭식증도 마찬가지다.


식단 관리를 하고 있던 중에 조금이라도 살찔 것 같은 음식을 먹으면 모든 것이 망해버린 기분이 들어 며칠간 폭식을 해 버리기도 했다. 내 능력 때문에 일이 어그러지는 것보다, 내 의지로 내 손으로 망쳐버리는 것이 나았다.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내가 생각보다 대단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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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미루고 미루다가 시작한 거에 비해 좋은 결과를 낸 적도 몇 번은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들이 쌓이며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주었다. “내가 노력을 별로 안 해서 이 정도인 거지,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어” 라는 일종의 정신 승리에 기름을 부어주는 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정말로 ‘마음을 먹는’ 순간은 오지 않았다.

 

현실의 나와 이상 속의 나의 간극은 벌어졌다. 현실의 내가 초라해질수록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커졌으며, 욕망만으로는 나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내 이상 속의 나는 욕망을 먹고 자꾸만 자라났다. 내가 나의 능력에 비해서 너무 큰 것을 바라는 걸까 생각을 하면 괴로웠다. 굳이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는 하지만, 나는 무엇이 되지 못하는 나를 미워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딱 한 걸음이라도 내디뎌야 하는데, 그 첫걸음이 그렇게도 어려웠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라는 옛 속담이 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모든 일에서는 시작이 아주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우스갯소리로 '나는 첫 단추를 잘 못 꿰면 그 옷을 갖다 버리는 스타일'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잘못 꿰어진 상태로 입고 다녀도 나만 괜찮으면 누가 뭐라 할 일인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첫 단추부터 풀고 다시 꿰면 될 일이다. 시작은 정말 중요한 일인 것은 맞지만 그렇게까지 대단하고 엄청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베개와 천장 사이] 05. 어느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고백 part.2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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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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