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와 천장 사이] 03. 예쁘지 않은 여자애

오래된 외모 콤플렉스에 대하여
글 입력 2020.04.2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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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와 천장 사이] 03. 예쁘지 않은 여자애


 

나에게는 가장 숨기고 싶은 습관 한 가지가 있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찾아오거나, 이유 없이 마음이 불안하거나 슬퍼질 때, 혹은 공허할 때 음식을 찾는다는 것이다.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정량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 음식같은 자극적인 것을 평소의 나라면 먹지도 못할 양으로 마구 먹어 치운다.


이왕 먹는 건데 맛을 즐기면서 먹는다면 억울 하지라도 않지, 이때의 나는 맛을 제대로 즐기지조차 못한다. 그저 맛있는 음식이 주는 자극과 나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달콤한 죄책감만을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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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는 그 순간에는 나를 괴롭게한 다른 생각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음식을 먹다가 더 이상은 못 먹겠다 싶을 때 즈음에 엄청난 자괴감과 함께 잠이 몰려온다.


자고 일어나 잔뜩 부은 얼굴과 몸으로 거울을 보면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졌으면, 그래서 아무도 내 모습을 보지 못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엄청난 무기력감, 자괴감과 만나 내 몸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날은 하루 종일 이불 속에 숨어 나오지 않는다.


꽤나 최근까지도 나의 이런 행동이 나 자신의 의지력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은 고작 음식 앞에서 자제력을 잃는 그런 한심한 사람이라고 자책해왔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 행위를 10년째 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내가 하고 있는 이 짓이 바로 폭식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반복된 폭식과 절식은 내 몸 건강을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내 마음까지 갉아먹고 있었다.


*

 

내가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풀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15살 때 즈음이었다. 원래도 항상 통통한 편이었지만, 그 시기에 여러 안 좋은 일을 한꺼번에 겪으며 스트레스성 폭식이 시작되었다. 당시의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다룰 방법을 몰라 매일같이 음식으로 해소했던 것이다. 폭식의 날들이 반복되면서 원래보다 10kg 이상이 한 번에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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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친구들에 비해 훨씬 두꺼운 팔과 다리, ‘여리여리함’과는 거리가 먼 덩치, 갑자기 찐 살로 인해 생긴 엄청난 튼 살들, 사춘기의 상징인 여드름. 언제나 남들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가장 먼저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덜 못생겨 보일지, 어떻게 하면 덜 뚱뚱해 보일지를 고민하다 보면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전부터 쌓아왔던 외모에 대한 열등감들이 이 시기 즈음에 폭발했고, 내 자아는 아주 납작해졌다.


내가 ‘예쁜’ 외모가 아니라는 것은 언제 알게 됐을까. 가만히 앉아있던 나에게 “야 돼지!”라고 부르던 목소리? 여자애가 얼굴이 자신보다 어떻게 하냐며 놀리던 짝꿍? 누가 보아도 잘생긴 동생에게만 쏟아지던 관심들? 사실 이런 것들이 아니어도 거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예쁘지 않구나"


*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했다. 나름 엄청난 의지를 가지고 시작한 다이어트라 그런 지 2주 만에 6kg이 빠졌다. 그리고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 자신감이 생겨 행동이 자연스러워져서 그런 것이었을 텐데, 나는 외모가 나아져서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외모에, 몸무게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500칼로리 미만의 초절식을 하고 하루에 최소 1시간 최대 2시간 동안 줄넘기를 했다. 그렇게 목표한 몸무게에 도달하자마자 엄청난 폭식증이 와버렸다. 음식을 입에 밀어 넣는 내가 징그럽고 끔찍해 울면서도 계속해서 음식을 먹었다. 몇 달에 걸쳐서 뺀 10kg은 단 몇 주, 아니 며칠 만에 쪄버렸다. 남은 건 여전히 살 찐 몸과, 과도한 줄넘기로 인해 약해진 무릎과 발목, 그리고 무너진 내 자존감뿐이었다.

 

다시 쪄버린 몸으로 고등학교 교복을 맞추었을 때 탈의실에서 얼마나 울었는지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입학한 고등학교는 반포기 상태로 다녔다. 겉으로 친구들과는 잘 지냈지만 항상 내 몸과 내 얼굴을 혐오했고, 몸을 최대한 가리는 옷 몇 벌만 돌려 입으며 학교를 갈 때를 제외하고는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았다.


*

 

억지로라도 자존감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한 덕분에, 대학에 와서는 꽤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 아니, 변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남들 앞에서 숨지 않고 나 스스로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최대한 ‘여성스러운’ 옷들을 골라 입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풀 메이크업을 하고 다녔고, 각막염에 걸릴 때까지 컬러렌즈를 끼고 다녔다.


내가 이렇게 꾸미는 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 안에 타인의 시선과 욕망을 내재하고 있는 이상,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행동은 절대 자기만족이 될 수 없다. 어떻게 해도 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예쁜 여성'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나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얼굴과 몸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외모에 집착을 하면 할수록 불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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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 산문집 <사랑하는 미움들> 中



이후 시간이 지나며 여태 나 스스로를 가둬왔던 여성성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사회에 의해 구성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차차 많은 것들을 고쳐 나갈 수 있었다.


컬러 렌즈를 몽땅 갖다 버렸고, 화장을 줄여 나갔다. 내 몸이 편안한 옷들도 하나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진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탈코르셋을 완전히 실천하기는 어려웠지만, 내가 나를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많은 것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

 

많은 것이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폭식과 절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날씬하고 예쁜 연예인들, 아니 그냥 길거리의 사람들만 보아도 조금씩 위축되는 마음을 보면서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고 느낀다. 살아오면서 나의 열등감과 콤플렉스가 나 스스로를 얼마나 가두었을까. 내가 나를 가두지 않았더라면 할 수 있었을 일들을 꼽아보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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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다이어트를 반복해서 시도하고 있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름답고 싶은 욕망이 남아있지만, 전처럼 무조건적으로 마른 몸과 아름다움을 좇아서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몸을 가지고 그 안에 건강한 정신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자기혐오와 자기애 사이에서 진동하는 마음을 붙잡아 둘 수 있을만한 몸과 마음의 근력이 생기지 않을까.

 

옛날의 나는 예쁘지 않은 여자애였지만, 지금의 나는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사람이려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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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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