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잠들어있던 인형들이 깨어나는 곳 -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

글 입력 2020.07.2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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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jpg


 

지난 7월 15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 (Quay Brothers: Welcome to the »Dormitorium«)(이하 ‘퀘이 형제展’)에 다녀왔다.

 

옛날 민담이나 동화를 읽다보면, 누군가를 저주할 때 인형을 만들곤 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그림이나 사진에 비해 인형은 어딘가 인간의 분신과 같은 느낌을 준다. 전자가 인간을 단순히 모방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반해, 인형은 원래의 인간으로부터 떼어져 나와 새롭게 창조된 또 다른 유사 인간을 보는 것만 같다.

 

만들어진 그 자체로 새롭게 생명을 얻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불이 꺼지는 순간,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순간, 그들은 잠에서 깨어나 세상을 활보할 것만 같다.

 

기존의 회화나 조각이 아니라, 인형이 줄 수 있는 특유의 섬뜩한 인상. 그것을 최대로 밀어붙인다면 퀘이 형제의 퍼핏들이 되지 않을까. 퍼핏(인형, puppet)과도, 애니메이션과도 친하지 않던 나를 ‘퀘이 형제전’의 포스터가 단번에 붙들었다.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퍼핏들, 그건 정말로 인간의 눈을 피해 이 세계의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1. 퍼핏 애니메이션의 거장, 퀘이 형제



2. 퀘이형제.jpg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퀘이 형제는 퍼핏 애니메이션의 거장인 쌍둥이 형제 스티븐 퀘이와 티모시 퀘이를 가리킨다.

 

이들은 1947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필라델피아 예술대학교와 영국 왕립예술학교를 거쳐 1970년대부터 영국에서 영화감독이자 애니메이션 감독 겸 작가로 활동했다. 애니메이션, 실사영화, 일러스트레이션, 국립극장의 무대세트 디자인 등 다방면에 걸쳐 오늘날까지 약 40년 간 세계적인 애니메이터로서 수많은 작품을 남겨왔다.

 

퀘이 형제의 작품들은 그 외형만 그로테스크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작품 속에서 산업사회의 이면의 부조리와 불안, 초현실주의와 에로티시즘과 같은 철학적 주제를 다룬다. 대표작으로는 애니메이션 <악어의 거리(Street of Crocodiles)>(1986), 실사 장편영화 <벤야멘타 연구소(Institute Benjamenta)>(1995) 등이 있다.

 

무의식의 동화 같은 이들의 작품들은 팀 버튼, 크리스토퍼 놀란 등의 쟁쟁한 감독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2. 공포스러운 메타포를 통한, 새로운 세계 - 도미토리움의 창조


 

퀘이 형제는 앞서 말한 대로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드로잉, 영화, 무대 세트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남겼다. '퀘이 형제展'에서는 섹션에 따라 그들의 작품들을 다방면에 걸쳐 관람할 수 있다.

 

'퀘이 형제展'은 그들의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크게 섹션을 나눈다. 섹션 별로 애니메이션을 상영하고 그 바탕이 된 도미토리움을 5-6개씩 배치해놓았다. 애니메이션의 스틸컷 같은 정지된 도미토리움에서 퍼핏들의 세밀한 부분들을 생생하게 살펴본 후 애니메이션을 관람한다면, 직접 마주했던 괴이한 퍼핏들이 실제로 살아움직이는 듯한 충격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음악을 플롯으로 삼아 작품을 제작하는 퀘이 형제의 작업 방식답게, 음악과 더해져 더욱 완성도가 높아진 도미토리움은 생명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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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의 거리 "의상실"

(Street of Crocodiles "Tailor's Shop")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University

 

 

‘도미토리움’은 퀘이 형제의 애니메이션 세트를 칭하는 특별한 단어이다. 퀘이 형제는 자신의 퍼핏을 단순히 인형이 아니라 세트 안에서 고유한 세계를 가진 채 생명력을 가지는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자신들의 애니메이션 세트를 퍼핏들이 잠자고 있다는 의미에서, ‘잠자는 곳’ 또는 ‘묘소’를 의미하는 ’도미토리움(Dormitorium)’이라고 명명했다.

 

도미토리움을 채우는 오브제들은 다소 난해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각자의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이 도미토리움은 그 자체로 매우 정교하고 완성도가 높아서, 정말 퀘이 형제의 시선으로 투과한 세계가 미니어처로 제시된 듯한 섬뜻한 느낌까지 준다.

 

이 도미토리움 안에는 어느 것 하나 온전한 상태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없다. 퍼핏들은 어딘가 절단돼있거나 상처투성이고, 신체의 일부가 비대하게 커져있다. 특히 이들의 눈은 옴폭 파인 채로 눈동자가 없거나, 또는 새까만 구슬이 안구 전체를 채우고 있다. 이 퍼핏들은 그 형상 자체로도 공포스러운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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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작은 빗자루

(This Unnameable LIttle Broom)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University

 

 

게다가 이들이 위치한 상황은 더욱 부조리하다. 배경은 온통 새까매서 어디서 끝이 나는지 도저히 알 수 없거나, 혹은 검회색의 매연으로 뒤덮여있다. 그 공간 속에서 빛이라고는 건물의 조명이나 거리의 가로등 등 인공적인 것 뿐이다. 자신들이 창조한 퍼핏들과 상징적 오브제들로 구성된 이 공간-도미토리움을 가지고, 퀘이 형제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 이제 이 퍼핏들은 살아서 구체적인 행위를 가지게 되는데, 그 행위란 것은 더더욱 괴기스럽다. 인간을 해부하거나, 성적 행위를 하거나, 누군가를 살해한다.

 

각각의 애니메이션들은 모두 간략하게나마 저마다의 줄거리가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단순히 설명으로 접했을 때와 퀘이 형제가 시청각적으로 보여줄 때가 차원이 다르다. 그저 놀라운 상상력이다. 단순히 생각해내기 어려운, 기발하다는 의미의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로 일상에서 얼마든지 가해지곤 하는 어떤 충격들(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을 매우 과격하고 공포스러운 메타포를 통해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 체코의 영화 감독 얀 슈반크마예르(Jan Svankmajer)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제작하게 된 <얀 슈반크마예르의 캐비닛(The Cabinet of Jan Svankmajer)>에서는 퀘이 형제 특유의 기괴한 이미지와 비유가 비교적 명료하게 드러나있다. 얀 슈반크마예르 감독이 퀘이 형제에게 준 깊은 영향을 표현하기 위해, 퀘이 형제는 (퀘이 형제의 퍼핏 중에서 거의 독보적으로) 똘망똘망해보이는 어린 아이의 머리를 마치 뚜껑 열듯이 열어버린다. 그리고 얀 슈반크마예르 감독으로 보이는, 책과 활자들로 뒤덮인 퍼핏이 어린 아이의 머릿 속에 들어있던 잡동사니들을 계속해서 끄집어낸 후, 자신의 텍스트를 집어넣는다.

 

아마 기존에 퀘이 형제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사고 방식들이 얀 슈반크마예르 감독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고 뒤집히는 경험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추측해본다. 이 장면은 일단 어린아이의 머리를 연다는 점에서부터 충격적이지만, 이후의 행동이 마치 뇌를 뽑아내는 것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뇌리에 깊숙히 박혀버린다. 이렇듯 조금 불쾌할 정도로 강렬한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퀘이 형제의 장면들은 전시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헤어나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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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슈반크마예르의 캐비닛

(The Cabinet of Jan Svankmajer)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다만, 애니메이션의 상영 시간이 작품마다 다르지만 모두 서서 보기에는 조금 긴 편이다. 그러나 제공된 의자는 적으니, 미리 자리를 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이 애니메이션은 관람객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제작에 참여한 전문가들에게도 이해하기에 어렵다고 한다. 퀘이 형제 그들만이 알 수 있는 모티프들이 많이 사용되었으니, 머리를 싸매면서 자책하며 관람하지는 않아도 될 듯하다.


 

 

3. 초현실의 세계를 표현한 다양한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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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욕망하는 사람들

(Ceux qui dèsirent Sans Fin)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앞서 언급했듯,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작품 활동을 한 퀘이 형제답게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 캘리그라피, 일러스트레이션, 무대세트 제작, 실사 영화 제작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시 전반부에서 퀘이 형제가 유명세를 얻기 전,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린 드로잉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드로잉에서도 도미토리움에서처럼 온통 잿빛의 풍경이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다. 대개 산업화와 도시화로 종말을 맞은 듯한 세계를 그린다.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공장들이 주로 배경이 되며, 광활한 축구장과 골대, 그리고 패널티킥을 앞에 둔 선수의 모습이 보인다. 고독하고 불안한 모습이다.

 

전시를 관람하다보면 드로잉 속에 나타난 이미지들의 일부는 이후 그들의 도미토리움에서도 반복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작품 활동 초기부터 퀘이 형제 특유의 세계가 이미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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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 여행의 관

(The Coffin of a Servant's Journey)

PhotographⓒKeith Paisley

 

 

"퀘이 형제展”은 퀘이 형제가 시도한 다양한 작업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체험 공간’에 가까웠다. 수동적으로 회화 작품을 ‘받아들여야만’하는 전시에 고리타분함을 느꼈다면, 어드벤처처럼 “퀘이 형제展”을 보고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마 한동안 퀘이 형제의 퍼핏들이 남긴 잔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잠시나마라도 이 형제가 바라보는 대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원래 살고 있던 이 세계에 대해 당분간 이질감이 느껴질 것이다.

 

도슨트 해설도 다양하게 있으니 취향에 맞게 선택해도 좋을 듯하다. 시간에 맞춰 직접 도슨트를 들을 수도 있고, 오디오 도슨트도 컨셉 별로 마련되어 있다. 단순히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퀘이 형제의 세계를 안내하는 ‘집사 Q’라는 독특한 컨셉을 가진 도슨트 해설이다. 오디오 도슨트를 듣는 것만으로도 정말 누군가의 집에 초대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혼자 가는 것도 추천한다.

 

다만 전시장에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거울을 조심하라. 특수제작된 유리로, 거울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보인다. 도미토리움 안에 있는 인형의 기분을 체험해보라고 만든 나름의 기발한 전시 기획같은데, 나로서는 다소 불쾌했다는 점에서 성공한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새에 누군가 나를 계속해서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

Quay Brothers: Welcome to the Dormitorium


일자 : 2020.06.27 ~ 2020.10.04

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6시)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 12,000원
청소년 : 10,000원
어린이 : 8,000원

주최
전주영화제, 예술의전당
(주)아트블렌딩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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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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