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화]

글 입력 2020.07.1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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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 너무 좋아해서 아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비가 오거나, 적적한 밤이면 어김없이 이 영화를 본다. 이제는 대사까지도 다 외워 줄줄이 읊을 수 있을 지경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영화는 바로 '코렐라인: 비밀의 문'이다.

 

초등학생 때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다정한 엄마의 모습에서 기괴한 마녀로 변하는 장면이 어린아이의 눈에 두렵게만 보였던 것 같다. 그렇게 무서워했음에도 불구하고 스물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이 영화를 좋아하고 있다니 취향이라는 게 참 알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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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인공 '코렐라인'이 부모님과 함께 '핑크 궁전 아파트'로 이사를 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래되고 낡은 집은 코렐라인의 흥미를 자극하기엔 너무 지루했다. 집주인 할머니의 손자인 '와이본'은 코렐라인과의 첫 만남에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캐롤라인처럼 이름이 평범하면 평생 평범한 인간 취급받는다더라.' 그렇게 따분한 일상을 이어가던 중 그의 말과는 달리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폴짝 생쥐들을 따라가다 작은 문 뒤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코렐라인은 단추 눈을 한 '딴 세상'엄마와 아빠를 만나게 된다. 코렐라인은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던 환상으로 가득한 새로운 세계에 경계를 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상 세계에 머물기 위해서는 단추 눈을 달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딴 세상 엄마로 인해 모든 환상이 깨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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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코렐라인이 넘나 들었던 이상 세계는 마녀가 어린아이들의 눈을 단추로 바꿔 달며 영혼을 빼앗기 위해 허구로 만들어낸 세계였던 것이다. 마녀로부터 탈출하고자 분투하던 코렐라인은 결국 마녀와 마녀의 세계로 통하던 작은 문의 열쇠를 마을에서 가장 깊은 우물에 던져버리며 다시 평온한 일상을 되찾게 된다.

 

이 영화가 나에게 의미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코렐라인과 내가 닮았다고 생각했던 것에 있었다. 작은 문 속 세계를 발견하기 전의 코렐라인처럼 나도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권태를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 시기에는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중력을 거스르고 어떤 지구 밖의 존재라도 좋으니 날 데리고 모험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을 곧잘 하곤 했다.

 

심지어는 와이본이 코렐라인에게 '평범한 이름'이라며 놀릴 때 평범한 이름이 싫다며 늘 불만이었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렇게 나는 늘 평범하고 지루한 것에 신물이 나 있었다.

 

그런데 정말 나의 무기력은 일상의 지루함 때문이었을까?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들었다. 가만히 앉아서 일어나지 않을 일들만 꿈꾸며 절망만 늘어가는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세계에는 비밀의 문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문장이 떠오른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낙원'이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나는 늘 현실과는 다르게 엉망이고, 화려하고, 닿고 만질 수 없는 것들이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판타지 소설을 읽었고, 늘 허구의 나를 상상하곤 했다. 코렐라인은 그런 나의 환상을 실현했다. 우리 집 작은 문 뒤의 신비로운 세상이라니! 맛있는 음식, 재밌는 공연과 다정한 이들로 가득한 곳이라니! 그들의 눈이 단추인 것만 제외하면 내가 상상하던 모든 것들이 이뤄진 공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것만 제외하면'이라는 전제가 붙는 순간, 나는 또다시 그 무엇인가를 견디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은 결국 내가 몸 담는 그곳이 다시 나를 짓누르는 '현실'이 된다는 뜻이었다.

 

코렐라인이 보빈스키 아저씨의 폴짝 생쥐들과 에이프릴 할머니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상 세계가 주는 환락에 취한 것은 그곳은 코렐라인이 원하던 모든 것들이 이뤄지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는 다정하고 재밌는 부모님, 화려하고 신비로운 정원, 보빈스키 아저씨의 대단한 폴짝 생쥐 서커스와 에이프릴과 미리엄 할머니의 믿을 수 없는 쇼까지 무엇이든 상상했던 그 이상의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들이 꿈에 불과한 현실 세계는 의미 없는 것일까? 코렐라인은 이상 세계에서 살기 위해서는 단추 눈이라는 더 큰 대가를 지불해야만 함을 알고 다시 그곳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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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재하는 이곳에서 벗어나 일상이 모두 뒤집어지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건 착각이다. 결국 내가 속한 세계는 늘 나에게 가혹하고 지루하기만 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행복할 자격이 있다. 도망치지 않더라도 말이다. 코렐라인은 이상 세계로부터 빠져나와 그보다는 조금 덜 아름답고, 덜 화려하지만 훨씬 더 평온하고, 더 행복한 날들을 만들어간다. 일상의 행복은 그렇게 만들어 갈 수 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붉은 튤립으로 나만의 정원을 가득 채우며 일상의 즐거움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고양이의 시선이다. 늘 고개를 90도로 꺾어 세상을 보는 야생 고양이지만 현실과 이상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자신 자신을 잃지 않는 유일한 존재이다.

 

환상적인 모험담도 좋지만 그것에 취해 일상의 소중함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 영화 '코렐라인: 비밀의 문'은 늘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읽고, 즐기며 살아가는 고양이를 닮아 오늘 내 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도망쳐도 낙원을 만날 수 없다면, 혹은 더 이상은 도망치는 것도 진절머리가 난다면 그냥 내가 속한 이곳을 낙원이라고 치자. 환상적이고 스펙터클하지는 않을지라도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며 일상과 취향의 결을 다듬어 가고, 사랑하는 것들로 세상을 채워가 보는 것이다. 행복은 그렇게 치열하게, 그리고 동시에 부드럽게 쟁취해야만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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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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