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상하게 낯설어 보였다 [영화]

글 입력 2020.07.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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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또래 동년배들이라면 모두가 알만한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디즈니 만화동산. 1992년부터 KBS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꾸준히 방영하던 애니메이션이다. 프로그램 이름대로,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만든 TV 애니메이션을 송출했다. 주말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이 프로그램을 보겠다며 그렇게 벌떡벌떡 잘만 깼다.

 

 


KBS에서 방영했던 디즈니 만화동산 오프닝

 

 

그렇게 디즈니의 만화는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도 디즈니에서 만드는 애니메이션들을 즐겁게 보고 있다.

 

 

 

디즈니 ‘여성 캐릭터’의 변화


 

사실 어른이 되었으니 동심은 이제 나와는 먼 이야기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요즘 볼거리도 많아져서, 유치한 애니메이션보다는 재밌는 예능 프로그램을 더 선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디즈니는 어린이 관객만 잡을 생각이 없었던 걸까? 흥미롭게도, 만들어진 지 오래된 애니메이션들부터 차근차근 ‘실사화’ 하며 자사의 애니메이션을 영화화했다.

 

그래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처럼 디즈니를 보며 자란 ‘어른이’에게도 메말라 가는 동심에 물을 부어주었다.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꾀한 덕에 디즈니는 어른들의 관심도 사로잡았다.

 

실제로 실사화되어 주목을 받은 영화 중, <알라딘>의 ‘Speechless’는 기존 애니메이션에는 없는 ‘자스민’ 캐릭터 전용곡이다. 이 곡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 1억을 돌파하였고, 많은 유튜버가 커버하며 더욱 흥행했다.

 

 


월트 디즈니 <알라딘> OST, Speechless

 

 

원작 알라딘에서 ‘자스민’의 역할은 ‘공주’였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알라딘과 함께 고난을 극복하는 또 다른 주인공보다, 알라딘의 ‘조력자’와 구해짐을 받는 ‘여주인공’ 포지션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실사화에서 더 주체적이면서 입체적인 캐릭터 성을 살려, ‘자스민’ 캐릭터가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 ‘Speechless’라는 곡을 통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처럼 디즈니는 기존에 만들던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매번 왕자에게 구해짐을 받던 ‘공주’의 모습을 탈피하여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려는 시도를 계속해오고 있었다.

 

 

 

디즈니의 색다른 시도, 애니메이션 ‘뮬란’ 실사화


 

백설 공주·신데렐라·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접하다, 90년대 후반부터 포카혼타스·뮬란과 같은 ‘공주’임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극 전반의 이야기들을 이끌어가는 여성 캐릭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뮬란’은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의 시선을 가지고 있던 서양에서 ‘아시아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만든 애니메이션이라는 의미가 있다.

 


영화포스터.png

 

 

또한 뮬란은 ‘가문을 빛내기 위해’ 시집을 가야만 했다. 스스로 가문을 빛내는 것이 아닌, 좋은 곳으로 시집감으로 ‘가문’을 빛내야 하는 당시의 여성의 삶을 애니메이션 속에 녹여냈다. 그러나 중매쟁이에게 실수하게 되며, 그녀로부터 자신이 좋은 신붓감이 아니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때의 시대상을 생각한다면 뮬란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이에 혼란스러워하며 부르는 노래가 ‘Reflection’이다.

 

 

When will my reflection show

Who I am inside?

 

언제쯤 내 진짜 모습이 비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장면이 ‘실사화’에는 빠질 것이라 한다. 왜일까? 디즈니는 실사화 영화를 여태 원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충실히 연출해 왔었다. 뮬란의 캐릭터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Reflection’은 ‘뮬란’에서 핵심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제작진에서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실사 영화 예고편에서 깔리는 이 웅장한 음악 역시 ‘Reflection’이다.

 

 

월트 디즈니 실사 영화 <뮬란> 메인 예고편

 

 

실사판 영화는 기존과는 달리 극 중에 인물들이 노래하는 장면, 즉 뮤지컬 곡들은 빠지고 배경 음악들로만 이뤄질 거라고 발표했다. 영화에서 뮤지컬을 주력했던 이전에 행보에 비하면 아쉬운 연출이라 할 수 있었다. 일각에서는 전통적인 ‘중국식 무협 영화’가 될 것 같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그 말들이 나오는 이유는 뮤지컬 영화 탈피도 모자라, 실사에서 다른 연출을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기존에 있던 ‘감초’ 캐릭터들이 다른 역할들로 대체된 것이 클 것이다.

 

물심양면 뮬란의 옆에서 그녀를 돕는 용 ‘무슈’와 행운의 귀뚜라미 ‘복돌이’는 물론이고, 뮬란의 상사이자 로맨스가 싹트는 장군 ‘샹’도 빠졌다. 제작자 제이슨 리드는 미국의 콜라이더라는 매체에서 “미투 운동을 생각해, 뮬란이 상관과 사랑에 빠지는 대목이 불편했다”며 캐릭터 교체 이유를 설명했다. 대신 뮬란의 멘토 역할을 할 ‘텅’ 장군과 경쟁자이자 친구가 될 ‘천홍후이’라는 캐릭터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그런데도 아쉬움이 남았다. 원작에서 무슈와 복돌이와 함께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도 재밌었고, 이 둘이 미약하나마 뮬란을 위기에서 도와주는 장면들이 있다. 게다가 전령인 척 속여, 뮬란의 부대가 전쟁터로 떠날 수 있도록 새로운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극을 이끌기도 했다.

 


무슈우.jpg

 

 

나아가 ‘가문의 수호신 자리’에 오르려는 욕망 때문에 뮬란을 돕던 ‘무슈’가 나중에는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는 장면도 소소한 관전 요소로 꼽을 수 있다.

 

‘샹’ 캐릭터 역시 주인공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이다. 더불어 ‘샹’ 자신도, 편견에서 벗어나 뮬란과 우정을 넘어 사랑까지 상통한다.

 

부대를 이끌 ‘샹’ 입장에서 자신의 병사들은 하나같이 오합지졸이었다. 아무래도 전쟁으로 급하게 징집한 터라, 제대로 병사들이 훈련되지 않았던 탓일 거다. 샹은 이에 굴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용감히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병사들을 훈련한다.

 

 

뮬란의변화.png


 

You're a spineless, pale, pathetic lot

And you haven't got a clue

Somehow I'll make a man out of you

 

지금은 약해빠진 오합지졸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았겠지만

내가 너희를 대장부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 덕에 훗날 ‘샹’의 병사들은, 수많은 흉노족을 마주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샹’과 훈련하는 과정을 통해, 무력한 모습을 보이던 뮬란도 점점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나타났다. 실제로 원작은 그 모습을 대비시키는 연출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깨알 같은 요소를 자랑하는 원작 뮬란 캐릭터들이 빠지고, 낯선 인물들로 하나씩 채워지는 실사 영화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실사영화를 봐야 할 가치?


 

처음에는 실사화를 무척 기대하던 영화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막을 알고 나니 굳이 이 영화를 꼭 봐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옛날 ‘뮬란’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이 영화에서는 느낄 수 있을까?”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실 이 영화를 기대한 사람들이라면 알만한 이슈가 있다. 주인공 뮬란 역을 맡은 배우 유역비에 대한 논란이다. 유역비가 지난해 홍콩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경찰 옹호 글을 SNS에 올리면서 ‘보이콧’에 불을 지폈다.

 

지난 1일, 월트디즈니 코리아 본사 앞에서 “유역비는 폭력적인 시위진압을 옹호하고, 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라며 청년 단체가 영화 뮬란 보이콧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이 이토록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유역비가 미국시민권을 소유했음에도 중국 옹호 발언을 한 것이 컸으리라.

 

애니메이션 내에서조차 여성 차별을 그려내, 그것을 극복하기까지 ‘뮬란’ 일대기를 다룬 영화였다. ‘여성’이라는 성별을 벗어나, ‘영웅’이 된 ‘뮬란’은 어디로 갔는가? 추억이 시궁창에 던져진 느낌을 받았다.

 

아아, 나의 뮬란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박신영.jpg

 

 

[박신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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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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