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거짓을 다시 인식할 때, My Dear 피노키오 [전시]

거짓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피노키오가 성인들에게 들려주는 것 같다.
글 입력 2020.07.1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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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문학 작품, 전 세계 예술 작가들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 '피노키오'를 소재로 다양한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대규모 복합 전시
 
피노키오. 가장 대중적인 문화 콘텐츠. 유년시절, 우리는 거짓말 개념을 '피노키오'로 배웠다. 그만큼 피노키오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사람들 마음 한편에는 저마다의 피노키오를 간직하고 있다. 전 세계 작가들 또한 마찬가지다. 기쁘게도 이번 전시에서 세계 각지의 작가들이 간직했던 피노키오를 볼 수 있다.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작가들이 공통 주제 '피노키오'를 어떻게 내재화했고 표상했는지, 서둘러 관람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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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urizio Quarello
 
 
단순하지만 대비되는 명암, 역동적인 움직임, 극적인 구도의 마우리치오. 전시에서 가장 먼저 사유하게 만든 작가다. 그는 자국의 역사를 피노키오에 녹여냈다.
 
 
나는 '피노키오'의 배경으로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 시대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자유와 인권의 부재로 상징되며 "Ventennio(벤테니오, 이탈리아어로 '20년' 의미)"라 불리는 파시스트 독재 정권 치하의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엄격한 규범 및 도덕적 명령과 제약 등을 따라야 했다. <피노키오의 모험>은 내게 이 역사적 시기를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깔끔하고 집중할 수밖에 없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텍스트에 집중하고 나니 한층 더 깊게 감상하게 됐다. 전시 관람 이후 파시스트 정권에 대해 찾아본 후, 파시스트 정권 시대 벌어진 알토 아디제에서의 만행들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알토 아디제의 모든 지명, 간판 등이 이탈리아 식으로 강제로 바뀌었다. 이 지역 대다수가 독일어를 사용했으나 강제로 이탈리아어를 사용해야 했다. 수업도 이탈리아어로 진행됐으며 독일어 신문에 대해 검열이 이뤄지고 사실상 폐간을 유도했다. 물론 독일식 성씨도 이탈리아식으로 바꾸라는 '조치'가 내려졌다.
 

 

한국사에서 공부했던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과 정말 흡사했다. 항간에는 조선총독부가 '알토 아디제'를 참고해서 민족 말살 정책을 진행했다는 의심마저 돌았다고 했으니 말 다 했다. 물론 작가는 피노키오의 배경으로 파시스트 정권을 두고 피노키오를 그렸겠지만, 그중에서도 알토 알디제에 공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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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urizio Quarello

 
 
순수한 동심에서 피노키오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작품에서 당시 분위기가 짙게 배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피노키오를 정면으로 비추는 조명은 그들이 들고 다니며 검열하고 추궁했던 손전등을 상징하고, 조명 앞에서 소스라치게 깜짝 놀라는 모습은 한국 소설에서 자주 묘사되던 조상의 무력한 모습과 흡사했다.
 
살기 위해선 민족성을 속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죽여야만 했다. 피노키오가 깜짝 놀라 당황한 모습이 마치 자신은 '이탈리아성'을 지녔다고 살기 위해 부인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더욱더 작품의 매력적인 면은 그림자다. 덧씌워진 정체성이 사실이 아니라는 듯, 그림자의 코가 길어져있다.
 
생존을 위해 정체성을 속여야만 했던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가, 그림자 코가 실제 피노키오에 가로지르는 모습에 나타나 있다. 실제로 스스로를 찌르듯이 말이다. 코가 아주 날카롭게 버려있는 것도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게 그만큼 고통스러운 행위라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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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o Scarabottolo

  
 
디테일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오로지 단순한 형식에만 집중한 피노키오도 있다. 구이도 스카라보톨로다. 그의 작품은 아주 단순한 드로잉과 적은 색으로 묘사됐다. 얼핏 보면 이게 끝이라고 싶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작가가 의도한 바다.
 

 
이미 전 세계의 위대한 작가들이 자신만의 피노키오를 세상에 내보냈기 때문에, 나는 단순함과 절제에 의지해 작업하기로 마음먹었다. 늘 드로잉이라는 행위가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지 디테일 묘사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아주 단순한 드로잉 작업에 집중하기로 했고 스케치를 그려 스캔해서 디지털 파일로 만들었다. 최종 디지털 작업에서도 애초에 상상했던 모든 디테일들을 살리기보단 한층 더 단순한 드로잉으로 변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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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o Scarabottolo

 
 
이색적인 작품관이 마음에 들었다. 일상을 지루해하고 색다른 것만 찾아다니는 호기심 많은 작가가 상상이 갔다. 그는 자신의 단순한 드로잉에서 드러나는 허전함이 오히려 풍성할 수 있다고 여겼다. 독자들이 느끼는 허전함에서 스스로 상상력을 동원하고 자신만의 피노키오로 풍성하게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독자의 감상으로 비로소 그림은 수많은 생명을 갖게 될 거라고.
 
*
 
이번 전시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서구권 문화라고 생각했던 피노키오를 한국 디자이너들이 재해석했다는 데 있었다. 그중에서도 민경아 작가의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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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장신구 '탈'과 서구권 문학 피노키오의 콜라보가 아주 매력적이다. '탈'은 그 자체로 민족 놀이인 탈놀이를 상징한다. 탈놀이의 주제는 양반 풍자, 남녀 대립과 갈등, 서민의 애환 등이다. 서민을 이야기하며 서민 문화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피노키오의 시대적 배경은 산업화·도시화를 거친 벨 에포크라고 불리는 번영과 평화의 시대다. 그 이면엔 서민들의 처절한 삶이 존재했고 이들의 삶은 다양한 인간 군상으로 <피노키오의 모험>에 묘사된다.
 
둘 모두, 기득권 세력보단 피지배층 세력에 초점을 맞춘 문화다. 피지배층 세력으로부터 파생된 문화 콘텐츠라는 데서 시공간을 초월한 연대마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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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더불어 민경아 작가의 텍스트에 굉장히 공감했다. 피노키오 자체에 대한 작가의 사유에 놀랐다. 피노키오와 코 자체를 동일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피노키오의 코가 타인의 편일 수밖에 없다는 접근이 내 편견을 깼고 사유하게 만들었다.
 
작가의 접근에 대해 사유하다가, 내가 간직하고 있었던 피노키오에 대해 다시금 인식하게 됐다. 흔한 변명이지만 동화를 접한 지 오래됐고, 너무나도 유명해서 오히려 피노키오에 대해 찾아보지 않았다. 피노키오는 모험을 끝내고 사람이 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기억 속 피노키오는 여전히 사람이 되지 못한 딱딱한 나무인형이었다.
 
자책하는 마음에서 잠깐 피노키오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태어났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웬 할아버지가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말라고 간섭한다. 반발심이 든다. 온통 궁금한 거 투성인데 어떻게 억누를까?
 
당장 나가서 놀았다가 할아버지가 피노키오 대신 잡혀갔다. 무지한 피노키오는 '나' 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타인을 어떻게 인식하고 배려해야 했는지도 몰랐다. 피노키오의 순수는 무지였고, 곧 민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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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피노키오를 유혹했고 겁박했으며 조롱했다. 친절한 미소와 달콤한 말들을 따라가면 결국 제 잇속만 챙기고 피노키오를 팽개쳤다. 그러나 온갖 거짓말이 판치는 와중에 피노키오만은 솔직할 수밖에 없었다. 야속하게도 거짓말하면 자라는 '코'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산재해있는 위험에 대처하고 사람들에게 대응하려면 무기 하나쯤을 쥐여줘야 되는 게 아닐까? 한참을 생각해봐도 사방이 권모술수인 각박한 세상에서 약점밖에 되지 않는다. 피노키오를 이해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코에 대해 사유해봤다.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장치인, 거짓말하면 자라나는 코. 내 몸이지만 타인의 편인 것 같은 코.
 
'코'가 사실 무지 상태에서 피노키오 자신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안배였지 않았나 생각했다. 양심을 배우기 전, 거짓을 가시화할 수 있는 장치. 적어도 피노키오에 대해서는 아무도 거짓을 추궁하지 않을 수 있다.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에서 적어도 스스로의 마음을 안다는 것 자체가 자아를 더 올곧고 단단하게 형성할 수 있다.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무기도 약점도 될 수 있는 양날의 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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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essandro Sanna
 
 
그게 바로 거짓을 인식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하얀 거짓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짓 자체는 죄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적나라하게 솔직하면 눈치 없는 사람이 되거나 조금 모자란 사람이 되기도 한다. 거짓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피노키오가 성인들에게 들려주는 것 같다.
 
전시를 둘러보면서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눈을 사로잡는 디자인과 색다른 피노키오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흐뭇했다. 인간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거짓과 양심에 보편 규범에 대해 시각 매체로 계승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삭막할까? 그냥 거짓이 어떤 건지 눈으로 즐기며 뛰노는 과정이라 보고 싶다.
 
성인들도 많이 보였다. 피노키오의 창작자, 카를리 콜로디는 "어른들은 즐겁게 해 주기는 너무 어렵다"라고 발언했다. 확실히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보다 차분해보였다. 적어도 나는,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을 때와 같이 피노키오를 다시 향유했던 경험이 매우 신선했다.
 
어렸을 때 접했다고 더 이상 향유하지 않았던 문화 콘텐츠가 많은 점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피노키오 자신보다 더 유명한 '코' 말고 피노키오를 이해하게 됐고 더 입체적인 교훈을 얻었다. 적어도 나의 피노키오는 나무토막 인형으로는 남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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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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