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타인 속에서 나를 잃어갈 때, 낯익은 타인을 대하는 법

글 입력 2020.07.0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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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을 대하는 법


 

낯선 타인도 아니고 낯익은 타인이라니. 대게 타인이라는 표현은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쓰지 않나라는 생각 때문에 '낯익은' 이라는 형용사와 '타인'이라는 명사가 함께 있는 모습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면서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에 지친 너에게"

 

표지 하단의 짧은 글을 보고는 어색함이 조금 가셨다. 낯선 타인과 낯익은 타인. 둘 중 내가 더 사랑하면서도 그렇기에 더 큰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는 단연 후자이다. 길 가다 마주친 누군가가 내뱉은 욕설보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내뱉는 한숨이 더 아플 때가 있듯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가족, 친구, 연인, 동료라는 이름으로 부르느라 타인이라는 사실을 깜빡했던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이 직접 겪고 느꼈던 바를 토대로 어떻게 하면 이들 사이에서 상처받지 않고, 또 상처주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이야기해준다. 마치 독자들은 자신이 타인으로 인해 겪은 아픔을 조금은 덜 겪길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

 

책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유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회사 생활에 대해 다루는 챕터들이었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지난 5개월 간 인턴으로 살며 겪고 느꼈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안도가 되기도 했고,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이나 감정을 이해하기도 했다.

 

5개월 동안 일적으로 배운 부분도 있었지만 흔히 말하는 '사회 생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임시완이 연기해 큰 공감과 인기를 불러 일으켰던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레가 일보다는 사람들과의 충돌 속에서 성장해나가는 것처럼 나도 일보단 사람에 치이며 하나 둘 느낀점이 쌓였다. 이들이 모여 큰 가지를 이루게 된 생각이 두개 있는데 이 책에서 잘 표현한 것 같아 저자의 말을 빌려 이야기하고자 한다.

 

"조직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다. 당연히 나도 그렇다. 후배도 완벽하지 않고, 내게 일을 시키는 상사도 나보다 몇년 더 경험이 축적됐다고 해서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으니까 함께 일을 한다. 이것이 협업의 이유다."

 

처음 회사에 출근한 나는 직원들이 다 완벽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 힘든 취업 관문을 넘어 각자 자신이 맡은 바를 척척 수행해내는 모습이 멋있었다. 왠지 실수같은 건 나만 하고 저들은 오차 없이 작동하는 기계처럼 완벽하고 정확할 것 같았다.

 

그러나 '풍부한 경력=완벽함'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경력이 많아 높은 자리에 오른 이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사람이다. 그들도 실수를 하고, 때로는 자신보다 높은 상사에게 안좋게 보일까 두려워 아랫사람에게 잘못을 미루기도 한다. 여유가 없을 땐 생각없이 내뱉은 날선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이를 후회한다.

 

"인생에는 선과 악이 는 게 아니라 성숙과 미성숙이 있을 뿐이란 말을 이놈의 회사에도 적용하면 훨씬 편해진다고. 그리고 나로 말하자면, 아직도 한참 많이 미성숙한 쪽이라고 말이다."

 

어떤 사람이든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은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함께 일을 해야하는 이유'이자 '내가 상처받을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에게 날선 말을 날린 저 사람이 나의 상사이긴 하나 완벽한 존재는 아니라면 그 날선 말도 반박불가능한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다. 그 아픈 말을 붙잡고 계속 꺼내보며 스스로에게 상처 줄 필요가 없다. '나쁜 사람이라 그렇다기 보단 저 사람도 아직 인간 관계에 있어 미숙한 부분이 있구나' 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다.

 

*

 

적당한 망각과 외부 귀인은 낯익은 타인들 사이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느꼈다. 오늘 일이 힘들었어도 내일이 되면 또 출근하고 불편한 사람을 마주해야 하는 게 회사원의 삶이다. 계속 불편하고 힘들 바엔 적당히 잊고 상황 탓도 하며 사는 게 낫다. 그러나 이는 자기 반성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에겐 아무 잘못 없다는 생각은 꼰대로 가는 길의 시작이다.

 

"...'당했던 만큼 갚아보겠다'라는 방향으로 결정 내리는 순간부터 내 안의 비극은 싹튼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조직에 많을수록 비극은 무한히 재생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은 헌혈과 비슷하다. 귀찮지만 꽤 의미 있는 일이고, 안 할 때보다 하고 난 후가 좀 더 나은 내가 된다."

 

예전에 친구가 군대에서 겪은 일을 말해준 적이 있다. 친구는 아랫사람을 괴롭히기 좋아하는 한 선임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 선임이 어떻게 괴롭혔는지 이야기해주며 자신은 후임이 들어온다면 정말 잘해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얼마 후 다시 휴가 나온 친구를 만나 "그래서 진짜 후임한테 잘해주고 있어?"라고 물었을 때 친구는 선뜻 답을 못했다. 본인은 일을 잘해도 선임한테 혼나고 안좋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보다도 못하고 있는 후임의 모습을 보면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악습이 왜 사라지지 않는가에 대한 답을 얻은 날이었다.

 

나의 상처가 깊다는 사실이 내가 남에게 상처 줄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내가 받은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끊임 없이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저자는 이 노력을 마치 헌혈과 비슷하다고 표현했는데 나는 이를 고무줄 당기기에 비유하고 싶다. 고무줄을 팽팽히 당기고 있을 때 잠시라도 손에 힘이 빠지면 고무줄은 핑-하고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그렇다고 고무줄을 너무 세게 당기더라도 끊어질 수 있다. 적당한 힘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상처주지 않기 위한 노력도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 남에게 꽂히는 비수가 된다. 너무 세게 잡고 있다간 '나'를 잃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적당히, 그러나 꾸준히 상처주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책을 덮으며


 

나의 경험들을 떠올리며 책의 마지막 장에 다달은 순간 '내가 만약 이 책을 인턴 시작 전에 읽었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낯익은 사람들 또한 타인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니 모든 걸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자책으로 시간 낭비하는 일을 줄일 수 있었을까?

 

그보단 '회사 생활'이 담긴 부분에 공감하기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겪은 만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상처 받아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예방책으로 이 책을 추천하기보단 낯익은 타인들 속에서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버텨봤던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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