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달과 6펜스의 예술적 이상과 현실 [문학/소설]

육체의 탈출을 꿈꾸는 예술가의 영혼
글 입력 2020.07.0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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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서머싯 몸]

 

 

소설 <인생의 베일>부터 작가 서머싯 몸의 작품들을 좋아했었다. 그의 작품들은 심오한 주제를 다뤄 어려워 보이지만 무척이나 “재미있다”.

 

특히나 <달과 6펜스>는 몸의 여러 작품들 중 유독 매혹적으로 내게 다가왔는데, 작품이 출간된 직후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만 놓고 보자면 나뿐만 아니라 예술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어떤 힘에 끌렸나 보다.

 

왜일까? 그것은 <달과 6펜스>가 예술 그 자체를 다루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영혼의 세계와 이상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동경을 불러일으켰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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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by 폴 고갱]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처자식이 딸린 주식 중개인이었다. “그저 선량하고 따분하고 정직하고 평범한” 사람이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화가가 되기 위해 안정적인 삶을 모두 버리고 대뜸 파리로 간다. 내레이터인 ‘나’의 표현에 의하면 스트릭랜드는 마치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사로잡힌 듯 존재하지 않는 신전을 찾는 사람 같았다.

 

이후 소설은 광기 어린 스트릭랜드를 관찰하는 '나'의 시선으로 비정상적인 스트릭랜드의 기행과 그의 예술에 대한 감상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달과 6펜스>가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갱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작가 서머싯 몸의 예술관을 고갱을 도구로 실현해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몸의 이론에 의하면 이 세상의 예술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기본적으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 어떠한 ‘이상’을 구체화해내는 미적 작업이다. 하나는 성스럽고 고귀한 이상,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적인 예술가의 작품을 바라볼 때 나오는 경탄과 아름다움. 또 하나의 예술적 이상은, 관능적이고 보는 이를 매혹시키지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마치 최초의 인간이 금지된 열매에 매혹되는 동시에 신을 향해 두려움을 느끼듯, 유혹에 빠지지만 거부하고자 하는 ‘어떤 것‘이다.

 

서머싯 몸은 후자의 예술적 이상을 이 작품에 담았다. 내레이터인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예술에 두려움을 느끼고 거부하고자 하지만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내레이터 소설가인 ’나‘는 이 작품에서 명백한 작가 서머싯 몸을 대변하며 몸의 예술적 이상은 스트릭랜드의 원시적 광기로 나타난다. 작가가 굳이 ’나‘를 세워두고 스트릭랜드를 관조하게 둔 이유는 아마 작가 안에 있는 예술적 이상에 대해 한 발짝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리고 이는 작가와 독자 안에 내제되어 있는 욕망을 대리만족시킨다.

 

이 작품은 영혼의 순수성과 예술적 광기를 다루지만 제목에서 나타나듯 6펜스의 세계, 즉 세속적 관습과 현실 세계 역시 이야기하고 있다. 6펜스는 속물적인 스트릭랜드 부인, 육체적 관능만을 추구하는 블란치, 사람은 좋지만 잘 팔리는 그림만을 그리는 스트로브와 같은 인물들로 스트릭랜드와 대립한다.

 

6펜스의 세계는 작가가 비판하고자 하는 현실이지만 동시에 예술의 대척점에 서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달의 세계에 속한 스트릭랜드는 6펜스의 가치체계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안락의자조차 거부할 만큼 현실의 안정과 안락함을 거부하고 ‘나’가 요구하는 양심에 대해선 콧방귀를 뀐다. ‘나’는 스트릭랜드가 자기 자신의 체계에 맞게 행동했기 때문에 애초에 양심이 그를 심판할 수 없었다고 기술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스트릭랜드의 이러한 기행에 대해(세상 가치관에서의 기행) 질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술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러한 희생과 파괴가 허용되어야 하는가? 예술은 스트릭랜드가 문둥병으로 육체가 망가지듯 자기파멸을 통해서야 실현되는, 닿을 수 없는 이상인 것인가? 그가 그의 체계에 맞게 움직였듯이 독자들은 자기 자신의 체계 방식에 귀 기울여 답을 구하는 수밖에 없다.

 

*

 

예술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고 매혹적이다. 이 세상과 우주의 비밀을 밝혀주는 것 같으면서도 거기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 서머싯 몸 역시 아주 심오하고 철학적인 주제로 이 작품을 썼지만 일찍이 그가 밝혔듯 몸의 작품관은 ‘재미 추구’이지 진리의 발견이 아니다. 즉 작가 역시 그가 쓴 소재에 대해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을 하면서 우리 영혼이 품고 있는 은밀한 호기심을 자극해 재미를 생산한다.

 

예술을 생각하고 논하는 일에 대해 누군가는 무의미한 일이라 말할지라도 나는 기꺼이 여기에 매혹당하고자 한다. 예술의 여러 가치관과 속성을 전부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이며, 무엇보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선악과처럼 무척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백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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