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K-장녀의 미래를 읽었습니다 - 장녀들 [도서]

글 입력 2020.07.0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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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의 현재, 장녀 콤플렉스


 

어느 날 ‘장녀 콤플렉스’라는 단어가 큼지막하게 쓰인 영상을 유투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주었다. 내가 장녀인 건 어떻게 알고,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영상을 클릭했다. 사실 가벼운 마음이 반, 직감적으로 장녀 콤플렉스의 의미를 이해하고서 서늘해진 마음이 반이었다.

 

그리고 영상이 끝나갈 즈음엔 내게 새로운 이름 하나를 붙였다. ‘K-장녀’. 더 정확하게는 ‘남동생 둔 K-장녀’. 영상보다도, 현재의 K-장녀들이 경험을 공유한 댓글창으로부터 충격을 받았다. 그 이유는 기억에 남는 댓글 한 줄로 설명을 대신한다. ‘나 진짜 살면서 엄마 아빠한테 제일 많이 들은 소리가 너는 누나니까 동생 챙기는 건 당연한 역할 중에 하나야. 이 말 그냥 클리셰 같고 뻔해보이죠? 실제로 듣는 말임’

 



 

“우리 OO는 혼자서도 잘 하지?”

“엄마 일 있어서 나가니까 네가 동생 밥 좀 챙겨줘”

“엄마 아빠가 우리 딸한테 얘기하지 누구한테 얘기해”

“동생은 애잖아. 네가 먼저 양보해”

 

- 위 영상 중에서

 

 

고통에 정확한 이름을 하나 붙이면, 그 고통의 이유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 첫째의 고충? 딸의 고충? 고통의 이름을 찾아서 오랜 시간을 돌아왔다.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던 어린 시절의 날들, 가족이라는 따뜻한 이름 아래서 나쁜 생각을 하는 나에 대한 부끄러움과 일종의 죄책감, 그러나 결국 분노하고 마는 불효녀 나.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상처 투성이가 된 몸으로 이제 나는 내 이름을 안다고 말한다. 나는 K-장녀다.


 

“나는 널 키울 때 네가 울기라도 하면 금방 달려갔어. 회사 업무도 아니고, 한 시간에 한 번 들여다보겠다니 무슨 소리니. 넌 딸로서의 정이란 게 없니?”


 

장녀인 자신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시치고산(어린 여아의 성장을 축하하는 일본 전통 행사 – 옮긴이)이나 생일 외에도 피아노 발표회, 입학식 등 마유코의 사진보다 몇 배는 많은 사진이 남아 있었다. 단짝 친구 같은 모녀든 아니든, 부모가 자신에게 건 기대가 컸는지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K-장녀라는 이름을 너무 늦게 찾았던 건 아마 ‘가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라는 점, 그리고 나 또한 부모님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이라는 사실로부터의 감사한 감정은, 머릿속에 맴도는 뾰족한 생각들의 최종 과녁판을 나로 만들었다.

 

상처받다 분노하다 마지막엔 나를 미워하기까지 해야 했던 연이은 감정 소모의 날들이었다. 머리가 커갈수록 가족과 싸우는 일은 잦아졌고, 그동안 ‘딸’로서, ‘누나’로서 당연하다 생각했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부터는 “어렸을 땐 참 착했는데, 뒤늦게 사춘기가 왔나”와 같은 말들을 듣기 시작하며 결국 또 부모님 속을 썩이는 예민한 불효녀 나에 대한 검열과 반성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젠 안다. 분노면서 나에 대한 연민이었던, 그러다가도 어느 날엔 부모님에 대한 연민이었던, 누가 보면 다중인격이라고 불렀을 만큼 거의 A부터 Z까지의 인격이 되면서 고민해온 여러 밤을 통해 안다. 그리고 또 인정한다. 가족이란 어떤 면에선 기적 같은 사랑이지만, 또 어떤 면에선 누구보다도 쉽게 폭력을 행사하며 남보다도 어렵게 서로를 이해하는 혈육일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서론에 간략하게 적어보려던 게 어느새 한페이지 가량의 한탄글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정말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K-장녀의 미래 : 돌봄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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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도 충분히 쉽지 않다고 생각했던 K-장녀의 현재였는데, 시노다 세츠코의 「장녀들」를 통해 내다본 K-장녀의 미래는 이보다도 암담했다.

 

 

‘여자의 자립’이라는 말이 인기를 구가하던 시대에 자신이 살 길은 어디에 있는지를. 그리고 그 뒤의 일본 사회가 ‘여자의 자립’을 한 때의 유행거리로 소비하고, 마침내 버리리라는 것도.

 

 

이 책은 일종의 소설집으로, 총 세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세 작품에는 처한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혼으로 사는 딸이라는 이유로 집안의 갖은 소일과 돌봄노동을 떠안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집 지키는 딸」의 나오미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본다. 「퍼스트레이디」의 게이코는 신장을 기증받아야만 살 수 있는 어머니를 두고 자신의 신장을 주어야 하는지 고뇌에 빠진다.

 

「미션」의 요리코는 자신의 신념을 좇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지만, 그 사이 홀로 죽은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떨치기 힘들어한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자신의 집안이나 결혼 전 귀속되었던 세계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출신을 잊고 마츠우라가라는 중상류층 가정에 걸맞은 여성으로 거듭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여 자신을 갈고닦는 식의 ‘천박함’이라도 있었다면, 어머니의 삶은 전혀 다른 것이었을 터였다.

 

 

비혼으로 사는 딸, 그리고 돌봄 노동. 앞서 내가 부모님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했다고 말했듯, 돌봄 노동은 장녀의 미래면서도 모든 부모 그중에서도 특히 ‘엄마’의 과거면서 현재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돌봄의 공백에 대한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대면수업이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되었을 때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지, 또 무엇보다 일하는 부모들의 아이에 대해 발생하는 돌봄의 공백을 어떻게 메꿀 것인지, 우리에겐 헤쳐나가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많다.

 

그리고, 현재의 돌봄 공백 상태에서 돌봄 노동으로 돌봄 노동에서 근대의 낭만적 사랑으로. 거꾸로 하나씩 되짚어 돌아가다 보면 이 불행의 역사는 참 길고 견고하다는 사실이 마음을 조여 온다.

 

사랑에 개인이 철저히 배제되었던 시절, 사랑에서 개인을 찾고자 하는 노력 덕에 근대에 이르러서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개성과 개인을 중요시하는 낭만적 사랑으로. 하지만 이는 이성애적인 결혼제도에 통합되었고, 남성과 여성의 성별 역할이 분리되는 방식으로 굳어졌다. 그리하여 여성은 가정 내 역할만을 수행하는 인물이 되면서 더불어 모성은 본능이라는 강력한 프레임을 쓰게 됐고 그렇게 돌봄 노동의 주체가 되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면서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로 인한 돌봄 노동의 결핍상태, 앞서 언급했던 돌봄 공백의 발생까지 더해졌고, 이로써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점점 더 쌓여가는 현재의 돌봄 노동은 무겁다. 그리고 지금의 일본처럼 초고령화 사회에 도입하게 될 미래 한국의 돌봄 노동은, 지금의 딸 그중에서도 특히 장녀의 몫인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재산을 탕진한 독신 여성에게 노후 따위는 없다. 어차피 자신은 망령이 나기도 전에 객사할 거라고 체넘하자, 나오미의 마음은 명랑한 무기력으로 풀어졌다.

 

 

그리하여 특히 코로나19로 돌봄 노동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더욱이 필요해진 요즘, 먼저 우리는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대비하기 위한 방책으로 지금까지의 돌봄 노동을 돌아보아야 한다.

 

넓게 보면 돌봄 노동은 미래에 필요한 노동력을 세대에 걸쳐 재생산하는 활동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돌봄 노동은 노동의 범주에서 배제되어왔다. 그 이유는 돌봄 노동에 깃든 편견이란, 자연스레 그 주체로 살아가는 중인 여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의 책임과 역할은 여성에게 부과됐고, 이는 비가시화되거나 모성을 통한 자연스러운 ‘사랑의 행위’로 낭만화되어왔다. 즉 여성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 할 의무로의 돌봄이기에 이에 대한 가치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비혼을 굳게 결심하지는 않았지만 현재엔 어느 정도 혼자 사는 미래의 나를 자주 상상했기에, 이 소설로 하여금 비혼주의 장녀인 나와 결코 멀리 있지 않은 돌봄 노동을 인지하며 머릿속의 자유는 와르르 무너졌고 그대로 암흑 속에 매몰됐다. 나는 미래에도 여전히 K-장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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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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