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기록은 기억이 되어 나를 이루고 그것을 나누며 살아간다.

나의 기억을 더듬는 기록에 관한 이야기들
글 입력 2020.07.0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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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진정한 ‘나’를 이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은 나의 겉을 이루고 있는 ‘몸’이다. 물론 다른 이들로 하여금 나를 판별케 하는 가장 쉬운 것은 겉모습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궁극적인 요소일까? 절대적인 답은 없겠지만, 나의 경우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령, 손톱을 생각해보자.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다 어느 순간, 손을 움직이는 데 거슬리는 것이 있어 살펴보면 손톱은 언제나 그렇듯 나도 모르게 자라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깎아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잘라버린 손톱은 더 이상 내가 아닌 걸까? 새로 자라난 손톱의 밑부분과 잘라내 버린 손톱의 윗부분 중 어느 것이 ‘나’ 이고 어느 것이 ‘내’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딜레마는 비단 손톱 뿐만이 아니라 머리카락, 귓밥, 결국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나를 구성하는 진정한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몸’이라고 대답하지 않은 대부분의 다른 이들은 ‘지식’이라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식이 진정한 ‘나’의 구성 요소일까를 생각해본다면, 그건 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를 생각해보자. 과연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내가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을까? 그 지식이 쌓이고 쌓여 몇 년 후의 나와 그 이전의 내가 같은 사람인가 하면,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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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절대적으로 옳은 답은 없다. 어떤 답이든 온전히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흠 하나 없는 정답이 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기억’이라고 답할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이어주는 것은 어쩌면 기억이 유일할 수도 있다. 아침에 눈을 뜬 나는 과거의 나의 행동과 말을 통해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기억해낸다. 그리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다음을 살아간다.

 

요새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보게 된 드라마 ‘도깨비’에서 전생에 자신보다 백성들의 신임을 얻는 한 장군을 질투해 죄 없는 이들을 죽이라 명하고 큰 죄업을 지은 ‘왕여’는 기억을 지우는 선택을 하고 이름 없는 ‘저승 사자’가 된다. 그의 겉모습은 ‘왕여’였지만, 기억을 잃고 그가 저승 사자로 지내온 시간들 속에서의 그가 ‘왕여’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질투 때문에 자신의 목숨과 누이의 목숨, 가솔들의 목숨까지 모두 왕여의 손에 잃은 한 장군, ‘김 신’도 마냥 그를 미워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기억이 없는 채로 살았던 저승사자의 삶과 고려 시대 질투 많은 왕이었던 왕여의 삶이 한 사람의 안에 있었다고 해서 그들이 온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데는 바로 ‘기억’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은 어쩌면 진정한 ‘나’를 구성하는 요소에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행위를 했고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살았는지에 대한 기억이야 말로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기억이 마냥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나를 이루는 기억들 중 핵심적인 것을 제외한 그저 그런 기억들은 내 안에서 얼마 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 기억들은 지금은 중요해 보이지 않아도 언젠가 어느 순간에서 나를 구원해줄 수도 있는 기억이다. 하지만, 어떤 기억을 지울지는 무의식의 관할 하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의도적으로 고를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을 한다. 어쩌면 무의식에 의해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기억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기록한다. 가령 그것은 어제 발굴한 너무 분위기 좋은 카페의 위치일 수도 있고, 소중한 누군가와의 약속일 수도 있으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익혀 두어야할 지식일 수도 있다. 거창하지 않아도 일상을 살아가며 놓치기 싫은, 간직하고픈 것들이 기록되어 공책이든 파일이든 그 무언가로 남는다. 그리고 그것을 까맣게 잊고 있던 미래의 어느 날의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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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 그 가장 먼저 기억나는 기록의 구원은 초등학생 시절의 일기장이었다. 우리 집은 1년전 지금의 아파트로 전세를 받아 이사 왔는데, 집주인이 초등학생 5학년 시절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그 시절의 나에게 담임 선생님은 괴로웠던 일련의 사건에서 발벗고 나서 도와주신 고마운 분이었지만 사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희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선생님에 대한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돌려준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의 내가 썼던 일기장이었다.

 

그 안에는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기억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한 괴로웠던 감정도 있었지만 그와 더불어 선생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들, 그 시절을 견뎌낼 수 있게 해준 선생님의 한마디들이 가득 있었다. 나는 초등학생의 내가 남긴 기억을 일기장이라는 기록을 통해 읽으며 당시의 감정과 순간들을 다시금 현재의 기억 속으로 불러낼 수 있었고, 오랜만에 만나 뵌 선생님께 당시의 고마웠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기록은 이렇게 미쳐 기억하지 못했던 소중한 과거의 기억 조각들을 품고 있다가 그것을 펼쳐보는 때의 나에게 선물처럼 되돌려준다. 나에게 아트인사이트는 그러한 기록 중 하나이다. 사실 대학교에 갓 입학했던 새내기 시절의 나에게 기록이란 스터디 플레너가 전부였다. 집과 학교, 도서관을 오가며 정말 쳇바퀴 같은 삶을 살던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공연이나 콘서트를 관람하고 그것을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기록하는 동기들이 부러웠다.

 

당시의 나는 너무 좋아서 기록해야 겠다고 생각할 만한 무언가도 없었고, 항상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개성 강한 우리 학과 안에서 미운 오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다들 좋아하는 것들로 자신의 기록을 채워가고 있는데 나만 기록할 것이 없어 빈 공책만 들척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랬던 내게 터닝포인트가 되어 준 것은 뭐라도 좋아해보자는 심산으로 홧김에 예매한 한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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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쉬어 매드니스’를 본 후 나에게는 기록할 것이 생겼다. 그 연극을 6번이 넘게 보았고, 그것을 기점으로 연극과 뮤지컬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기록이 오래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표를 잘 모으지 않았고, 지금 돌아보면 가장 후회스러운 일 중 하나이다. 지금은 표를 모으는 파일 철을 사서 관극을 한 후 표, 팜플렛, 프로그램 북 등을 꾸준히 모으고 있다. 그것들은 언젠가 서랍을 열고 꺼내어 읽었을 때 나에게 어쩌면 가장 행복한 기억을 되돌려주는 나의 보물이 되었다.

 

기록할 것이 생긴 후 나에게는 더 큰 욕심이 생겼다. 표와 프로그램북을 모으고, 가끔 그것을 꺼내 읽는 것도 공연을 보던 당시의 기억을 어느 정도 되돌려주지만, 사실 그것은 온전한 나의 기억이라기 보다는 누군가의 손을 거친 기억이기 때문에 늘 아쉬웠던 것이다. 그래서 올해 초, 2월의 어느 날 친구가 추천한 ‘아트인사이트’ 활동에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나만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고, 아트인사이트는 기꺼이 그 공책이 되어주리라 생각했다.

 

공연을 ‘찰나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물론 CD 혹은 DVD로 남길 수 있지만 공연 당시 그 순간의 분위기, 배우들의 연기, 목소리, 노래, 그날 공연장을 채운 관객들의 반응,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배우와 관객 간의 보이지 않은 소통은 그런 것들로 기록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연은 찰나의 시간 동안 빛나고 막이 내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공연에 대한 나의 기억을 아트인사이트에 붙잡아 두었다.

 

그 동안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40건 가량의 글을 쓰며 나는 기록을 했다. 그 기록은 곧 기억이 되어 나를 이룰 것이고, 언젠가는 또 잊힐 것이다. 그러나 ‘아트인사이트’라는 서랍 안에 기록해둔 나의 기억들은 언젠가 다시 그것을 열람하여 읽게 되는 날 다시 내게 찾아올 것이다. 또한, 나의 기록은 어쩌면 아트인사이트라는 플랫폼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을 건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에게 아트인사이트는 기록이며, 기억이며, 그것들을 나누는 플랫폼(platfor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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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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