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처음을 위한 마지막 글

글 입력 2020.07.01 20:4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음, 글쎄…”

 

누군가 내게 ‘난 너한테 어떤 의미야? 라는 질문을 할 때, 그 대상이 사실은 차마 말로 이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님에도 말문이 턱 하고 막혀버린다. 오히려 가벼운 감정이라면 번지르르한 말로 쉽게 대답한 후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갔겠지만, 반대의 감정은 그 부피에 비례하는 침묵의 시간 속 어색함과 뻘쭘함만 남기게 된다.

 

기록이란 내게 그런 존재였다. 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리기 위해서도 짧고도 길었던 수많은 비공식 기록을 거쳐왔고, 그 내용 또한 글로 압축했으며, 기록 속 기록의 방법으로 이 글을 완성했다. 실로 그 전부였다.

 

사실은 너무도 어려웠다. 그래서 질질 끌었다. 대놓고 ‘넌 내 전부다’ 라고 답하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예시나 상황을 말해주고 싶은데, 심지어 엄청나게 많이 쌓여있는데! 널리 퍼져있는 모든 기록의 순간을 잡아 재독하고 생생한 이유를 말해주고 싶었다.

 

실질적으로 무리였다. 내 기록의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됐었고, 이미 파쇄된 종이만 해도 지구 일부분을 가득 채울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일 테니.

 

블로그 메모 일기장 콜라주.jpg

▲ (위에서부터) 블로그, 메모장, 노트북 일기장

 

 

대신 밀접하게 접촉했던 20살 이후의 다이어리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매개체에 담기 시작한 2019년 이후의 124개의 블로그 글, 노트북에 적힌 130개의 일기, 패드에 띄엄띄엄 적어놓은 62개의 일기, 아트인사이트에서 남긴 26개의 기고문, 셀 수 없는 휴대폰 메모는 가능했다. 하나하나 열고 모두 재독했다. 이 정도면 기록이 내 삶에서 채우고 있는 무게를 감히 언급할 자격 하나쯤은 생기는 것 같아서.

 

 

 

애증 (愛憎)

[명사]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


 

누군가의 마음 한구석에 혹은 전부를 모두 차지했다고 해도 ‘평생토록’ 긍정적이고 행복함만 남을까? 거기에 기록의 당사자는 무언가에 쉽게 질리고 지긋하지 못한 성격이라면?

 

몇 단어의 끄적거림조차 버거울 때가 있었다. 삶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던 것이 주객전도가 되어 나를 숨 막히게 하였다. 내 모든 것을 죄다 남겨버리고 싶은 열망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를 피하고 싶었다. 애써 모른 척했던 내면의 추악함부터 찌질함, 열등감, 차마 표현하지 못할 것들까지. ‘내가 알던 나’와 ‘기록된 나’ 사이를 멀어지게 하며 혼란은 점점 커졌다. 과연 무지와 함께 살아간 생애는 짧지만 참 편했구나 한탄할 정도로….

 

기록에 강제성을 부여하자마자 거부감까지 탄생했다. 내용보단 문체에 집중하게 됐고, 대상을 표현하는 흔한 문구들은 호기심을 잃게 했다. 자신이 쓰는 구조와 패턴을 파악하게 됨으로써 쉼표의 무한적 사용까지 검열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록하는 게 무섭기 시작했고 손은 어딘가에 묶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나 좋자고 시작했건만 왜 자신을 평가하고, 갉아먹고 있는 건지 애석했다. 하지만 결국 그 손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 또한 기록이었다. 짓눌린 글이 너무 싫고 밉지만, 그가 가져다준 수많은 추억과 행복들은 끝내 고통을 미화시켰고 아이러니하게도 고통까지 기록한 뒤 또 다른 기록을 시작하게 했다.

 

 

photo-album-235603_640.jpg

 

 

기록과 함께한 추억의 앨범을 펼쳐 앞면을 뒤적거려 보면, 꽤 오래전부터 칠칠하지 못한 내가 있다. 나름 기억한다고 했는데 이놈의 기억은 왜 한 글자씩 틀리는지. 왜 사야 하는 것 중 하나씩은 빼먹고 돌아오는 것인지. 기록은 그런 나에게 다가와 살아있는 오답 노트가 되어주었다.

 

시험지나 문제집 중 틀린 문제를 보기 좋게 잘라서 공책에 붙여놓은 뒤 정답의 근거와 오답의 이유를 적는다. 오답 노트는 내게 귀찮은 작업이었다. 실제로 문제를 틀린 이유 대부분은 내 방정맞음 때문이었고, 사실 나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데 그 이유를 굳이 왜 적어야 하는지. 그저 숙제를 완성하기 위한 보여주기 식에 불과했다.

 

그런데 기록은 달랐다. (당시에는 아주 짧은 메모에 불과하더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적고 매번 자책 섞인 그래도 여전히 끝 문장은 희망으로 끝내는 다짐은, 어찌 보면 죄다 똑같은 내용이었지만, 적는 것 자체만으로 차츰 번복되는 실수를 줄여주었다.

 

이렇듯 기록은 미성숙의 극치에 있던 나를 빠져나오게 함과 동시에 위험하지만 절친했던 말과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말과 함께했던 때의 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둥지둥 내 생각을 전하며 이해하는 몫은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으며, 들어주는 화자 없이는 생각의 정리조차 불가능했다. 그렇게 남은 것은 허탈함과 왠지 모르는 불안감뿐이었다.

 

아직도 나는 말과 친하다. 하지만 말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을 수 있는지 깨달아 버렸다. 그 이후로 말은 줄일 수 있는 한에서 줄이고 그 여백을 글, 즉 기록으로 채워 간다. 운 좋게도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것을 내게서 발견해낼 수 있었고 공허함은 조금씩 채워졌다. 그렇게 나는 생기를 되찾았다.

 

 

 

ART insight


 

그런 내가 아트인사이트에서 에디터로서 기록의 열람을 비공개에서 공개로 전환하며, 아트인사이트에 대한 애착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문화예술 플랫폼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으면, 나의 사색을 문화예술로 치장해 고이 담아두는 것이 조금은 이기적이기도 하다. 나는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한 글을 쓰시길 바랍니다.’라는 메일의 마지막 구절에 맞춰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그 또한 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여기서도 역시나 한 번 더 좌절하고, 또다시 위로하며, 성장했다.

 


아트인사이트 흐림.jpg

▲ 4개월간 작성한 기고문

 

 

소재를 찾아 저 멀리 묵혀둔 무의식까지 도달해 평소 완벽주의로 자신을 [셀프고문] 하려 했던 태도를 반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창 [사색이 간절했던 순간]에 생기록을 시작했던 기록의 역사 또한 담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에는 애써 밝은 척하기보다는 기꺼이 드러내며 나의 우울함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기록의 단서를 억지로 찾아내려 하지 않아도 됐다. [비가 온다]는 사실에 드는 울적함은 떠도는 상념으로 멈추지 않고 기록됐으며, 가장 싫어하는 계절인 여름이 다가올 때 [여름밤]을 생각하며 참았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생일을 맞았고 [스물다섯의 너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쓰며 나 자신을 어르고 달랬다.

 

 

일기장 크기.jpg

▲ 2015년 이후의 일기장들

 

 

단순히 생각하고, 작성하고 마침표를 찍어내는 일련의 과정이 기록의 시작과 끝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피상적이며 확실히 기록은 그 이상이다. 허공에 둥둥 떠돌며 아무 의미도 없는 그 무언가를 누군가는 잡을 것이고, 그의 시각을 통과하고 색채를 묻힌 문체로 표현돼 나온 결과물을 보며 우리는 공감하고 맘껏 감탄할 것이다.

 

기꺼이 설명해주지만, 정중히 들어준다. 섣불리 알아주려 하거나, 서툴게 위로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를 들어준다. 설사 그것이 아주 바보 같은 말일지라도. 다시, 기록은 그런 존재다. 나와 우리 모두에게.

 

*

 

너를 표현할 수 있는 방도가 너무나도 많아서 몇 번을 주저하며 겨우 끝으로 달려왔다. 너는 나와 참 많이 닮았다. 너무 예민하기에 너를 손쉽게 기쁘게도, 슬프게도 할 수 있다. 말했듯이, 너무 많이 닮아서 얄미웠다. 예측하기 힘든 내 감정의 증폭에 맞춰 문체로 반영하는 너를 보며, 그런 내 모습을 어쩔 수 없이 직면해야 했으니깐. 하지만 그런 나를 너는 버텨줬고, 곁에 있어 줬다.

 

세월은 빨랐고 곁에 남은 사람은 시시각각 변해왔다. 나는 필연적으로 항상 너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몇십 년에 걸쳐 함께 표류해왔다. 그 수 많은 조각은 구석구석 떠돌며 내 흔적을 심어 놓았겠지. 단연 내 인생을 가장 잘 반영했고, 하고 있고, 할 것은 너임에 틀림없다.

 

손에 부러지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너와 이어지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입으로, 입이 꿰매어지면 눈빛으로, 계속해서 나의 기록은 이어지겠지. 너는 나에게 이 정도인데…. 이제는 내가 묻고 싶다. 네게 나는 어떤 존재니?

 

- 기록에게

 

 

 

에디터 박수정 tag.jpg

 

 



[박수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20865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