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단 씁니다.

글 입력 2020.07.0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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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고 글쓰기를 즐겨했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항이 없다. 책을 많이 읽긴 했지만 글자 책 보다 만화책을 더 많이 읽었고, 아마 글자 책의 텍스트보다 만화책 속의 텍스트를 더 많이 읽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A4 용지 한 면도 채우기 버거워했으며 항상 구체적으로 다시 써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1. 이과생이 논술을 한다.



어머니의 권유로 논술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그 논술은 이과 수리논술도 아닌 문과 논술 위주였다. 처음에는 내가 왜 그런 걸 해야 하냐며 마찰이 었었다. 글쓰기에 흥미도 없었을뿐더러 이과에 컴공을 생각하던 나에게 문과논술은 더욱더 생각도 안 했던 공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끌려 나가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 외로 재미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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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수업하시는 방식은 그저 글 연습만 주구장창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주간 이슈였던 기사들을 스크랩해서 리뷰해주시고, 우리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토의하게 하는 식이었다. 워밍업으로 이슈 리뷰를 마치면  역사, 정치, 사회 등 인문분야는 물론 수리, 과학, 예술 분야까지 상식보다는 조금 심화된 영역을 두루두루 가르쳐주셨다. 그때 항상 해주시던 말씀은 지금도 내 가치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모든 학문은 연결고리가 있다.

그 연결점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모든 학문은 하나로 묶인다.

 

정말 신기하게도 따로 붕붕 떠다니던 학문들이 배우면 배울수록 연결고리가 형성되는 게 보였다. 모든 학문의 가장 기본은 철학이며, 사고하는 과정에서 언어와 문학이 발달했다. 인류가 발전하면서 언어를 사용하여 소통을 하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게 되면서 집단을 결속할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이렇게 정치와 사회가 발달한 것이다. 보다 더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살아남기 위해 수학과 과학이 발달했으며 어느 정도 생존에 안정을 느끼며 미술과 음악 등 예술분야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보이는가.

 

결국 인간은 보다 더 잘 살기 위해 학문을 발달시켰으며, 넘쳐나는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시야를 확장하고 미지로 도전을 서슴지 않았다. 과거 인류를 혁명적으로 발전시킨 인물들도 가만 보면 온갖 학문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고 나니 세부적인 내용을 탐구하는 데 흥미를 느꼈다. 또 생각보다 비판하고 연구하는데 소질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표현하려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결과 글쓰기에 속도가 붙었다. 인과관계를 찾아내고 이를 적절한 근거를 들어 논리 정연하게 표현하는 게 너무나 즐거웠다.

 

그렇게 글쓰기 인생이 시작되었다.

 

 

 

2. 아차, 전공을 잘못 선택해버렸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나는 고등학교는 이과요, 대학교는 컴퓨터과학 전공으로 일명 공돌이로써 대학생활을 했다. 어릴 적 영화에서 보던 지하실 해커들이 너무나도 멋있기 때문에 키운 꿈이었다. 주인공들이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누가 봐도 공돌이처럼 보이는 인물이 나타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파란 화면에 여러 화면을 띄우고 저걸 보는 게 맞는가 의심이 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의심 인물들을 스캔한다. 찾았다! 공돌이는 주인공에게 결정적인 단서를 내어주고 그를 서포트하며 세상을 구해낸다.

 

결국 공돌이가 세상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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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너무나도 멋있었기에 나는 컴퓨터에 흥미를 가지고 컴퓨터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컴공 생들이 그렇듯, 이 분야는 천재의 영역이 너무나도 분명했다. 사고 구조 자체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코딩을 하는 시야부터가 차이가 났다. 물론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 가면서 나에게도 비슷한 시야가 생기긴 했지만 나에게는 특히나 어려웠다. 컴퓨터와 언어로 대화하는데 검은 화면에 하얀 글씨를 타이핑하며 코딩한다. 4년을 내리 다녔지만 직관적이지도 않고, 기본 구조에서 어떻게 응용해야 하는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전공에 흥미를 잃었다.

 

내가 전공과 맞지 않다고 확실하게 느낀 건 2학년 때였다.

 

학칙 상 다른 학과 수업도 균형 있게 들어야 해서 사회과학대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업과 여러 사례를 통해 인류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토론하는 수업이었다. 두 수업 모두 너무나도 찰떡같이 나와 잘 맞았다. 교수님은 기본적인 개요와 흐름을 설명해주시고 질문을 던지셨다. 사례를 비교하고 분석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류한다. 이후 차이점에서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지 다시 한번 분석하여 결과를 도출한다. 이제 마무리는 분석한 것을 토대로 논리적으로 정리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즐거운 수업이 있다니. 대학생활 중 가장 재미있었던 과목이라 자신할 수 있을 정도로 나와 잘 맞았다.

 

그렇다. 나는 사고 회로가 애초부터 이공계가 아니었다. 하나 짐작하는 건 뇌가 말랑말랑한 고등학교 때부터 관련 분야를 공부하다 보니 사고가 그쪽으로 발달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사회과학대 교수님조차도 단 한 명 공대생인 나를 두고 ‘너는 공대 머리가 아니야. 아무리 봐도 이쪽 머리인데...’라고 의문을 표하실 정도이니 말이다. 그때를 기점으로 보다 더 적극적으로 글쓰기에 도전했다. 작지만 교내 문화 공모전에서 평론 부문에서 3번 출마해 2번 입상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3. 넓은 시야, 질적인 글쓰기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은 1학년 2학기부터이다. 어느 날 문득 교내 문화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고 ‘이거다!’하며 도전 정신을 불태웠다. 분야는 평론, 분량은 A4용지 7매 내외로. 생전 써본 적도 없던 분량에 덜컥 겁이 났다. 살면서 써본 가장 긴 문서는 대입 때 자기소개서 3장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소서는 내 학적부에 있는 사항을 잘 엮어서 쓰면 되니까 괜찮았는데, 완전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려니 너무나도 막막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나갔다.

 

주제는 ‘무라카미 하루키 초기 3부작을 비교 분석하여’라는 주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미친 주제가 아니었다 싶다. 특히나 일본 문학의 거장 하루키는 지금도 학계에서 치열하게 연구되는 판에 기초지식 0인 공돌이가 그저 하루키 문학이 좋다고 달려든 꼴이니 말이다. 그래도 처음 열정이 오래간다고, 이때의 경험이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평론의 ㅍ도 몰랐던 나이기에 준비기간 3주 동안 도서관에 콕 박혀서 20권의 책을 읽었다. 당연히 하루키 3부작은 기본이고, 이를 평론한 평론가들의 책, 평론하는 방법, 글 쓰는 방법 등 어떻게든 갈피를 잡기 위해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완성된 7장의 평론은 어떠한 상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하루키 문학을 연결 지어 분석했다는 점을 높게 사고 이를 더 발전시키면 좋겠다는 평은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연결고리’는 내 글, 내 가치관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얻고 2학년 때 다시 한번 도전했다. 이번에는 수업시간 리포트 과제 겸 작성한 평론이었다. 멕시코 축제에 대한 책이었는데 ‘우리들은 빠창게로’라는 제목부터 생소한 책이었다. 멕시코 축제 문화를 상세하게 설명해놓은 책이어서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 축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저 멀리 멕시코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과제였기에 손댈 수 있는 책이었지, 평생 한번 볼까 말까 한 책이었다.

 

이번에는 ‘관점’에 포인트를 주었다. 책을 읽고 공부하다 보니 멕시코는 식민지배를 받아 가톨릭 문화권의 형태를 뗬다. 그러면서도 토착종교의 뿌리가 굉장히 깊게 내려있어 신기하게도 가톨릭과 토착종교가 융합된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기후 환경은 농업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토착종교, 가톨릭, 농업.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누어 각각 분석하고 서술한 뒤에 세 파트를 합쳤다. 이게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다. 각각의 파트를 분석하는 것은 괜찮았는데 결론에 가서 세 가지를 공통으로 묶어 결론을 도출하는 작업은 특히나 공을 들였다. 억지로 이어 붙이면 안 되고 논리적 근거를 들어 납득할 만한 ‘연결고리’를 찾아야 했다. 처음 시작은 농업으로 잡았다. 영토와 기후를 따르는 인간이 간섭할 수 없는 근본적인 부분부터 살살 접근했다. 그러다 보니 토착종교가 생긴 이유를 캐치해 연결할 수 있었고, 식민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뿌리내린 가톨릭 문화를 토착종교와 연결 지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농사를 기원하는 종교의식의 형태가 변하였고 최종적으로 농업과 가톨릭을 연결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글을 마치고 드는 느낌은 너무나 깔끔했다. 이보다 더 잘 쓸 수는 없다. 그렇게 당당하게 출품했다.

 

결과는 입상. 2등이었다.

 

너무나도 기뻤다. 작년에는 주목도 받지 못했던 내 글이 단 일 년 사이에 이렇게 발전했다니. 결과를 눈으로 보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문화 공모작 수상작 중에 이공계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게 수상자는 국문학과와 신방과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내가 전공자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수상했구나.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3학년, 마지막 도전이었다. 주제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로 하루키 작품이었다. 고등학교 때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이 책은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다시 한번 하루키 문학으로 평론을 도전한다. 그것도 내 인생을 좌우한 책을 평론한다. 조심스럽고도 흥분되는 도전이었다.

 

이번에는 내 인생을 담아보기로 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이 책을 통해 어떤 변화를 겪었으며 덕분에 어떻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진심을 담아 적다 보니 책에 대한 비평보다 내 삶의 경험을 책에 녹여내어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를 도출해내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색은 있다. 다만 아직 색을 찾지 못했을 뿐.’

 

나의 색은 무엇일까. 남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온 인생도 있을 테고, 본인이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인생도 있을 것이다. 결국에는 모든 인생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에 대한 답은 부모님도, 친구도 아닌 오직 나 자신만이 도출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정성스레 작성했고 쓸데없는 수식어구와 표현은 배제했다. 그렇게 분량보다 살짝 적지만 5장 분량의 글이 완성되었다.


결과는 입상.

 

‘이번에도?’라는 물음은 들지 않았다. 결과는 애초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처음에 글을 시작할 때는 솔직히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나를 올곧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에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3번째 출품이다 보니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생기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야 당연하게도 유일한 ‘컴퓨터과학’ 학생이니 말이다. 주최 측 관계자분이 하신 한마디로 모든 고생이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작년에도 출품하셨죠? 기억이 나네요’

 

심지어 심사위원으로 계셨던 분이 친구네 학과 교수님이셨는데, 내 사례를 들면서 칭찬하셨다고 한다. 전공생들에게 비전공자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는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이렇게 3년간의 도전은 기분 좋게 마무리되었다.

 

시작은 작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때의 도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평론에 도전하면서 한 권의 책을 평론하기 위해서는 10배에 달하는 책을 읽어야 하고, 지식을 소화시킬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한 내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엮어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된다는 것을 알았다. 어찌 보면 누군가 정성 들여 열심히 집필한 책이기에 그 책을 평론하는 나도 그만한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게 당연한 것이지만 말이다.

 

만약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딱히 드릴 말씀은 없다. 왜냐하면 나는 누군가에게 조언할 만큼 뛰어난 글솜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만한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도 없고, 고등학교 이후로 지도를 받은 적도 없다. 혼자 억지로 억지로 맨땅에 헤딩하면서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하나 정도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글쓰기에 부담 갖지 말고 쓰고 싶은 대로 즐겁게 쓰자!

 

 

 

컬쳐리스트 명함.jpg

 

 

[김상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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