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6월, 사람에 대한 생각

글 입력 2020.06.2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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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도 절반이 지났다. 가끔, 사람의 모든 시간은 다른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그들과 다양한 관게를 일구어가는 과정으로 설명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반년을 되돌아봐도 많은 일들이 결국 사람으로 설명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일이 생기고, 한편으로는 알고 있던 사람과 멀어지며 6개월이 지난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한 반이 되면 꼼짝없이 1년을 한 공간에서 거의 하루종일 얼굴을 맞대고 지내야 했던 때와 다르게 대학생이 되자 사람을 만나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싫은 사람은 피해 다닌 결과, 대학생인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남았다. 사람들간의 거리도 조절할 수 있었던 시기다. 그런 줄도 모르고 착각을 했다. 드디어 내가 인간관계 고민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인간관계로 다시 괴로워진 건 직장에 다니면서부터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그들과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자 학창시절 느꼈던 어려움과 막막함을 또 다시 느꼈다. 특히 지난 6개월은 직원이 10명도 되지 않는 회사에서 세네 명의 사람이 들어오고 나간 격변의 시기였다. 그 속에서 나는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 신경이 쓰였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춤도 출 수 있을 것 같은데, 관계가 생기기 시작하는 순간 골치가 아파진다.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일지 끊임없이 생각하다가 새삼 사람은 참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100% 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고등학생 때에 비하면 머리가 커서일까,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의 80퍼센트 가량이 싫은데, 나머지 20퍼센트에서 친한 친구보다도 더한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들을 발견할 때면 놀랍다. 그런다고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지 않게 되거나 갑자기 절친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인간에게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어떤 종류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몸소 배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만나게 된 사람들, 다른 데서라면,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결코 가까워지지 않았을 사람들과 교류하고 관계를 쌓아간다. 나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과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공유한다. 그건 참 이상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지만 조금 재미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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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에게는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관계의 총량이 정해져 있기라도 한 걸까. 지난 6개월을 지나며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 가까워진 동시에 어떤 사람들과는 영영 멀어졌다고 느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걸까 차근 차근 생각해봐도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자기 전에 비몽사몽한 상태나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그들을 생각하다가 뜬금없이 내 블로그가 떠올랐다.

 

최근에 들쑥날쑥이지만 3년 가까이 계속 운영해오던 블로그를 접었다. 예전에는 늘 궁금했다. 어떤 예고도 없이 중간에 뚝 끊어진 인터넷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규칙적으로 글이 올라오다가 어느 날 아무 소식 없이 새 글이 끊긴 블로그,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여 그 연예인 소식만을 꾸준히 올리는 소위 '덕질용 계정'을 운영하다가 갑자기 그 계정을 팔아버려 광고 계정이 된 경우. 일이 바빠졌을까, 아니면 '탈덕'을 한 걸까, 혹시 무슨 사고라도 당한 건가...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알겠다. 별 이유가 없다는 걸. 나는 블로그를 하며 진저리가 쳐질 정도로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일이 미친듯이 바빠진 것도 아니다. 그냥, 그냥 어느 날 블로그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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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마땅한 이유를 찾는 게 오히려 억지스러운 일은 아닐까.

 

예전에는 관계 하나 하나에 의미와 서사를 부여했다. 어떤 사람과는 우연하게 마주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사람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 모든 애틋함과 서글픔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 때 알았다. 이 절절함은 상대방이 정말로 특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멀어졌기 때문에, 서로를 알고 있던 상태에서 다시 모르는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에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우리가 가까워졌던 게 우연의 산물이듯, 멀어지는 것 역시 대단한 이유가 없다고. 그냥 우리는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누구나 그런 순간을 살면서 수없이 마주한다. 모두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나에게는 절절한 이 이야기가 세상에게는 평범하디 평범하다. 단지 관계가 끝나서 외로운 게 아니라 그 사실을 깨닫는 게 외로웠다.

  

어떤 날 세상은 그 자체로 재앙 같고, 그다음 날 세상은 꽤 살 만한 것 같다. 나는 지금 어디쯤 있는 걸까. 2월에는 여름이면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예전이 너무 까마득해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끼고 다닌다.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변곡점이 찾아오고 그마저 금새 과거가 된다. 별로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6개월간 나는 내 생각보다 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는 한 살 한 살 나이 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이렇게 nn살이 된다고? 물음표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이 나이가 되어도 되는 건가. 이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유나 의미가 없어도 시간은 잘 간다. 예전에는 인생에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했는데, 이제는 그저 무탈함을 바라게 되기도 한다. 나의 격렬한 파도는 세상의 작은 물결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간다. 이렇게 2020년이 지나가고 있다.

 

 



[김선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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