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함께 읽으‘시‘죠] 2편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

나도 당신처럼 아름다워보자고 시를 읽고 쓴다
글 입력 2020.06.2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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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당신처럼 아름다워보자고 시를 읽고 쓴다

 

 

시인의 말

 

“나도 당신처럼 한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멀리 흘렀다. 내가 살아 있어서 만날 수 없는 당신이 저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이 세상에도 두엇쯤 당신이 있다. 만나면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1편에서 언급했듯이 [함께 읽으‘시’죠]는 시를 읽기 위해 시작한 글이다. 나는 왜 시를 읽을까. 글을 쓰는 당신들을 질투하기 때문이다. 당신들처럼 세상을 보고, 정확히 쓰고 싶다. 내가 읽고 쓰는 일을 박준 시인의 표현을 빌려 ‘나도 당신처럼 한번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은 더 멀리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일이 당장 내가 돈을 벌고 좋은 성적을 받는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시간을 들여 조금 더 가보고 싶다. 오늘 함께 읽을 시집은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다.

 

“살아 있어서 만날 수 없는 당신이 저 세상에 살고 있고, 물론 이 세상에도 두엇쯤 당신이 있”다는데. 시인은 왜 그들을 만나면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할까. 잘 모르겠다. 시인의 사정이 있겠지. 1편에서 말했듯이 시를 읽으며 꼭 모든 문장을 해석하고 이해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작가의 말이 정확히 해석할 수 없어서 좋다. 시인을 만나면 한 번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도 시인처럼 아름다워보고자 몇 자의 글을 적었던 밤이 있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제목만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시집이 있다. 박준 시인의 이 시집은 그런 제목을 가진 시집 중 하나다. 당신의 이름을 오래오래 곱씹던 날들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시집은 내가 오래 곱씹었던 이름을 가진 당신이 좋아하던 책이다. 음악이나 사진처럼 시집에도 삶과 추억이 담길 수 있다. 부디 이 책을 읽을 당신에게도 행복한 한 시절의 추억이 담기길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오래 곱씹은 이름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곤 하지만, 시인이 당신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밥을 짓는다‘는 뜻이 아니라 ’약을 짓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밥처럼 일상 속에서 당신의 이름을 떠올렸을 수도 있고, 약처럼 아플 때마다 당신의 이름을 삼키며 버텼을 수도 있다.

 

박준 시인은 실제로 종종 아팠다고 한다. 시인이 아픈 밤에 오래도록 떠올리며 곱씹었던 이름을 함께 나누는 마음을 떠올리면 왠지 씁쓸하고도 달큰한 맛이 난다. 적어도 이 단어들이 며칠동안 씹을수록 은은한 닷맛이 배어나오는 단어임은 분명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다지 관심 없던 단어들을 나는 이제 조금 사랑하게 되었다.



 

한 철 머무는 마음




제목: 마음 한 철 


미인은 통영에 가자마자

새로 머리를 했다 


귀밑을 타고 내려온 머리가

미인의 입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내색은 안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동백을 보았고 

미인은 처음 동백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여기서 한 일 년 살다 갈까?”

절벽에서 바다를 보던 미인의 말을 


나는 “여기가 동양의 나폴리래” 하는 

싱거운 말로 받아냈다 


불어오는 바람이

미인의 맑은 눈을 시리게 했다 


통영의 절벽은 

상의 영정과

많이 닮아 있었다 


미인이 절벽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가며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미인의 손을 꼭 잡았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강조는 인용자) 그런 마음을 가진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당신의 이름으로 밥이든 약이듯 지어 오래오래 되뇌이며,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던 때. 한 철 머무는 마음이었을지라도 우리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잔나비의 노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건 볼품없지만’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가사를 보고, 노래를 들으며 다시 한 번 시를 감상해보자 이 시와 잘 어울리는 노래이다.

 

“그땐 난 어떤 마음이었길래 내 모든걸 주고도 웃을 수 있었나/ 그대는 또 어떤 마음이었길래 그 모든걸 갖고도 돌아서 버렸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 품 없지만”

 

박준 시인의 시에는 ‘미인’이라는 존재가 자주 등장한다. 미인은 시인이 되고 싶고 닮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존재인 것으로 보인다. 꿈꾸는 이상향이라고 해야할까. 미인처럼 되고싶다는 욕망이 이 시인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시를 쓰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미인처럼 될 수 있을까. 자꾸만 그 모습을 그리어본다.



 

아무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




제목: 문병

-남한강


당신의 눈빛은 

나를 잘 헐게 

만든다


아무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다 


해서 수면은 

새의 발자국을

기억하지 않는다 


오래된 물길들이 

산허리를 베는 저녁 


강 건너 마을에 

불빛이 마른 몸을 기댄다


미열을 앓는 

당신의 머리맡에는 


금방 앉았다 간다 하던 사람이 

사나흘씩 머물다 가기도 했다 

 

 

수면은 새의 발자국을 기억하지 않는다. 아무것에도 익숙해지지 않아야 울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해진 것이 사라지면 그 자리엔 그리움이 찾아온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어떤 것들은 나보다 먼저 떠나간다. 내가 먼저 떠나오게 되는 날들도 있다.

 

시인은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아 다짐을 했을까. ‘그러나 당신의 눈빛은 그런 나의 다짐을 헐게 만든다‘. 강 건너 마을, 불빛이 새어나오는 집에 사는 당신. 당신으로 보러 문병을 갔던 ‘나’는 금방 앉았다 가겠다고 말하고도 사나흘씩 머물곤 했다.

 

익숙해지면 분명 울게 된다. 그래도 사나흘씩 머물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우리 삶에는 종종 있기 마련이다. 반드시 울게 될 것을 알면서도 또 다시 마음을 줄 수밖에 없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울 각오를 한다는 뜻과 같다.

 

우리는 망설이겠지만, 아마 다시 사랑을 시작할 것이고, 결국 울게 될 것이다. 그래도 나를 잘 헐게 만드는 당신의 눈빛이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 시 앞에서는 잠시 감상에 젖어도 괜찮지 않을까.

 

이 시와 함께 읽을 만한 글 한 편을 함께 소개해보고 싶다. 피천득 시인의 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 중 한 부분이라고 한다.

 

“아빠는 말씀하셨다. 너무 작은 것들까지 사랑하지 말라고. 작은 것들은 하도 많아서 네가 사랑한 그 많은 것들이 언젠가 모두 널 울게 할테니까. 나는 나쁜 아이였나 보다. 난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빨간 꼬리가 예쁜 플라밍고 구피를 사랑했고, 분홍색 끈이 예뻤던 내 여름샌들을 사랑했으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갈색 긴머리 인형을 사랑했었고, 내 머리를 쓱쓱 문질러대던 아빠의 커다란 손을 사랑했었다. 그래서 구피가 죽었을 때,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샌들이 낡아서 버려야 했을 때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마다 난 울어야 했다. 아빠 말씀이 옳았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간 날 울게 만든다.”



 

밤새 별빛을 먹어 노랗게 말랐다



 

제목: 광장

 

빛 하나 들여보내는 창이면 좋았다 우리는, 같이 살아야 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 간단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시절에 만났다 네가 피우다 만 담배는 달고 방에 불 들어오기 시작하면 긴 다리를 베고 누워 국 멸치처럼 끓다가 ‘사람이 새와 함게 사는 법은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었다’ 정도의 글귀를 생각해 너의 무릎에 밀어넣어두고 잠드는 날도 많았다 이불은 개지도 않고 미안한 표정으로 마주앉아 지난 꿈 얘기를 하던 어느 아침에는 옥상에 널어놓은 흰 빨래들이 밤새 별빛을 먹어 노랗게 말랐다

 

 

이런 시를 읽다보면 머릿속으로 그림 한 장을 그려보게 된다. 빛 한 줄기 겨우 들어오는 반지하 방에서라도 다리를 베고 누워 서로의 따뜻함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한 그런 나날. 같이 살고 같이 늙어가고 같이 죽어갈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 함께 시간을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이 글의 문장들이 마음에 든다. ‘사람이 새와 함게 사는 법은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었다‘는 문장이나 ’지난 꿈 얘기를 하던 어느 아침에는 옥상에 널어놓은 흰 빨래들이 밤새 별빛을 먹어 노랗게 말랐다‘는 문장을 읽다보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내가 시를 읽으며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자꾸만 곱씹게 되는 문장들을 만났을 때면, 왠지 이 문장을 만나기 위해 이 시집을 펼친 기분이다. 나는 문장과의 이 사소한 만남으로부터 시를 읽는 기쁨을 느낀다.



 

시인이 되는 순간, 또는 미인이 되는 순간


 

박준 시인과 관련해서라면 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신형철 평론가님이 진행하셨던 <문학동네>라는 팟캐스트에서 게스트로 출연했을 당시 시인이 직접 들려주신 이야기이다.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출간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의 일이다. 시인은 어느 날 길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가벼운 접촉사고였는데, 추운 날이라 보험사가 오기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기다리며 서로 명함을 주고받는데, 직업이 시인이라 별다른 명함이 없었던 시인은 그래서 명함대신 자신의 시집을 건넸다고 한다.

 

명함대신 자기의 책을 건네다니, 내 버킷리스트에도 슬며시 적어두고 싶은 일이다. 명함대신 책을 받는 사람은, 또 건네는 사람은 어떤 생각이 들까. 박준 시인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제 뒤로 물러날 수 없구나. 어떤 정체성이라는게 확고해졌고, 시를 언제까지 쓸지는 몰라도 난 앞으로 시인에 가까운 상태로는 평생 살게 되겠구나’하는 생각들. 그 두려움과 책임감.

 

시인을 시인으로 만드는 순간에 대해 생각한다. 또는,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순간. 시인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삶에 그런 순간이 한 번쯤은 찾아올 것이다. 그때의 우리는 누구일까. 박준 시인이 시를 쓰며 미인의 모습을 닮고싶어 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각자가 꿈꾸던 미인의 모습에 조금은 더 가까워져 있길. 그리고 시를 함께 읽는 시간이 그 과정에 도움과 즐거움을 줄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당신의 이름을 지었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 시집을 지어 며칠은 먹어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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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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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아급 시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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