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관객의 찰나를 훔치기 위한 희생 - 프레스티지 [영화]

글 입력 2020.06.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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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2000)와 <인셉션>(2010) 그리고 <덩케르크>(2017)와 같은 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정교하게 설계된 구조와 감독에 의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시간이다. 덕분에 놀란은 시간을 가지고 노는 감독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메멘토> 이후 배트맨 시리즈의 사이에 나온 이 영화 <프레스티지>(2006) 역시 놀란의 특징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여타 작품과 비교하면 호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은 놀란 감독의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The Presti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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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당통'이라는 예명을 쓰는 마술사 로버트 앤지어(휴 잭맨)가 공연 중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은 마술사 동료인 엘프리드 보든(크리스찬 베일)이다. 앤지어는 부유한 귀족 계급에 쇼맨십을 갖춘 마술사다.

 

반면 보든은 성격이 안 좋고 과거가 불분명하지만,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뛰어난 기술을 가졌다. 두 사람은 조수이자 앤지어의 아내였던 줄리아(파이퍼 페라보)의 죽음 이후 적대적인 관계가 된다. 서로 이기기 위해 어떤 일이든 서슴지 않고, 최고의 묘기를 보이기 위해 어떤 희생이든 감수한다.

 

 

 

모든 것을 건 눈속임


 

모든 마술은 3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평범한 마술'이다. 마술사는 평범한 것을 보여주고, 특별한 일을 해낸다.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인 '대전환'이다. 마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은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단계를 '프레스티지'라고 한다.

 

마술에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 단계인 프레스티지에서 '어떻게 다시 나타나는가'다. 이것이 모든 마술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 무엇이 희생되었는가?' 이다. 화려한 눈속임을 위해 새장에 갇혀 죽어야만 했던 비둘기는 모든 마술사의 운명과 같다.

 

작품의 초반에 등장하는 중국인 마술사의 비밀은 평소에도 절름발이 행세를 해 다리 사이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훌륭한 묘기일수록 큰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는 명확하다. 속임수의 지속시간과 범위를 넓힘으로써 속임수를 인생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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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을 성취하려면 손을 더럽혀야 해"

 

 

앤지어는 마침내 테슬라의 기계를 얻게 된다. 기계를 이용해 환상적인 순간 이동 마술을 선보이지만, 그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묘기를 선보일 때마다 찾아오는 죽음의 두려움을 견디고, 수십 번의 자살 아닌 자살을 반복한다. 보든의 반쪽 짜리 삶과 앤지어의 반복되는 죽음으로 이들이 잃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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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가 원하는 것은 속임수와 비밀이 없는 보든이다. 과연 마술사가 속임수와 비밀 없이 살 수 있을까? 보든은 강력한 무기이자 비밀이 사라지고 나서야 딸 제시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넌지시 언급되는 테슬라와 에디슨의 관계 역시 성공에 대한 욕망과 집착으로 얼룩져 있다. 앤지어와 보든의 사이처럼 말이다. 테슬러는 앤지어에게 집착을 버리고 기계를 태워버리라고 조언하지만, 앤지어는 끝까지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이 영화의 재미는 속임수와 비밀, 반전에 있지 않다. 욕망을 위해 어디까지 자신을 잃고, 망가질 수 있는지에 있다.

 

 

 

마술과 영화의 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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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두 마술사의 일기가 교차하며 흘러간다. 보든의 일기를 훔쳐 마술의 비밀을 알아내려 하는 앤지어와 죽은 앤지어의 일기를 보는 보든의 시점이 교차하여 나타난다. 일기는 암호화되어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대단한 비밀도, 뚜렷한 진실도 없다.

 

사실 일기는 서로를 위해 만들어진 눈속임 장치에 불과하다. 영화의 순간이동 마술과 화려한 볼거리 그리고 미스테리한 비밀들 역시 일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영화 자체가 암호화된 감독의 일기와 같다. 속기를 원하는 관객은 제대로 보지 않는다.

 

마술과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놀란 감독이 마술을 소재로 한 소설의 영화화를 선택한 것도 영화와 마술의 닮은 면을 포착했기 때문이리라. 찰나의 순간을 훔쳐 관객의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놀란 감독의 특기이다. <메멘토> 이후 곧바로 <프레스티지>의 제작에 들어간 것은 자신이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찰나의 순간에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기 위해 짜인 놀란의 영화는 언제나 환상을 보여준다. 놀란 감독은 카메라를 든 마술사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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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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