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바이올리니스트의 구두 굽 소리 - 안두현의 클미 콘서트 [공연]

손과 입의 소리, 그리고 몸짓들.
글 입력 2020.06.2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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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미지기’, ‘클래식에 미치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오래도록 운영해왔던 안두현 지휘자가 콘서트를 열었다. 첼로, 피아노, 플롯, 바이올린. 네 악기의 아티스트들이 선사하는 각자의 연주, 그리고 그들과의 토크로 구성된 차분한 콘서트였다.

 

 

 

첼리스트 ‘김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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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열, 여기서 무대와의 거리는 3m 남짓 돼 보인다. 첼리스트 ‘김가은’이 곧잘 무대 위로 올랐다. 자신의 몸을 능히 가리는 악기에 고개를 파묻고, 곧바로 첫 곡을 연주하였다. 귀에 친숙한 노래, 나중의 곡 소개에서나 제목을 알았다.

 

첫 곡은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

 



 

 

홀 자체는 그리 크지 않다.

 

대략 한 열에 15명 안 되고, 열로는 총 20열이 안 되어 보이는 크기. 첼리스트는 이 소박하고 텅 빈 무대 위로 올라 어떤 말도 낭비하지 않은 채로 곧바로 연주를 준비하다. 아직 이 콘서트가 어떠할지를 모르는 나는 궁금한 눈빛으로, 또 기다리는 눈빛으로 그녀의 우아한 드레스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뭇 관중의 숨죽인 기다림을 한몸에 받아내면서도 아무런 동요도 표정도 없이 차분히 무대로 등장한 그녀는, 그러나 첼로에 기대는 순간 삽시간에 감정 속으로 들어간다. 아주 빠른 시간만에 연주에 대한 준비를 마치었다.

 

지긋이 꾸욱, 활을 현 위에다 누른 채 온몸을 부르르 떨 때마다 믿기지 않는 깊은 소리가 난다. 홀에는 한 자리씩 띄워 앉은 우리들 사이로 바람과 소리가 드나들만큼 비어 있었고, 무대 위에는 피아노 한 대와 첼로 하나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활은 밀고 당기고, 느리고 빠르게, 주려는 듯 마는 듯, 애태우듯이 간지럽히다. 그런 순간순간마다 첼리스트의 표정은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연주자에게서나 마찬가지로 보이는 저 모습은 연기가 아니고서야 아주 깊이, 깊숙이 곡에 빠져든 것으로 보인다.

 

연주자가 이룩하는 고운 선율과 우리들의 숨죽인 몰입, 이 화합을 깨어버리는 소음이 아니고서야 곡이 마칠 때까지 연주자는 저 곡에 깊이 심취해 있을 것이 느껴진다. 연주하는 이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하며 선율의 강약과 박자를 타서 맞추어 흐르고 있었고, 중간 중간 깊은숨을 후후 뱉는다. 깊은 데서 끌어오르는 듯 한 날숨을 후욱, 그 숨소리마저 이 선율에 꼭 맞다는, 어울린다는 내 느낌은 과몰입된 소치였을까.

 

어쨌든 이렇게, 클미 콘서트는 시작되었다.

 

*

 

첫 곡을 마치고 나니 진행을 맡은 안두현 지휘자가 무대에 올랐다. 소개는 짧았고, 김가은 연주자를 무대로 초대해 만담을 시작한다. 그런 동안에 한 명의 먼 인물이었던 ‘첼리스트’ 김가은은 19세 소녀로 내게 닿기 시작했다. 고교를 조기 졸업해 한예종에 입학했고 차이콥스키 국제 콩쿨에 진출했었으며, 세계적인 첼리스트 고티에 카프송과 인연이 닿았다는, 그런 비범하면서도 인간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좀 전에 가졌던 멀고도 냉철한 예술가의 인상 위에 생애가 입히니,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진다.

 

개인 약력을 짧고 굵게 소개한 다음 ‘본인이 생각하는 첼로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답한다. 그녀는 첼로를 가장 인간의 목소리에 가까운 악기라고 표현했다. 첼로의 피치가 우리 목소리의 피치와 가장 닮았다는 것이다. 이어서 앞으로의 꿈은, ‘첼로를 통해 음악이 가지는 언어 너머의 울림과 힘’을 성공적으로 구현해 보이는 것.

 

“어둠 속에선 빛을, 빛 속에서는 그 빛의 상기를…”

 

토크 양상은 이렇듯 간단명료했지만 신선했다. 한 명의 예술가가 악기가 아닌 언어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에. 19세의 연주자가 투명한 목소리로 “어둠 속에선 빛을, 빛 속에선 그 빛의 상기를…”하며 자신의 꿈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녀의 연주를 이미 잘 들은 덕분에, 그녀의 이 대단한 꿈에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됨을 느낀다. 공연과 토크가 이런 식으로 어우러질 수 있구나 싶었다.

 

만담은 15분가량으로 짧았다. 아주 간결하고 명료한 이야기들이 오갔고, 길지 않은 토크의 끝으로 마지막 곡을 소개한다. 마지막 곡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이다.

 

 


 

 

현을 튜닝할 때의 짙은 미간, 준비를 마친 후 느지막이 내쉬는 숨, 이윽고 시작되는 ‘백조’의 선율과 연주자의 지긋이 앙다문 입술과 느끼는 듯한 표정. 토크를 마친 그녀에게 19세의 표지는 다시 지워진다. 조금 전 소개받은 19세의 소녀는 첼로의 연주와 함께, 다시 예술가가 됨을 ‘본다’.

 

그리고 연주가 보이는 이곳에서는 특히나, ‘강약 조절’이 훅 느껴온다. 들어온 것들과는 구현되는 강약 조절의 수준이 다르다. 이어폰 안에서는 음의 생동감도 채 구현이 안 되지만 강약 조절에 특히나 한계가 있던 것이구나. 아마 고막을 직접 타격하는 음으로써는 너무 높은 음도 너무 낮은 음도 우리에게 즐거울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공간 속에서 음이 널리 퍼지고 있는 지금에, 음은 마음껏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었고, 폭발하듯 격정적으로 커질 수도, 다시 속삭이듯 희미할 수도 있었다.

 

 

 

피아니스트 '김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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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피아니스트 김기경의 차례. 차분히 반짝이는 검은색 실크 셔츠를 입은 채 무대를 오르는 그, 묵묵하고 재빨리 연주 준비를 마친다. 쇼팽 에튀드 Op.10 중 No.4 ‘추격’과 No.5 ‘흑건’ 두 무대를 연달아 선보였다.

 

 

 

 

막 방금 느낀 바와 유사하게, 손놀림이 보이는 이곳에서는 강약조절이 특히나 여실히 다가온다. 객석을 향해 앉아 있는 첼리스트와 달리, 피아니스트는 그의 옆모습을 보이기에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 대신 그의 손가락이 아주 잘 보이는데, 잘은 모르지만 아주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반주를 치는 손의 박력과 멜로디를 치는 손의 흐늘거림, 이 사뭇 다른 두 질감이 동시에 다가온다. ‘추격’과 ‘흑건’, 두 곡 모두 멜로디 라인이 계단을 이루며 아주 빠르게 변모하는 곡이기에 내달리면서도, 이 두 질감은 동시에 가까이 다가왔다. 곡은 빠르게 마쳤고, 음악으로 강렬한 첫 인사를 대신한 다음, 토크 시간이다.

 

토크를 통해 그라는 사람을 알아간다. 방금 쇼팽의 음악을 구현해낸 한 명의 모를 사람이 아닌 김기경이라는 사람으로 다가온다. 작곡과 편곡에도 능하고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 출현하였으며, 유튜버와 아프리카 BJ로도 활동하고 있다는. 피아노에서 내려온 때에야 그의 일상적 모습이 우리에게 선사된다. 입술을 앙다물고 진지한 표정으로 건반을 노려보던 연주자에서, 털털한 웃음과 너스레를 풍기는 한 명의 인간이 된다.

 

 


 

 

슈베르트의 ’마왕‘을 마지막 곡으로 선보이곤 그와의 짧은 만남이 끝났다.

 

도입부, 오른손이 반복음으로 간주를 맡고 왼손이 선율을 짓는다. 초 저음 부에서 그 깊은 음의 연쇄는, 마왕의 속삭임 같다. 연주자와의 거리 5m. 저음부의 절규가 한층 두껍게, 훅하고 내게까지 치달았다. 녹음 본에서는 아마, 노이즈 때문에 기피되었을, 거칠고 투박하게 살려낸 연주. 손가락을 쾅쾅 짓누르니 선율이 야수같이 화한다. 그 소리가 참 내게 좋았다.

 

 

 

플루티스트, '조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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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독주는 아주 처음 본다. 평소 유튜브로도 그리 접한 일이 없었다. 첫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랜스키 아리아’ 역시 제목조차 처음 들어본다.

 

 


 

 

대단한 폐활량이다. 현악 및 건반과는 다르게 호흡으로 음을 구현하는 악기인 플롯에서는, 그래서 필연히 연주자의 숨소리가 섞인다. 재빠르고 깊게 숨을 들이마실 때 나는 소리가, 음의 사이 사이에 함께 섞여들어 간다. 그것은 조금 긴급한 소리이지만, 그 후에 내는 소리는 더없이 청아하였다. 플롯의 낮은음에서는 청아하면서도 마른 음색이 난다.

 

 

연주자 조성현의 영상을 발견했다!

 

 

막 곡은 ‘샤미나데 콘체르티노’

 

연세대 음대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다는 연주자는, 이번 기회에 플롯의 특색을 전부 보여주기로 작정을 했나 보다. 한 개의 에피소드를 마치며 내는 길게 꼬리 잇는 저음부와 시종 빠르게 변주하며 음계를 타는 음의 손놀림, 그리고 대단한 폐활량을 터치 듯 뱉어, 높고 크게 터져 쭈욱 이어지는 고음까지. 찌르듯 내지르는 고음에서는 앙칼진 소리가 새롭다.

 

플롯의 묘미는 특유의 음색에 더불어, 역시 빠른 음계 변화에 있지 않을까. 사실 그렇게 말해놓고 보니, 모든 악기가 마찬가지겠구나 싶으면서도, 플롯 특유의 ‘고개를 까딱거리게’ 만드는 계단음들이 생각이 난다. 계단 타듯 빠르게 내려오는 음계에 더불어 까딱까딱 흔들리는 연주자의 고개, 그리고 내 고개.

 

 

 

바이올리니스트, '김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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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서인 바이올린이다. 일단, 토크를 다 듣고 난 후의 인상이란 위의 사진에 크게 위배된다. 매우 털털하고 넉넉한 홍소를 자아내는 분이셨다. 마지막 차례라 그런지 토크 먼저 가지고 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MC 안두현 지휘자와 개인적으로도 많은 교류가 있었던 듯, 유쾌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이번 공연에서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짧은 공연의 마지막을 알리는 곡은, 라벨의 ‘치간느’.

 

바이올린 혼자서 무대를 시작한다. 피아노 반주도 없는 완전한 솔로, 소리의 빈 곳은 응당 많지만, 그것마저 하나의 의도된 ‘소리’로 느껴진다. 그 정도의 카리스마를 느끼는 것일 게다. 아주 긴 독주가 끝나고 피아노 간주가 얹어지기 시작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같은 선율을 연주한다. 확연히 다른 감상, 또각또각 분절되는 음과 끝없이 늘어지듯 이어지는 음이, 기묘하게 어울린다. 감정은 계속해서 고조되다가, 연주자가 땅을 박찬다. 땅을 박차는 구두 굽의 소리. 나무로 된 바닥과 어울려, 좋은 ‘쿵’ 소리를 낸다.

 

선율은 이제, 곡을 모르는 내게도 끝을 알리기 시작하고, 점점 고조되어 간다. 서서 바이올린을 여유롭게 어루만지는 연주자. 고조된 채 내달리는 선율의 박자에 맞게 발소리를 쿵, 선율, 또 쿵, 선율, 쿵, 쿵쿵, 끝.

 

마지막 음을 내는 것으로 활은 현 위를 벗어나, 그 활을 든 팔은 하늘 위로 우아하게 쳐들린다. 그때 마지막 발소리는 쿵 쿵, 두 번 울리며 화려하고 깔끔하게 곡을 마무리하니 곧바로 갈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콘서트는 그렇게, 마지막 두 번의 발소리와 함께 강렬하게 마무리되었다. 더 이상의 마무리 멘트도 없이, 객석을 향한 우아한 인사를 끝으로 어둡던 객석은 환히 밝아졌다. 나오는 길, 발소리가 계속 귀에 맴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구두 굽 소리,

플루티스트의 급한 들숨소리,

피아니스트의 미스터치가 자아내는 새로운 음과

첼리스트의 고조된 표정 속 깊은 날숨.

이 모든 것들이 오래도록 강렬할 듯이 기억에 맴돌고 있었다.

 

관현악의 거대한 웅장함과는 다른, 하나의 악기에 집중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그 홀과 관객들과 한 칸 떨어져 앉은 관객들 사이의 바람과 무대, 이 모든 공간을 하나의 악기만으로 채워낼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감각을 준다.

 

또한 연주의, 연주만을 위한 콘서트가 아닌, 토크가 그 곁에 함께 자리했다는 사실도 기묘한 새로움을 준다. 연주자는 자신의 생애를 건 악기의 앞에서는 침묵한다. 엄숙한 연주의 내내, 이제 그의 손만이 현란하곤 하다. 토크는 자칫 지나칠 연주자의 인간적 면모를 상기시켜 주었다.

 

 

“연주자들이 토크를 어색해해요~(웃음)”

 

 

진행자 안두현 지휘자의 말이다. 그럴 것이 연주자들은 손으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물론 저 말은, ‘일반적으로는 연주자들이 어색해하지만, 오늘 모신 여러분은 왜 이렇게 달변가이시냐’는 놀람의 말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약간의 어색함들이 만들어내는 친근함이 나는 더없이 좋았다. ‘능란한 연주와 소박하고 간결한 말솜씨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예술가와 소박한 사람됨이 함께 다가와 좋았다.

 

그들의 손과 입의 말들, 그리고 몸짓들.

아직도 곡의 마침표를 장식한,

바이올리니스트의 구두 굽 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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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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