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에의 욕구와 인간의 한계

아무리 해도 결국 되는 건 너 자신이라고
글 입력 2020.06.2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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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의 중심은, 제목 그대로 마이클 조던이다. 그가 시카고 불스에서 마지막으로 NBA 우승을 차지한 97-98 시즌을 메인 플롯 삼아서 주변의 캐릭터들과 사연을 비틀어 넣었다. 이런 드라마성이 좀 더 두드러지는 초반은 스포츠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무슨 기업 드라마 같기도 하다. 프로스포츠 팀이 일종의 개인사업자 집합체이며, 코칭스태프는 프로젝트 매니저에 가깝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틀린 표현은 아닐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불스의 GM(General Manager), 한국으로 치면 단장에 해당하는 제리 크라우스의 이야기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모든 갈등과 사단의 시작을 제공한 ‘빌런’처럼 묘사된다. 다만 그가 드림즈의 백승수 단장만큼이나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건 틀림없다. ‘듣보잡 of 듣보잡’이었던 스코티 피펜을 발굴해온 스토리, 텍스 윈터 코치가 고안한 전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감독을 자르면서까지 힘을 실어준 과정만 봐도, 그의 안목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심지어 그는 선수 출신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크라우스의 육성을 듣고, 그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영상으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그에 대해서는 거의 텍스트 자료로만 접해왔을 뿐이다. 이전까지 그에 대해 들어온 이미지는 완고하고 소심하며 사회성 떨어지는 일 중독자였다. 얼마나 워커홀릭이었냐면, 1990년대 초에 그가 낚시를 시작하자 지역 매체들이 “드디어 크라우스에게 취미가 생겼다!”고 보도했을 정도다. 그런데 나중에 그가 필 잭슨 감독의 후임으로 데려오고 싶어 했던 팀 플로이드와 몰래 만났을 때 같이 낚시를 했다는 증언을 보면, 그것마저도 비즈니스 도구였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상으로 본 크라우스는, 인신공격성 발언을 감수하고 말하자면 생각보다 작고 뚱뚱하고 못생긴 남자였다. 또 맨날 군것질거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 옷에 부스러기를 묻히고 다녔다고 한다. 즉, 미국적인 남성상, 특히 그가 자라온 시대의 이상적인 마초 타입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싸움에서 상대의 아픈 곳을 물어뜯는데 누구보다 능했던 조던은 크라우스와 사이가 틀어진 뒤 이런 부분을 악랄하게 조롱하곤 했다. 크라우스가 버스에 타면 소 울음소리를 내고, 약을 먹으면 “키 안 크려고 먹는 건가요?”라고 공개적으로 놀리는 식이었다. 왠지 그가 십대 때부터 이런 비슷한 괴롭힘을 당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틴에이저 영화에서 꼭 나오는 등장인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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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에서 크라우스가 ‘리틀 맨 콤플렉스’가 있었고, 그래서 공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아주 요긴한 힌트를 주는 대목이다. 그가 불스를 자신의 ‘작품’으로 생각했고, 선수와 감독을 단장의 소유물처럼 여겼으며, 스스로의 결과물에 대한 성취감이 과해서 선을 넘은 이유가 그 한마디로 정리된다. 이런 건 농구 아니라 어디에서도 드문 삶의 형태가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불스의 구단주, 크라우스의 고용주인 제리 라인스도프 회장도 달리 보게 된다. 겉으로는 온화한 학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인색하고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고 노회한 비즈니스맨. 크라우스와 라인스도프는 ‘제리-제리 콤비’라고 불릴 만큼 잘 맞는 협력적 파트너였지만, 라인스도프 입장에서는 크라우스를 신나게 이용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욕은 크라우스가 다 먹게 두고, 자기는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이득을 남긴 셈이니까.

 

크라우스뿐이 아니다.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를 단순히 ‘조던신과 불스 왕조의 위대한 여정’으로 볼 게 아니라, ‘인정’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보면 새로운 해석의 맥락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정도와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자신과 타인의 윤곽을 뚜렷이 하고 싶어서, 즉 인정받고 싶어서 필사적이다. 그 인정의 대상은 타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인정을 위해 인생 전부를 쓰기도 한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체로 ‘인정에의 욕구’로 가득 차 있다.

 

데니스 로드맨은 불스에 온 뒤 그 괴랄한 기행들이 자신을 이루는 근간이라는 걸 조던과 잭슨에게 인정받고 농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의 전 소속팀이었던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리더 데이비드 로빈슨은 독실한 크리스찬이었고, 로드맨을 계속 교화하려고 시도했다. “남들 말대로 살지 마라”는 전 연인 마돈나의 말이 그에게 깨달음을 줬으며, 피펜이 없을 때 자신이 조던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동기부여가 됐다는 대목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하다.(물론 조던 입장에서 보면 딱히 로드맨의 이해자라기보다는 이기기만 하면 눈 세 개 달린 도깨비라도 상관없다는 ‘청탁병탄’에 가까웠을지 몰라도)

 

피펜은 커리어 내내 NBA 최고 수준의 선수였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금전적 인정을 받지 못하고 거의 ‘열정페이’ 노동을 했다. 게다가 줄곧 조던이라는 거대한 그림자 아래 있었던 그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불만으로 들끓었다. 실제로 그는 “조던 없이 우승할 수 있을까?” 하는 미디어와 팬들의 시선에 “대체 내가 당신들에게 뭘 얼마나 더 증명해줘야 하는가” 하고 스트레스를 표출하곤 했다. 좀 더 과감하게 해석하자면, 보잘것없는 재능으로 살벌한 NBA에서 자신을 갈아 넣어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고백한 스티브 커, 조던과 피펜에게 ‘다구리’에 가까운 텃세를 당하고도 결국 자기 힘으로 인정받은 토니 쿠코치 등에게도 모두 ‘인정에의 욕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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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던. 과거 라인스도프의 구단주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상대를 이기려고 뛴 게 아니라 ‘상대를 모두 죽여 없애고 혼자가 되고자’ 뛴 사람이다. 그는 게임에서 이기려고 한 게 아니라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뛰었다. 그는 자신을 뛰어난 농구선수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지는 것을 거부한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기 위해 그는 동료들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모욕도 서슴지 않을 만큼 몰아쳤다. 조던의 50세 생일 즈음에 ESPN에 공개됐던 ‘MJ는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칼럼을 보면, 그가 그런 성공을 거머쥐기 위해 한 인간으로서 어떤 걸 포기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유아적인 투쟁심이 그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가 왜 자기가 이룩해놓은 삶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지, 좀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스스로를 몰아친 모멘텀이 삶에 실상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폴란드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이다 헨델의 노년을 담은 <이다 헨델, 삶의 변주곡>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아흔이 다 된 그녀가 연습을 무리하게 해서 손이 망가진 어린 음대생에게 해준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아무리 해봤자 결국 되는 건 너 자신이란다.” 인간에게는 한계라는 게 있고, 있어도 되고, 오히려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평범한 진리를, 마이클 조던처럼 평범한 인간과는 극단적으로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을 보며 곱씹게 된다는 게,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최승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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