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슨 일이 일어나도 너는 공부를 멈추지 마. - 나의 눈부신 친구

글 입력 2020.06.2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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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 어머니의 이름은 라파엘라 체룰로다. 하지만 나만 빼고 모두들 그녀를 '리나'라고 불렀다. 나는 그녀를 '라파엘라'라고도 '리나'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지난 60년 동안 내게 그녀는 '릴라'였다.
 

 

책은 오랜 친구의 실종 소식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레누'는 그 전화로 릴라와 자신의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그녀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기에, 레누는 컴퓨터를 켜고 60년에 걸친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전 세계에 '페란테 열병'을 앓게 했던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대표작 '나폴리 4부작'의 1권이다. 나폴리 시골 마을에서 자란 릴라와 레누, 두 여자의 삶만으로 1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서사를 창조하는 페란테의 글솜씨는 감탄스럽기만 하다. 그는 세계적 명성에도 끄덕 없이 '책은 저자의 이름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해 여전히 가장 유명한 '얼굴 없는 작가'로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성별, 나이, 직업 모든 게 베일에 감춰져 있다. 작가의 사적 삶이 비밀에 부쳐지면서 <나의 눈부신 친구>는 내용 자체만으로 눈부시게 빛난다.

 

릴라와 레누는 낙후한 마을에서 함께 인형을 가지고 놀기 시작하며 친해졌다. 릴라는 반항적이고, 못된 아이다. 고집이 세고 눈부시게 영리하다. 레누의 똑똑함이 성실한 공부를 바탕으로 쌓인 것이라면, 릴라의 똑똑함은 타고난 천재성이다. 학교의 올리비에르 선생님은 그 둘을 자랑스러워 하며 최고의 성적을 유지하도록 독려하고 지켜본다. 초등학교까지 레누는 릴라의 영리함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면서도 그녀와 비등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어린 두 여자아이는 서로 책을 읽고, 꿈을 꾸고, 늦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릴라가 중등 학교에 진입하지 못하면서 두 사람의 삶은 갈라지기 시작한다. 하나였던 길이 어느순간 둘로 나뉘기 시작해 돌아보면 아주 멀리 떨어져버린 것처럼. 레누와 릴라 모두 변변찮은 가정이지만, 릴라의 부모는 주변의 권유에도 꿈쩍않고 릴라의 학업을 중단시킨다. 그녀만큼 영리한 사람은 마을에서 찾을 수 없었는 데도 말이다. 레누의 가족 역시 여자애를 교육시킨다는 것에 언짢아했지만 그녀는 기회를 얻었다. 올리비에로 선생님의 고집에 꺾인 부모님이 그녀를 중등 학교에 보내고, 고등 학교에도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이지만, 관계는 달라졌다. 레누를 이해하는 건 릴라밖에 없고, 릴라를 이해하는 것도 레누밖에 없다. 하지만 더이상 같은 선에서 지적 경쟁을 벌일 수 없는 상황에서 릴라의 지성은 자꾸만 구두라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레누의 지성은 경쟁과 지식을 통해 더 똑똑하고 깊어진다. 자신들의 탓은 아니지만 자꾸 벌어지는 간극과, 사춘기의 질풍노도한 감정선이 겹쳐 레누와 릴라는 서로를 질투하고, 시기하고, 못되게 굴면서도, 걱정하고, 곁에 있고,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책은 레누의 서술 위주로 흘러가는데, 레누 시선에서 바라본 릴라는 영리한 악동같으면서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우아함과 분위기가 있는 신비로운 아이다. 그렇기에 이야기는 계속 그녀처럼 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레누의 기나긴 짝사랑처럼 느껴진다. 사랑하면서도 자신에게 그만큼 되돌려주지 않는 못된 릴라의 매정함에 받는 고통이 페란테의 필력으로 생생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 사실 릴라에게도 레누가 무척 중요하고 소중한 상대라는 걸 알 수 있다. 결혼식을 앞둔 릴라는 나폴리에서 아내로 살아가는 자신의 역할에 순응하려 한다. 레누는 그녀가 아름답고, 아주 멀리 떠나려 하는 걸 그저 보내줘야 하기에 고통스럽다. 그토록 열심히 공부를 했건만, 공부는 삶을 살아가는 데 변변찮은 능력인 것 같다. 인생의 의미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에 달려있는 것만 같다. 그런 레누에게 결혼 전날 릴라는 말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넌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2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해. 그러면 끝이지."

"아니 절대로 멈추지 마. 필요한 돈은 내가 줄게. 넌 항상 공부해야 해."

"고마워. 하지만 언젠가는 학교 공부를 마칠 수밖에 없어."

"넌 아니야.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여성에게 공부는 무엇일까. 1950년대를 살아야 했던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나의 눈부신 친구>는 물 흐르듯이 읽히고 문체는 담담하지만, 저 대목은 오래 나를 아프게 했다.작가는 공부는 즐거움과 흥미의 행위가 아니라 당시 가난한 가정의 여성이 삶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는 걸 레누와 릴라의 두 가지 삶을 통해 보여준다. 언제나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 중요한 건 그 세상을 향해 날아갈 날개가 있느냐이다. 가진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릴라와 레누에게 날개 같은 건 없었다. 릴라는 날아갈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아무도 날개를 달아주지 않았고, 레누는 간신히 기회를 잡았다. 누구보다 공부를 잘 하면 휘청거리면서도 날아서 이 곳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페란테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70년대 페미니즘 테제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힌 적 있다. 그만큼 릴라와 레누의 이야기에는 이탈리아 내의 마피아, 가부장제와 빈곤, 계급과 폭력의 문제가 첨예하게 얽혀 있다. 릴라와 레누의 감정의 골이 단지 두 사람만의 문제 때문에 생긴 것일까. 오히려 그 외의 문제들, 폭력적인 가족과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비참함, 알면서도 도와줄 방법이 없는 무력감과 미숙함. 자존심과 연민과 사랑의 복잡한 굴레가 얽힌 우정에 기대어, 릴라와 레누는 각자의 선택을 이어나간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릴라의 결혼으로 끝을 맺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다. 60년의 세월에서 누가 더 멀리 날아갈까. 아니면 사실 날개같은 건 있지도 않고, 삶의 중력은 우리가 땅에서 발을 떼게 두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될까. 나는 책을 덮으며 릴라의 환청이 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레누, 너는 나 자신이니까. 더 멀리 날아가.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선택이 무엇이었는지 더 잘 알게 될 거야.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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