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는 나이”같은 건 없어요.

영화 <우리들>
글 입력 2020.06.2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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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나 중심이 있고 그 주변이 있다. 중심에 의해 주변부는 이끌려가고 휩쓸리며 상처를 받는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들을 겪는다. 어른의 세계에서 당연한 이 상황이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자행되는 것에 우리는 책임이 없는 걸까. 그렇다면 영화 <우리들>의 아이들은 어떻게 타인을 소외시키는가, 또 그러면서 어떻게 자신이 소외되는가. 맑은 아이들의 순수한 폭력은 우리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들 포스터.jpg

 

 

주인공 선(최수인 분)은 유복하지 못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따돌림을 당하는 신세로 그려진다.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공장의 노동자로 일하는 아버지를 둔 선의 경제적 ‘유별남’은 같은 반 친구들에게 쉽게 타자화된다. 이렇게 학급 안에서 주변화된 선의 세계에 햇살처럼 등장하는 것은 전학생, 즉 이주민으로 간주할 수 있는 지아(설혜인 분)다. 주변의 잣대와 편견이 침투하지 않았을 때 이들의 우정은 순수하다. 방학이라는 시간적 배경, 둘만 걷는 골목길, 둘만 있는 학교의 정글 짐에서 진심으로 서로를 대한다.

 

각자의 세계에서 이질적인 것들을 느낄 때 선과 지아는 서로에게 날 선 반응을 보인다. 지아의 부유함이, 선과 어머니의 살가운 사이가 서로를 찌른다. 여름 방학 동안 서로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을 때 누구보다 가까웠던 아이들은 개학을 맞아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이미 굳어진 시선에 맞닥뜨려지자 갈라지게 된다. 아이들을 주제로 한 많은 영화들 중 <우리들>이 유독 그 빛을 발하는 이유는 철저히 아이들의 시선으로 화면을 잡아내고 있다는 것에 있다. 철이 없고 미성숙한 아이들은 그래서 더 잔인하고 무분별한 짓을 저지른다. 무더운 여름을 배경으로 비춰지는 선의 모습에서 햇살과 푸르른 생명력은 보이지 않는다. 웅성거림으로 가득한 교실에서 홀로 앉아 침전하는 선의 숨 막힘과 고독은 화면에서 그대로 전해진다. 혼자인 것 자체가 상처인 나이의 아이들은 그렇게 서로를 혼자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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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나한테 왜 그래?”

“그럼 넌 나한테 왜 그래?”

“네가 먼저 그랬잖아.”

“내가 뭘 어쨌는데.”

 

- 영화 <우리들>

 

 

어른들과 아이들의 세계는 얼핏 보기에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순수한 우정으로 불릴만한 관계들은 소수에 국한되고 세속적 필요에 의해 맺어진 관계가 대부분인 어른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도 나타난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성장하면서 가지게 된 편견과 좁은 시선을 아이들에게 대물림한다. 견고한 공동체에 속하는 것만이 안정적으로, 별일 없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어른들의 믿음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모든 것이 서툰 아이들은 주변의 어른들을 모방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다. 그들의 분별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겨를도 없이.

 

 

우리들.jpg

 

 

“야 이윤, 너 바보야? 그러고 같이 놀면 어떡해?”

“그럼 어떡해?”

“다시 때렸어야지”

“또? 그럼 언제 놀아?”

"뭐?"

“연우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우가 때리고… 그럼 언제 놀아? 난 그냥 놀고 싶은데.”

 

- 영화 <우리들>

 

 

마지막 시퀀스, 피구를 하는 체육시간에서 멀어질 대로 멀어진 사이가 된 지아와 선은 각자 혼자가 되어 서로 반대편에서 홀로 헤매인다. 동생의 대답에서 무언가 깨달은 선은 자신이 당했던 부당한 오해를 받는 지아를 두둔한다. 마침내 같은 줄에 서 서로를 마주 보는 모습에서 영화는 말한다. 차별과 오해, 폭력에 대항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만 서로를 이해하고 진심을 내보이는 것이라고,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아이들과 우리는 과연 다른가, 우리 모두 그저 같이 놀고 싶을 뿐 아닌가, 그게 다가 아닌가, 하고. “어른들은 다 왜 그러냐"라는 아이들의 물음에, 그렇지 않다고, 어른들은 용기를 내어 답해야 하지 않을까.

 

 

[유이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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