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널브러진 마음 위를 구르며 - 팜 Farm [공연]

글 입력 2020.06.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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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사진.jpg

 
 
사진이나 포스터 등의 이미지로 마주했던 연극 팜(Farm)의 첫인상은, 생기와 에너지였다. 원색의 다채로움 가득한 무대, 활짝 웃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배우들까지 언뜻 보면 어린이를 위한 연극 같기도 했고 당장이라도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올 듯한 뮤지컬 같기도 했다. 실제로 객석에서 무대 곳곳을 둘러볼 때까지도 사진으로부터 받았던 느낌과 비슷한 이미지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
 
마침 공연을 관람하던 날엔 비가 내렸다. 해가 진 혜화의 거리를 검은색의 우산과 함께 철벅거리며 걸었다. 거리엔 사람이 적었고, 걷는 중에도 눈이 자주 감겨서 공연을 어떻게 볼지 걱정을 하느라 조금은 울적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저조한 컨디션은 나아지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공연 관람 전보다도 더한 침묵을 지키며 걸었다. 한편으로는 연극 팜(Farm)을 관람하기에 좋은 날이었다고 생각했다.
 
우산의 물기를 털고 돌돌 말아 단추를 채우며 들어갔더니, 공연장 내 거리 두기를 하느라 한 칸씩 건너뛴 좌석마다 관객을 대신해 앉아있는 귀여운 인형들을 만났다.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아기자기한 인형들은 무대 위에도 있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인형이 무대 구석에 잔뜩 쌓여있었고, 반대편엔 색색의 풍선이 떠 있었다.
 
사진으로 보았던 풍경과 다를 건 없었는데, 어딘가 쓸쓸했고 삭막한 풍경이었다. 배우들의 몸의 언어와 연기가 극의 주요소였던 만큼 무대는 단촐했고 덕분인지 구석에서 홀로 빛나는 가로등과 거꾸로 뒤집혀 돌아가는 시계는 원색의 경쾌함에 약간의 섬뜩함을 더했다. 그렇게 암전됐고 공연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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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으로의 대각선 방향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일명 ‘몸으로 말하는 공연’이 시작됐다.
 
실험 ‘팜(Farm)’ 즉 유전자 재조합의 대상인 주인공 오렌지가 구겨진 곳 없는 표정으로 달려오는 몸짓을 취했다. 그리고 영화의 감동적인 엔딩처럼 슬로우모션으로 오렌지가 열심히 달려오는 동안, 남은 인물들은 오렌지를 둘러싸고서 알 수 없는 동작들을 계속해서 취했다. 그를 설명할 길은 ‘빈틈없는 몸짓’이라는 단어가 최선인 듯했다.
 
극 내내 인물들의 몸짓은 끊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빈틈이 없었다. 그로부터의 숨막힘을 이어가듯 일반적인 말하기 속도보다도 빠른 속도로 대사를 읽었다. 문장과 단어 사이사이마다 있어야 할 쉼표와 숨 고르기가 사라졌다. 그들의 몸짓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기성 있는 몸짓도 아니었고, 연극 팜(Farm)의 몸짓은 춤이나 바디랭귀지보다도 더 정확한 이름이 필요했다. 분절된 몸의 언어의 이름.
 


팜 공연 사진(10).jpg

 
 
유독 오렌지를 중심으로 둘러싼 원 모양의 대형이 자주 등장했다. 인물 간의 거리는 대화보다 독백에 가까울 만큼 멀었고, 거리는 좁혀지지 않은 채 원 모양이 유지되며 오렌지를 둘러싼 인물들이 빙빙 돌거나 움직였다. 그 사이에서 오렌지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심지어 오렌지의 부모 간의 대화 속에서 오렌지는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방식으로 너덜너덜해질 뿐이었다. 차라리 그대로 굴러간 한쪽으로부터 따뜻한 포옹을 경험할 수 있었더라면 덜 아팠을걸, 오렌지는 중심에서 두 명의 인물 누구와도 가까워지지 못한 채 앞뒤로 구를 뿐이었다. 오렌지를 보고 공연 속 몸의 언어에 붙일 이름을 생각해냈다. 녹슬어 삐걱거리는 관계와 마음의 언어.
 
공연 전까지만 해도 무대 한쪽에 쌓여 자리를 지키던 많은 인형은 인물들에 의해 하나둘씩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공연이 끝날 즈음엔 이리저리 구르고 찢긴 오렌지처럼 무대 곳곳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아픔의 몸짓을 일삼던 오렌지처럼, 바닥을 구르던 인형들도 웃는 얼굴로 바닥을 굴렀다. 표정과 몸짓 간의 괴리감은, 인형 탓이었는지 섬뜩하기도 했는데 대체로는 외로웠다.


‘손 따로 심장 따로인 것 같아’

 

 
관절이 분리되어 몸의 곳곳이 제각각 움직이듯 부자연스럽고 한편으로는 기괴하기까지 한 몸짓은 유전자 재조합으로 태어난 오렌지가 홀로 겪어야 할 고통과 아픔을 보여주었다.
 
오렌지가 겪었을 아픔은 비단 육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혼자라고 생각할 때 외로워지고, 나의 진지한 감정이 타인으로부터 유난으로 여겨질 땐 둘이어도 혼자가 된다. 오렌지는 온전히 이해받지 못할 고통과 아픔을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못했다. 그 감정에 가닿으려는 노력조차 없었던 타인들 가운데서 실험 ‘팜(Farm)’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며 구를 뿐이었다.
 
오렌지가 차라리 울기를 바랐다. 시종일관 웃는 얼굴과 외로움의 몸짓의 동시성은, 우는 얼굴보다도 더 아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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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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