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기소개서에는 무엇을 적어야 하나요? [사람]

소중한 경험들을 속단하지 않을 것
글 입력 2020.06.18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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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를 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대학 생활을 돌이켜 보게 된다. 아니 확실하게 말하면 성찰하게 된다. 왜 나는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했을까,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을까, 하면서 조금이라도 나태했던 나의 과거를 계속해서 탓하게 된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깊이 후회했던 적은 없다. 적어도 그 당시의 나는 행복했기 때문이다. 대학생 활의 로망이던 공연 동아리에서 일을 해보고, 어렴풋이 재밌겠다고 생각했던 헌책방 봉사활동도 했다. 친구가 같이 하자고 해서 얼떨결에 신청한 평창 동계올림픽/패럴림픽 봉사활동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겨줬다.

 

정말 단순히 같이 있던 사람들이 좋아서 원래 한 학기 예정이었던 교환학생을 일 년으로 연장하기도 했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과 우연히 생긴 기회들을 좇아서 살다 보니 대학 생활의 끝이 눈앞에 다가왔다. 물론 게을렀던 순간들을 있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적은 없었다. 아무 기준 없이 나의 지난 5년을 돌이켜 보면, 대학생으로서 해볼 수 있는 경험은 다 해본 정말 꽉 찬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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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의지와 상관없이 해야만 해서 했던 일들은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물론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참고 해내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하기 싫다고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 떠오르는 첫 번째 기억 더미에 존재하지 않고 인상적인 결과를 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처음 자기소개서를 쓰면 당연히 나에게 인상 깊었던 경험, 오래 기억에 남았던 일들을 쓰게 된다. 그리고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글이 완성된다.

 

아직까지도 올바른 자기소개서 글쓰기가 뭔지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앞서 말한 것처럼 쓰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이제는 거짓말을 쓰지 않더라도 나의 영혼이 빠진 제3자의 목소리에서 자기소개서를 써버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자소서 중에서 내 글이 돋보이게 하려면 당연히 기승전결이 있고 일목요연하게 작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이 경험에서 정말 얻은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와 "감정"인데 기계적인 "성취물"을 더 내세우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회는 성취의 경쟁이기 때문에 나는 또 새로운 결과물을 찾아서 움직이게 된다. 정량적인 근거 없이는 아무것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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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 일생에 대한 전기를 대신 써내고 싶을 때도 있다. 내가 이렇게 다양한 것들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열정적이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떼를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나와 맞는 기업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현실에는 내가 주저앉아 버린 동안 어떤 상황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또 스펙을 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마음에 들지 않다고 투정만 부리는 것은 패자의 넋두리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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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적성을 찾고 직무적합성에 맞게 대학생활을 짜야 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고 싶어서 해보는 일들에는 왠지 모를 죄책감이 따라온다.

 

이것저것 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직무적합성이라는 대표적인 평가 항목은 잔인하게만 들렸다. 모든 대학생 또는 취업 준비생들에게 한 방향으로만 달리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코로나19로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그동안 하던 일을 갑자기 못하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 일각에서는 디지털화로 변화할 사회 환경이 좀 더 일찍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눈앞의 미래도 보장할 수 없게 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앞만 보고 달리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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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에서 타일러가 미래를 대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은 상자를 만들어 두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즉,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는 경험 상자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놓으라는 것이다. 나의 취미, 취향 또는 기억들이 불확실한 미래의 나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Specialist와 Generalist 중에 어떤 것이 맞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노후가 길어지는 만큼 많은 경험들이 해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과거의 경험과 추억을 시간 낭비라고 속단해 버리는 일은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무엇이 옳고 그르든 간에, 당장의 사회 흐름이 있다면 그것에 맞추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다. 웬만한 능력과 경험으로는 자신을 어필하기 힘든 이 취업난 속에서 우리는 함께 서로를 응원하며 가끔은 이끌어주고 언젠가는 따라가기도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지금 어느 위치에 있든지, 모두가 당장의 행복도 잊어버리지 말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도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자기소개서의 텅 빈 공간을 어떻게든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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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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