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 앞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위할 수 있게 된 오렌지의 삶 - 연극 '팜 Farm' [공연]

남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의 의미
글 입력 2020.06.18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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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과같은 장기를 품고 살아가는 팜(f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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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는 팜이다. 팜이란 유전자 재조합으로 태어나 다른 어떤 이들의 장기를 이식해도 그에 맞게 세포를 배양하여 부작용 없이 자랄 수 있는 사람으로, 오렌지는 그 중에서도 특출난 팜에 속했다. 과학자인 아버지가 직접 유전자를 배양하여 탄생한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하게도 여느 아이들과 같은 평범한 삶은 꿈도 꿔보지 못한다.

 

그의 인생은 팜(farm)이라는 명칭에 걸맞다. 농장을 의미하는 팜은 봄 여름 동안 벼, 보리, 감자 등과 같은 농작물들을 자신의 흙 안에 품고 있다가 가을의 추수 이후 겨우내 잠시 회복의 시간을 가진 후 또다시 농작물을 품기를 반복한다. 오렌지도 그렇다. 어떠한 사정으로든 자신에게 맡겨진 다른 이들의 장기를 몸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

 

이는 오렌지에게 자신의 것이어야 하는 몸의 소유권을 빼앗아 갔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 또한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오렌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의 팔은 갑자기 책상을 짚으려 하고, 다리는 원치 않은 곳으로 향하려 한다. 뇌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 다른 이들의 장기를 심은 오렌지가 과연 그의 삶의 주인공일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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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다른 이들을 위해 살아야 하는 삶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 속도가 빨라 어린 나이에 성인과 같은 모습을 한 오렌지는 겉모습 뿐 아니라 속마음도 매우 성숙하다. 그러나 그렇게 항상 침착하던 오렌지도 암이라는 병을 얻고,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은 조금도 해주지 않고 이기적으로 구는 사람들로 인해 폭발하고 만다.

 

왜 그렇게들 이기적이냐고, 왜 자신들만 생각하냐며 악을 쓰는 오렌지의 모습은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나는 항상 나를 위한 삶을 살았다. 때로는 원하지 않은 일을 해야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조차 더 나은 나를 위해 나아가기 위한 과정 중 하나였다. 그래서 온전히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삶은 상상도 못해봤다. 나는 오렌지의 외침을 듣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 또한 이기적인 사람이었음을.

 

누군가의 불행을, 불편함을, 외로움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나는 이기적이다. 내가 가진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것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헤아려보지 못했다. 오렌지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살아생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순간이 단 한번도 없었다. 오렌지 주변의 사람들 중 한명이라도 큰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오렌지의 삶을 헤아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오렌지 본연의 모습을 봐주었다면 그는 조금쯤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검은 속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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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자주 등장하는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주로 마트 점장과 함께 나온다. 그는 오렌지 어머니의 새 남편이 되고자 하는 마트 점장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고, 그가 좌절하거나 극도로 흥분 할 때 진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 덕분에 마트 점장은 오렌지의 아버지를 만나서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고, 그의 최대 단점이자 문제점인 성욕을 잠시나마 억누를 수 있었다.

 

이 검은 사내는 극의 마지막에 오렌지에게 처음으로 쾌락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는 이 검은 사내가 인간의 본성이자 자기 방어적 기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작아지고 위축될 때, 혹은 당혹스러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때, 이 검은 사내는 우리를 안정시켜주고, 나 자신을 위할 수 있는 방안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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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이 검은 사내가 극의 마지막에 되어서야 오렌지에게 찾아온 의미가 크다. 오렌지는 여태까지 한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그의 삶은 온통 남을 위해 존재 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죽음 앞에 이르른 순간에서 조차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검은 사내는 처음으로 자신을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 ‘쾌락’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죽음의 순간에서야 자신의 검은 속내를 마주할 수 있게 된 오렌지의 삶은 헌신과 희생으로만 가득했다. 그리하여 결국 죽음의 순간을 통해서만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삶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자신의 속내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살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끔은 나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수 있는 자신의 검은 속내를 들여다보는 일도 중요하다.

 

 

 

어지러운 오렌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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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보아온 극들 중에서 단연 가장 독특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연극은 내게 가히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장면들을 통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무대 한편을 가득 채운 각양각색의 인형들, 무대 뒤쪽에 위치한 채, 여러 언어들을 번역해주고 있는 스크린, 배우들의 비일상적인 몸짓들까지.

 

처음에는 극을 이해할 수 없어 당혹스러웠다. 대체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할지, 어디를 보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된 것은 오렌지의 삶 또한 이러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오렌지는 태어나면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어지러운 삶을 살아왔다. 다른 아이들보다 너무도 다른 속도로 자라나는 자신의 몸, 다른 장기들로 인해 마음대로 움직이는 않는 몸, 자신에게 이유없이 돌아오는 질책들까지.

 

오렌지에게는 모든 것이 받아들이기 힘들고 어려운 일들 투성이였을 것이다. 이후에는 남들의 평범한 일상이 그에게는 낯선 것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어설프고 분절된 움직임은 그의 이러한 상태를 잘 반영해준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워 결국은 평범한 삶을 포기해버릴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삶은 이러한 비일상적인 몸짓들을 받아들이고, 결국은 거기에 동화되어 버린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다소 당혹스럽고 어지러운 연출들은 오렌지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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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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