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선하고 독특한 무대 언어 - 연극 '팜(Farm)'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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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재조합으로 태어난 오렌지는 평생 남을 위한 땅(Farm) 역할을 한다.
공연을 보기 전엔 막연히 완벽한 존재인 오렌지가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공연에서 만난 오렌지의 삶은 생각보다 더 안타까웠다. 자신의 몸에 여러 존재들의 장기를 붙였다 떼어내며,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움직이기도 하는, 그런 삶이었다.
다른 사람의 신체를 접합해도 부작용을 잘 일으키지 않는 오렌지는 팜 중에서도 훌륭한 팜이다. 그는 신체적으로 건강한 걸 넘어서서 다른 이들보다 3배 정도 성장도 빠르다. 공연의 초반에 오렌지는 자기가 신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한 순간도 자기 자신일 수 없는 삶... 오렌지는 고독해보인다. 이 극의 주인공은 오렌지가 아닌 것만 같다. 정신 없이 흘러가는 주변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오렌지는 혼자다.
단 한 순간이라도 자기 자신이고 싶었던 아이
오렌지는 말한다. 단 한 순간이라도 자기 자신이고 싶다고. 오렌지는 성욕도 없고, 자신만의 바람도 없다. 있다 해도 그것들을 이루면서 살기 쉽지 않은 존재일 것이다.
극 중에서 오렌지는 감정 표현도 잘 하지 않는다. 그저 초연한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다.
오렌지는 욕망 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도 확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이 마치 실험체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주변인들은 오렌지의 입장에서 오렌지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건 얼마나 큰 고독일까. 사실 오렌지는 그저 아이일 뿐인데.
신선하고 충격적인 연극
살면서 이런 극은 처음 본다. 끊임 없이 무언가 행동하는 배우들, 정리되지 않은 장면의 배열, 엽기적인 대사들. 그 외 수많은 낯선 요소들이 잔뜩 들어가 있는 연극.
연극을 '관람'한다기보다는 그저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무슨 내용이지? 저건 무슨 행동이지?
하나하나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는데,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저 두 시간 동안 이 연극이 주는 신선한 충격을 한껏 받아들였다.
화려하면서도 조잡한 의상들, 스크린에 띄워지는 영어 자막, 그리고 배우들의 움직임을 모두 보기 위해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눈이 움직이는 만큼이나 머릿속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다.
굉장히 신선하고, 어딘가 충격적인 연극. 그게 내가 '팜(Farm)'을 보며 얻은 인상이다.
여러 무대 언어의 혼재
배우들은 한국어로 말을 한다. 스크린에는 영어와 일본어 자막이 띄워진다. 그리고 배우들은 끊임없는 움직임을 통해 무언가를 전한다. 가끔은 일본어 노래가 나온다.
그것들은 번역을 위한 자막, 움직임을 위한 움직임이 아닌 느낌이었다. 그 자체로 하나의 무대 언어로서 기능하며 주제와 메세지에 대한 의미를 담은 것 같았다.
일상의 행동을 분절하여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움직임. 그 움직임은 세밀하고, 부산스럽고, 차곡차곡 쌓인다. 배우들은 정말 말 그대로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것이 대사의 전달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점이 신기했다.
이러한 비일상적인 무대 언어는 '팜(Farm)'만의 특이성을 확보하도록 해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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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인 연극을 보고 싶다.'라고 늘 생각했었는데, 막상 정말 실험적인 연극을 보고 나니 새로우면서도 복잡한 감정이 든다.
분명 내가 보던 연극들과는 다른, 그래서 특별했던 연극. 아니, 이걸 연극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치 새로운 하나의 공연 장르인 것 같았다.
그래도 수많은 감정 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이토록 새로운 공연을 만나서 굉장히 흥미로웠다는 감정이다.
실험적인 공연들을 더 많이 보고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뜻깊었던 경험이다.
[송진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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