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을 잃은 오후 - 칼릴 지브란, 예언자 5 [문학]

7장, 일에 대하여 / 8장,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글 입력 2020.06.15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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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잃은 오후이다.

 

날이 더워져서일까, 최근 잠을 설쳐서일까. 이 안에 글로 화할 아무것도 없다. 내게 글은 언제나 아우성. 글 이전에는 언제나 마음 안에 어떤 소재가 먼저 있어야 했다. 그것은 영감이라 불리기도 하다. 영감의 기원은 우리의 세계 도처에 참 제 각의 얼굴로 있겠지마는, 나의 것으로 말해보자면 주로 대개가 `독`이다. 고독과 두렴과 자괴와 고통과… 채 언급 못 한 제 인간의 문제인 번뇌.

 

그래, 이렇게 지치는 감각과 슬픔과 괴로움 일체에 오래도록 표류해 있었다. 그것은 생각건대 우리 모두의 사정. 오래 처해 있다가 보면 드디어, 그 기원을 찾게끔 되고, 이 모든 동물의 슬픔, 그 기원일 육신과 본능에 대한 제 존재의 탐구로 사고하는 나를 밀어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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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저 무엇으로 한 인간은 이렇듯, 경미한 고통 속을 오래도록 머물게 되는지에 대해. 그것이 다만 내게는, 하나의 글로 또한 되어서 데로록 굴러 나오다. 독이 먼저 있고, 오랜 번뇌가 먼저 있으며, 드디어 나태한 정신이 늦은 아침을 깨면 장차 이 안을 스친 질문과 대답이 옷을 입고는 데로록 굴러,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그러나 여전히, 분명 경미한 고통. 말해보자면 광장에서 만인을 앞에 두고 떳떳이, 여기 나의 고통이 있노라고 말해보기에는 부족한 것. 그러나 그 고통 속을 단단히 안기어 잠기어, 매일의 떠오르는 태양과 지는 달의 시간 속에서 잊혀지다가 상기되다가를 반복하는 통에서는 영 자유롭고 싶은 우리의 사정이다.

 

즉, 숭고하거나 치열하거나 극심한 것으로서의 고통이 아닌, 우리, 인간의 고통. 그것은 분명 저 `유명한` 고통들, 혹 선전되고 선전될 만한 것으로서의 고통에는 미치지 못하는, 그러나 보다 더 넓고, 보다 더 만인의 것인 우리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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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얼굴에 여른 그림자 하나 지고 있지 않은 이를 본 일이 적다. 이러한 `만인의 사정`에서 완전히 표백된, 자유인의 사실 된 표정 지음을 나는 발견한 일이 없다. 이것은 고로 숙명이라고, 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벗어낼 수 없어 마치 피부와 같이 달라붙어 있는 숙명을 바라보는 제 손아귀의 몸짓과 그 눈빛만이 각 다를 따름이었다.

 

피부에 달라붙어 있는 타르 같은 검은 가죽, 얼굴에 여른 그림자 하나 없는 이를 만난 일이 나는 적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또한 볼 줄을 알아, 그래 그것을 보고 만지고 느끼고 슬퍼하는 동시에, 장차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생각하는 동물이었기에. 각자 그 끈적하게 검은 손바닥 거죽을 이리저리 돌리며, 바라보고 골몰하는 눈빛만이 다 달랐다. 그 검은 거죽 손바닥 위에 얼굴을 파묻어 흐느끼면, 우리의 얼굴에는 여른 그림자와 이지러진 각자의 가면 하나가 짜인다.

 

누군가의 슬픔은 축제로 화하고, 누군가는 밤보다 어두운 곳을 기어이 접어들어 가더라. 고요한 일상 속을 더욱 고요한 곳으로 접어 굽이 들어가는 이가 나이고, 그것을 하나의 사실로서 마음의 신당에 받아들이며 눈 감는 이가 있었으며, 혹은 영원히 빛나는 품에 안기어 두 손을 모으는 이도 있었고, 생과 삶과 육체에 대한 의지로 어두운 안개에다가 불을 붙여내고자는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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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대기, 혹은 수증기에다가 불을 붙이고자는 이들도 있었다. 사실 가장 많은 이들이 이와 같다. 그들은 싸우는 이, 투쟁하는 이. 대결하는 이, 마치 하나의 전사를 보는 듯한 착각을 가진다. 육체가 없는 대상, 즉 실체가 없는 상관물을 두고서도 지지 않고자 투쟁하는 이들, 그들이 가지는 의지력과 그 의지력이 서리인 눈빛을 기억한다.

 

어둠을 사르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 그들은 일상의 고통을 사르기 위해 기어코 더 큰 일상 속으로 나아가는 이들이다. 밤의 어둠을 채 사르지를 우리 못하기에, 인간의 등불을 들고 모여 바다를 이루어내는 이들. 그들은 홀로 있어도 고통스럴 존재인 인간으로서 모이어, 연대하고 반목하고 투쟁하고 화해하고 화합하며, 또 동시에 갈등하더라. 먼 기원으로부터 아마, 전사의 푸른 혼이 내력을 이루고 있는. 그들은 이겨낼 수 없는 심연에 칼을 휘두르고, 갈라내는 것은 다만 스스로 잠식되어감에 대함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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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잃었다.

 

나는 그렇다면 고통스럽지 아니한 것일까. 그 경미한 고통 일체가 잠시 물러나, 나는 진공의 상태에 처해있는 것일까. 이 또한 잠깐이라마는, 정말로 그런 빈 공간엘 나는 누워 있는 것일까. 알지 못하겠다. 아무것도 감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극심한 것, 여실히 감각되는 것이 자고 일어난 오늘 일순 사라지니 나는 놀랍기도 하다마는 그것이 곧 바라던 평화가 아닌 것만이 분명하다. 바라는 것으로서의 `평화`에는 옅은 미소가 마련되어 있었음에. 그 미소는 배면에 도사리고 있기에 미리 알지는 못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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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나는 알지 못하겠다. 나는 즉 감각 일체가 멈추어 있다. 기어이 천치같이 내 팔을 꼬집어보는 수고를 감수하진 않았다. 안에서 느껴지던 것들이 자취를 감추니, 나는 천치같이 머엉하기만 하다는 말이었음에. 형체가 없는 것들에 대한 내적 감각은, 주로 운동상을 띄는 것이었고나. 멈추니 곧 모든 자취를 잃는다. 박제된 기억들로 말미암아 재현해보거나 소환해내련들, 멈추어진 것에는 어제의 그것이 가지던 아무런 힘도 입히이질 않는다.

 

나는 놀랍기까지 한 것이다. 요 근래, 아마 날이 20도 후반을 오가는 즈음의 시절로부터 나는 멈추었다는 사실이. 이런 때 무엇으로 글을 써야 하는 지를, 아직의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내 삶이 지금 고요히 멈추어 있는 때문이다. 늦은 아침을 깨고서도 더욱 늑장을 부리다간, 점심으론 늘상 제육볶음을 먹은 뒤 카페에를 서성이고, 아스팔트를 녹이던 햇빛이 자취를 감출 때 즈음해서 집엘 돌아온 다음, 밤에는 묵묵히 운동을 하곤 마는, 이 무언 無言의 일상엔 써낼만한 아무런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나를 제하곤, 써낼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농부 한 사람이 물었다. 저희에게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대지와 또한 대지의 영혼과 함께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게으름이야말로 계절의 이방인이 되는 것이며, 자랑스런 복종으로 장엄하게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행렬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대들 일할 때면 그대들은 피리가 되어, 그 속에서 시간의 속삭임은 음악으로 변해 울려 나간다. 그대들 중 누가, 모두 어울려 한 음으로 노래할 때 말 못하는 벙어리 갈대가 되고자 하는가? 


그대들은 언제나 일이란 재앙이요, 노동이야말로 불운이라는 말을 들어 왔다.

 

그러나 내 말하노라. 일하고 있을 때 그대들은 대지의 가장 깊은 꿈의 한 조각을 채우는 것이라고. 오직 그대들에게만 맡겨진 꿈을. 

또 스스로 노동함으로써만 그대들 진실로 삶을 사랑할 수 있으며, 또 노동을 통해 삶을 사랑하는 길만이 삶의 가장 깊은 비밀을 알게 되는 일이라고. 

 

허나 만일 그대들 괴로워 태어남을 고통이라 부르고 육신으로 살아감을 그대들 이마에 씌어진 저주라 일컫는다면 내 감히 대답하리라. 그대들 이마에 흐르는 땀만이 그 저주를 씻어 줄 것이라고. 

 

- 예언자 7장, 일에 대하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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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또한 삶은 암흑이라는 말을 들어 왔다. 그리고 피로 속에서 그대들 또한 지친 자들의 그 말을 되풀이한다. 허나 내 말하노라. 강한 충동이 없을 때야말로 삶은 진실로 암흑이라고. 

 

그리고 또한 모든 충동이란 깨달음이 없을 때엔 쓸모없는 것, 그리고 또한 모든 깨달음은 노동이 없다면 헛된 것, 그리고 모든 노동은 사랑이 없다면 공허한 것임을.

 

그대들 사랑으로 일한다면 그대들은 스스로를 스스로에게로 귀속시키는 것이며, 그리고 서로서로, 마지막엔 신에게로 귀속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으로 일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대들 심장에서 뽑아 낸 실로 옷을 짜는 것, 마치 그대들 사랑하는 이가 입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은 애정으로 집을 짓는 것, 마치 그대들 사랑하는 이가 살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은 자비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거두어 들이는 것, 그대들 사랑하는 이가 그 열매를 먹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은 또 그대들이 형상짓는 모든 것에 그대들만의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 그리하여 그대들 곁에는 언제나 모든 복받은 죽음들이 서서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가끔 그대들이 잠꼬대인 양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대리석을 쪼으며 일하는 이, 그리하여 돌 속에서 제 영혼의 모습을 찾아내는 이는 흙을 가는 이보다 고상한 법. 또 무지개를 잡아 헝겊 위에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이는 우리 발이 신을 신발을 만드는 이보다 고상한 법`이라고. 

 

허나 내 잠 속에서가 아니라 활짝 깨어 있는 한낮에 말하노라. 

바람은 커다란 참나무라 해서 하찮은 풀잎에게보다 더 다정하게 속삭이지 않는다고. 그러므로 바람소리를 자기만의 사랑으로 더 부드러운 노래로 변화시키는 이, 그만이 홀로 위대하다고. 

 

노동이란 보이게 된 사랑. 

 

그대들 만일 사랑을 일할 수 없고 다만 혐오로써 일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그대들은 일을 버리고 신전 앞에 앉아 기쁨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구걸이나 하는 게 나으리라. 

 

왜냐하면 그대들 만약 냉담하게 빵을 굽는다면, 인간의 굶주림을 반도 채우지 못할 쓴 빵을 구울 것이기에. 또한 그대들 원한에 차서 포도를 짓이긴다면, 그대들의 원한은 포도주 속에 독을 뿜을 것이기에. 

또한 그대들 천사처럼 노래할지라도 노래함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낮의 소리와 밤의 소리에 대하여 인간을 귀먹게 하는 것이 될뿐이기에. 

 

- 예언자 7장, 일에 대하여

 

 

글을 잃고 나는, 다른 이의 글을 뒤적인다. 이런 때에는 새삼 천치 같은 눈을 버엉하니 뜨고선, 그저 본다. 언제나 길이 지워지고 글이 스러질 때에 맨 처음으로 손을 뻗어내게 되는, 그 책을 다시 펴내게 되었다.

 

말 없는 일상 속에 오래 처하며, 내겐 남은 인간의 유산이 활자인 글뿐이었다마는, 아아, 내가 이렇듯 가끔 아주 멈춰 길을 잃게 된 까닭이란 내게 이 무언의 일상 너머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면은… 내 고요하고도 더욱 고요한 일상 너머로 많은 삶들이, 저기 현재와 미래의 경계 바깥 언저리에서 빛무리로 아른거리며 접근을 불허한다. 그러나 실상 밀어낸 것은 나이니, 나는 어느 족쇄에 속해 있는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동물 같다.

 

밀어낸 것은 나이다. 유보한 것이다. 장차 내가 손에 쥐일 보습 하나와 보습 대일 땅 하나를 가진다면… 그러니까 날 먹일 빵을 내가 굽고, 그러한 터전엘 내가 속하고… 아니, 내가 땀 흘릴 수 있는 날이 온다면…하고 바라며 미루어온 지가 오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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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과거는 언제나 슬며시 잊히고, 내가 그를 기억하고 있다고 단단히 생각한들 그것은 실지 반쯤 잊히어 망각의 안개에 덮히어 있고, 나는 어디를 걸어 지금에 도착한 지도 아리송한 대로 서 있게 된다.

 

내 일상이 어디서 불어와, 나는 어느 좌표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 감각뿐이었으랴. 제 존재에 대한 인식, 분명한 형상과 형식이랄게 없어 모호한 상관물인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 또한 멈춤과 동시에 흩어진다. 인식에는 언제나 아우성, 그리고 움직임이 필요했다.

 

또한 나는 오래도록, 3년이란 시공간 속을 사랑 없이 통째로 지나 건너왔으니, 존재의 목적을 잃고 잃은 채로, 잃었다는 사실 자체도 잊히어, 무제의 좌표 위를 도착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장차 노동을 가져본들, 그 노동을 헌사해 바칠 그 어떤 분명한 사랑, 까닭과 목적과 논리 없이도 성립될 헌사의 주체를 갖지 못하다.

 

인간의 고통, 존재를 잠식해가는 질긴 어둠을 맞서기 위해, 많은 이들은 횃불을 들고 어두운 공중에 홰홰 치더라. 그들은 겨우 희미론 제 횃불 하나로 검은 공중을 모두 사르지 못함을 알아, 다른 인간을 찾아 나섰다. 그 속에는 연대와 유대가 있고, 또 불신과 반목이 있으며, 그러므로 행복과 회의가 모두 한 자리에 있다. 한 식탁에 있다. 오롯 행복이 없으며, 오롯 고통도 사실은 적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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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한 여인이 말했다. 저희에게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의 기쁨이란 가면을 벗은 그대들의 슬픔. 

그대들의 웃음이 떠오르는 바로 그 샘이 때로는 그대들의 눈물로 채워진다. 

그러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대들의 존재 내부로 슬픔이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그대들의 기쁨은 더욱 커지리라. 

도공의 가마 속에서 구워진 그 잔이 바로 그대들의 포도주를 담는 잔이 아닌가?

칼로 후벼 파낸 바로 그 나무가 그대들의 영혼을 달래는 피리가 아닌가?

 

그대들 기쁠 때 가슴속 깊이 들여다보라. 그러면 알게 되리라. 그대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바로 그것이 그대들에게 슬픔을 주었음을.

그대들 슬플 때에도 가슴속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라. 그러면 그대들, 그대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바로 그것 때문에 이제 울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그대들 중의 어떤 이는 말한다. 

`기쁨은 슬픔보다 위대한 것이라네.`

그러나 또 어떤 이는 말한다. 

`아니, 슬픔이야말로 위대한 것.` 

 

하지만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이들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것.

이들은 함께 오는 것. 

한 편이 홀로 그대들의 식탁 곁에 앉을 때면, 

그러므로 기억하라. 

다른 한 편은 그대들의 침대 위에서 잠들고 있음을. 

 

진정 그대들은 기쁨과 슬픔 사이에 저울처럼 매달려 있다. 그러므로 오직 텅 비어 있을 때에만 그대들은 멈추어 균형을 이룬다. 보물지기가 자기의 금과 은을 달고자 그대들을 들어 올릴 때, 그대들의 기쁨 혹은 그대들의 슬픔도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을 수 없는 일. 

 

- 예언자 8장,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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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는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바닷속으로 나아가기에는, 내 불길이 너무 거세다. 나는 추방당하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롯 행복을 원한 적은 적다. 그것은 이미 유년 때부터 아주 산산이 부서진 환상이었으므로. 그러나 오롯 슬픔을 두려워 한 일이 많다. 그것은 이미 유년 때부터 자리 잡은 단단한 기억이므로.

 

슬픔이 지나치게 두려운 이는, 기쁨마저도 기피하는 일이 생기는 것일까. 아니, 기쁨을 피하는 것이 아닌, 기쁨 있는 슬픔의 자리를 감돌고 있는 모양새에 불과하다. 나는 또한 어리석어, 자주 기쁨으로 돌아오곤 하였지만, 그 바다는 늘 청무우밭과 같었다. 어리석은 것은 나의 망각이었을까. 아니, 내가 오래도록, 아마 앞으로도 인간을 너무 사랑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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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되 사랑하지 못해온 나의 일상은 지금 슬며시 좌표를 잃었던 것일까. 존재는 움직임과 아우성이 없이는 정지하고, 정지와 동시에 형체와 경계를 잃어가기 시작한다. 흩어지는 것이다. 내 거죽 경계가 두르고 있는, 이 시공간 속 존재의 경계가 바람에 화해지는 듯한 이미지.

 

사랑을 찾되 사랑을 찾지 못해온 또 다른 이의 일상은, 어떠할까. 나는 저기 어딘가에 있을 나와 닮은 이들을 궁금해 보기 시작한다. 일단의 나는, 한동안은 이 상황의 늪, 혹은 안갯속에 기거하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나도 몰래 걸어들어온 여기를 걸어나갈 길이, 또한 안갯속에 안기어 있으니 말이다.

 

분명 도시의 위로 쭈욱 뻗은 저 밤하늘 아래 어딘가에는, 아직 닿지 못한 그 누군가가 있을 것이고, 그와 닿기 위해서 내가 반드시로 밟아내었어야만 할 운명의 층계들이 있을 것이라고 일단 믿으며, 나는 글 잃은 오후를 지나 보낸다. 아직은 그 외, 너머의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을 만한 아무런 것을 내 갖지도 닿지도 못하였기에. 아직은 견디어야 할 시간 속이다. 그것만이 지금 내가 할 유일한 말일 것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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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농부 한 사람이 물었다. 

저희에게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대지와 또한 대지의 영혼과 함께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게으름이야말로 계절의 이방인이 되는 것이며, 자랑스런 복종으로 장엄하게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행렬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대들 일할 때면 그대들은 피리가 되어, 그 속에서 시간의 속삭임은 음악으로 변해 울려 나간다. 그대들 중 누가, 모두 어울려 한 음으로 노래할 때 말 못하는 벙어리 갈대가 되고자 하는가? 


그대들은 언제나 일이란 재앙이요, 노동이야말로 불운이라는 말을 들어 왔다.

그러나 내 말하노라. 일하고 있을 때 그대들은 대지의 가장 깊은 꿈의 한 조각을 채우는 것이라고. 오직 그대들에게만 맡겨진 꿈을. 또 스스로 노동함으로써만 그대들 진실로 삶을 사랑할 수 있으며, 또 노동을 통해 삶을 사랑하는 길만이 삶의 가장 깊은 비밀을 알게 되는 일이라고. 

 

허나 만일 그대들 괴로워 태어남을 고통이라 부르고 육신으로 살아감을 그대들 이마에 씌어진 저주라 일컫는다면 내 감히 대답하리라. 그대들 이마에 흐르는 땀만이 그 저주를 씻어 줄 것이라고.

 

그대들은 또한 삶은 암흑이라는 말을 들어 왔다. 

그리고 피로 속에서 그대들 또한 지친 자들의 그 말을 되풀이한다. 

 

허나 내 말하노라. 강한 충동이 없을 때야말로 삶은 진실로 암흑이라고. 그리고 또한 모든 충동이란 깨달음이 없을 때엔 쓸모없는 것. 그리고 또한 모든 깨달음은 노동이 없다면 헛된 것, 그리고 모든 노동은 사랑이 없다면 공허한 것임을. 그대들 사랑으로 일한다면 그대들은 스스로를 스스로에게로 귀속시키는 것이며, 그리고 서로서로, 마지막엔 신에게로 귀속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으로 일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대들 심장에서 뽑아 낸 실로 옷을 짜는 것, 마치 그대들 사랑하는 이가 입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은 애정으로 집을 짓는 것, 마치 그대들 사랑하는 이가 살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은 자비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거두어 들이는 것, 그대들 사랑하는 이가 그 열매를 먹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은 또 그대들이 형상짓는 모든 것에 그대들만의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 그리하여 그대들 곁에는 언제나 모든 복받은 죽음들이 서서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가끔 그대들이 잠꼬대인 양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대리석을 쪼으며 일하는 이, 그리하여 돌 속에서 제 영혼의 모습을 찾아내는 이는 흙을 가는 이보다 고상한 법. 또 무지개를 잡아 헝겊 위에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이는 우리 발이 신을 신발을 만드는 이보다 고상한 법`이라고. 

 

허나 내 잠 속에서가 아니라 활짝 깨어 있는 한낮에 말하노라. 바람은 커다란 참나무라 해서 하찮은 풀잎에게보다 더 다정하게 속삭이지 않는다고. 그러므로 바람소리를 자기만의 사랑으로 더 부드러운 노래로 변화시키는 이, 그만이 홀로 위대하다고. 

 

노동이란 보이게 된 사랑. 

 

그대들 만일 사랑을 일할 수 없고 다만 혐오로써 일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그대들은 일을 버리고 신전 앞에 앉아 기쁨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구걸이나 하는 게 나으리라. 

 

왜냐하면 그대들 만약 냉담하게 빵을 굽는다면, 인간의 굶주림을 반도 채우지 못할 쓴 빵을 구울 것이기에. 또한 그대들 원한에 차서 포도를 짓이긴다면, 그대들의 원한은 포도주 속에 독을 뿜을 것이기에. 또한 그대들 천사처럼 노래할지라도 노래함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낮의 소리와 밤의 소리에 대하여 인간을 귀먹게 하는 것이 될뿐이기에. 

 

- 예언자 7장, 일에 대하여  

 

 

다음에는 한 여인이 말했다. 

저희에게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의 기쁨이란 가면을 벗은 그대들의 슬픔. 

그대들의 웃음이 떠오르는 바로 그 샘이 때로는 그대들의 눈물로 채워진다. 

그러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대들의 존재 내부로 슬픔이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그대들의 기쁨은 더욱 커지리라. 

도공의 가마 속에서 구워진 그 잔이 바로 그대들의 포도주를 담는 잔이 아닌가? 칼로 후벼 파낸 바로 그 나무가 그대들의 영혼을 달래는 피리가 아닌가? 

 

그대들 기쁠 때 가슴속 깊이 들여다보라. 그러면 알게 되리라. 그대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바로 그것이 그대들에게 슬픔을 주었음을. 그대들 슬플 때에도 가슴속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라. 그러면 그대들, 그대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바로 그것 때문에 이제 울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그대들 중의 어떤 이는 말한다. 

`기쁨은 슬픔보다 위대한 것이라네.`

그러나 또 어떤 이는 말한다. 

`아니, 슬픔이야말로 위대한 것.` 

하지만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이들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것.

 

이들은 함께 오는 것. 한 편이 홀로 그대들의 식탁 곁에 앉을 때면, 그러므로 기억하라. 다른 한 편은 그대들의 침대 위에서 잠들고 있음을. 

 

진정 그대들은 기쁨과 슬픔 사이에 저울처럼 매달려 있다. 그러므로 오직 텅 비어 있을 때에만 그대들은 멈추어 균형을 이룬다. 

보물지기가 자기의 금과 은을 달고자 그대들을 들어 올릴 때, 그대들의 기쁨 혹은 그대들의 슬픔도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을 수 없는 일. 

 

- 예언자 8장,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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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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