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을 어떻게 작성하는 거였더라 [사람]

글태기(글쓰기+권태기)를 겪은 사람의 한풀이
글 입력 2020.06.1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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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의 첫 문장부터 선포해본다. 글을 쓰는 법을 까먹었다. 글을 작성하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작성하는지 모르겠다는,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싶다만 진짜다. 정말로 모르겠다.

 

사실 이번이 처음으로 글이 막힌 적은 아니다. 대학교 레포트나 자기소개서를 쓰면서도—매번 어떻게든 제출하긴 하지만— 막막한 느낌을 받아왔지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된 이후를 세어 보자면 지금을 제외하고 한 번 있었다.

 

그때와 지금의 글태기가 완전히 같거나 혹은 다른 존재는 아니다. 전 단계를 거친 후에야 오는 새로운 단계에 직면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전 단계는 에디터 활동이 반 정도 넘어갈 때 왔다. Project 당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대표님과 티타임을 가지면서도 말했던 주제이니 4월 말이나 5월 초 즈음으로 예상한다.

 

 

 

매너리즘


 

그 당시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방식, 문체에 대해 상당히 질려버린 상태였다. 일기장을 제외하곤(심지어 일기장도 쓰는 것이 목적일 뿐 다시 잘 안 펼쳐본다.) 이처럼 주기적으로 글을 쓰고 재확인해볼 방도가 없었으니 못했지만, 이제는 강제로 내 글을 분석할 수밖에 없어졌다.

 

내 글을 수능 공부를 하듯 하나하나 수고스럽게 뜯어보지 않더라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매번 새로운 워드 파일을 열어 다른 주제에 관해 쓰는데도 느껴지는 익숙함. 개인적으로 글을 쓸 때 중복되는 어휘의 사용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실제로 확인해보면 겹치는 어휘도 없는데 마음은 계속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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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나는 리뷰를 쓰던, 오피니언을 쓰던, [사람] 카테고리에 속하는 글이 아니더라도 내 사적인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들어가야 글을 쓸 수 있었다. 정말로, 그게 아니면 아주 짧은 글도 시작하기 힘들어했다. 아무리 내가 다면적인 사람이라고 할지언정, 두 달 동안 약 15편 정도의 장문을 작성했으니 매너리즘에 안 걸릴 수가 있나.

 

이 단계를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변 사람들 덕이었다. 글을 기고하는 입장에서는 질리는 것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독자로선 그 사람의 개성으로 느껴지고 오히려 자신은 중독된다며 미묘히 패러프레이징 해주었던 인터뷰어님, 지루함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써낸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둬야 한다며 격려해주신 대표님 등등.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괜찮는데 그러려니 해야지.’ 하고 넘어갔다. 그때는.

 

 

 

매너리즘 그 이후


 

하지만 지금 6월, 에디터 활동의 막바지에서 질리는 글조차도 시작하지 못하게 된 내가 있다. 대체 내가 어떻게 매주 1개씩, 심할 땐 3개까지 썼던지 이해도 안 되고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매너리즘 과정 중반과 그 이후에 쓴 글들을 보면 확실히 전과 달라진 모습이 보이긴 한다.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글에 좀 더 정성이 들어갔다. 전반적인 글의 길이가 길어졌고, 글을 ‘만들어내는데’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

 

글의 구조화, 작성, 확인의 단계가 모두 한 워드 파일 내에서 진행됐다. 본격적으로 타이핑하기 직전 정해둔 소재 하나만 가지고 의식의 흐름으로 무작정 적는다. 그리고 조금 더 깔끔히 붙여 넣고, 순간의 느낌으로 사진 넣을 곳을 정한다. 하지만 이제는 의식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몇 번 더 거친다. 빈 종이에 임시 구조를 잡고 나서야 그 안에서 마구잡이로 적어낸다. 그리고 워드 파일도 여러개 열어서 같은 제목의 초고, 중간, 최종을 거쳐 좀 더 깔끔히 만들어낸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 과정이 모두 잘 진행되면 완성도야 높아지지만, 삐끗하는 순간부턴 불안감이 튀어나온다. 작업의 60%를 미리 구성해 놓았더라도 글이 막히는 순간 끝이었다.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글은 안 써진다. 결국엔 아예 새로운 주제가 선택되고, 괴로운 준비과정은 한 번 더, 그러다가도 또 글의 통일성에서 길을 잃기도 해 더는 수정할 수 없는 출력 상태가 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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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사용한 표현을 다시 빌려 보자면, 전에는 분명 글을 작성했다면 이제는 글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내내 불평 섞인 한탄을 늘어놓았지만,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보면 이게 바로 아마추어에서 탈피하는 과정인가 싶기도 하다. 다시 말해 나는 감성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이젠 감정과 글을 조금 분리해 놓을 수 있게 된 느낌이랄까.

 

개인적인 끄적거림이 아닌 글이 되고 있다는 걸 반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 메인과 많이 본 글에 올라가는 횟수가 점차 많아지면서 소통 가능한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는가 싶어 좋다가도, 이제는 글을 쓰는 게 좀 힘들다. 과연 잘 쓴 글인지 의문을 가득 채운 채 내 손을 떠나보낸 글은 ‘왜 좋아하지?’라는 또 다른 의문을 내게 남긴다. 독자가 괜찮으니 됐다며 넘겼던 지난날과 달리 내가 괜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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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압박감은 아니다. 방법을 모르더라도 어떻게든 손을 굴려 써낼 수는 있으니. 지금 이 한 바닥의 글이 복에 겨운 한풀이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내 안에 무거운 감정을 끄집어낼 때조차 마지막 부분에 조금 희망적인 어투로 혹은 그런 문장을 넣어 끝맺는다. 가장 자주 등장하는 접속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나만 보는 글이 아니기도 하고, 그렇게라도 써야 내가 정말 괜찮아질 것 같으니깐.

 

그런데 이번엔 다르게 끝내 보고 싶다. 매너리즘과 그 이상에서 오는 한풀이 자체가 너무나도 솔직한 소재이기도 했고, 또 금세 글을 만드는 데 익숙해진 내가 다시 글을 ‘작성’해본 글이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한다. 글의 마지막 문장에서조차 나는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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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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