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경험이 뭐길래 [사람]

실패와 성공 모두 소중한 나만의 스토리이다
글 입력 2020.06.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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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독서토론모임에 들어갔다. 졸업 후의 계획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전에 생긴 공백기를 채울 명분을, 뜨문뜨문하던 책 읽기에 강제성을 붙여보고자 시작했던 활동이었다. 지원서에는 총 3가지의 질문이 존재했는데, 그중 하나는 지원자가 6개의 주제 중 1개를 택해 작성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질문은 바로 ‘경험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는가?’였다.

 

몇 개월이 지난 지원서 파일을 다시 열어 확인해본 내 답변은 간략히 이랬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저는 경험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인지 몰랐습니다. 밖보다는 집이 좋았고, 게으르기도 했으며,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게 두렵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한정된 제 생각과 주위에서 들려오는 조언들로 온갖 일들을 ‘간접’경험을 한 후에는 이미 저에게 경험한 일로 치부됐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했던 교환학생과 휴학으로 채워진 제 1년동안 기적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환경이 바뀌더라도 ‘나는 이런 아이야’라며 울타리를 쳐놓고 활동했던 시간들은 저에게 큰 경험을 주지 못했고 이런 깨달음을 얻고 나서야 저는 변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이 경험했던 것을 듣는 것만으로 ‘나의’ 경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각보다 사람의 가치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경험에 관한 생각이 180도 다르게 재정립됐다고 단언할 수 있다. 변한 생각은 위에 적어놓은 그대로였다.

 

과거의 나는 굳이 경험하며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아 했다. 나이에 비해 성숙했던 성격 탓인지, 친구들과 경험의 실패로 투정부리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인생을 더 산 언니, 오빠들 그리고 어른들에게 듣는 대화가 좋았다. 그들의 조언을 듣고 뼛속까지 숙지한 건 아니지만 끄덕이며 긍정하고, 이에 대한 반문보단 흡수가 편했다.

 

그렇게 내 인생은 큰 리스크를 감내하지 않고 무리 없이 흘러갔다. 아니다. 최소한의 실패 하지만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며 살고 싶었던 내 바람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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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자산을 공부하게 되면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바로 ‘High risk, High return’이다. ‘위험이 큰 금융 자산을 보유하면 시장에서 높은 운용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관계’를 말하는데, 그렇게 나는 인생에서 낮은 위험을 선호하며 너무도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 다른 이의 경험과 생각을 내 삶에 쉽게 허용해줬을 뿐만 아니라, 위험으로 얻는 즐거움을 과감히 포기하며 자발적으로 무미건조한 삶을 택했다.

 

가장 기본적으로 실패가 주는 슬픔을 두려워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의 슬픔이 싫고, 한 번의 실패로 꽤 오래 슬픔을 영위하는 저 자신과 낭비되는 시간이 싫었다. 자원은 한정돼있고 욕심은 지나치게 많으니 행동의 주저함과 수많은 기회비용은 자연스레 따랐고, 특유의 잡생각으로 가득 찬 본성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마침 나를 묘사할 수 있는 정확한 표현이 생각났다. 효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인간. 그러다 보니 학생 때부터 통일성 없는 활동을 해내는 친구들이 이해가 잘 안 됐다. ‘그걸 왜 해? 하면 뭐에 도움이 되는데?’ 후에 그 친구들이 무턱대고 했던 활동이 그 당시 결과적으론 성공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 오는 안도감을 은근히 즐기면서 안위했다. 참으로 우습고도 애송이었다. 그러한 활동이 겉으로 흔적을 보이지 않고 남긴 결과들과 그 축척의 결과를 모르면서 멋대로 평가하고 판단했다. 스스로는 겁에 질려 숨어버린 주제에 말이다.

 

최근 읽었던 두 권의 책에서는 이처럼 말한다.

 

 

‘삽질의 부재는 경험의 부재이며, 경험의 부재는 그 사람 능력의 크기를 제한한다.’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자기 자신에 대한 정의이든, 신에 대한 정의이든, 혹은 인생에 대한 정의이든 자신의 진실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것이라면 오류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리를 삶 속의 ‘경험’이라는 축제로부터 차단시키는 금지 목록들은 더욱 그렇다. 모든 정의는 베껴 적은 것이고 과거의 것이다. 삶에대한 정의가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정의 속에 잠들게 된다는 말은 중요한 진리이다.’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한계치는 분명 다르다. 수많은 사람의 조언과 일침은 참고자료일 뿐, 내 삶을 조정하고 결정지을 수는 없다. 남은 후회로 인한 자책의 대상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향할 때만큼 무책임한 짓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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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을 갔을 때의 경험이다. 집에서 가져온 샴푸가 다 떨어졌었고 마트에 가서 새로운 샴푸를 고르면 끝나는 일이었다. 나는 굳이 마트에 가서 인터넷을 뒤져가며 굳이 한국사람들이 추천한 샴푸를 찾아냈는데, 후기와는 달리 별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룸메이트가 10초 만에 고른 샴푸가 훨씬 나에게 맞았다. 자기 자신한테 제일 좋은 걸 대접해주고 싶었다는 변명도 나를 방어하지 못할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나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경험에서 도피하며 안정감에 취한 결과, 항상 나는 누군가의 follower에 불과했다. 특정 분야의 최고가 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내 삶의 주도권을 가볍게 내어주고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단순하고도 피곤한 삶을 살다니. 스스로 빛낸다는 이름값은 고사하고 빛 나는 사람들을 찾아 따라다니는 꼴이라니!

 

어느 순간부터 나이에 맞지 않게 인생을 다 살아버린 것처럼 생기를 잃어버린 이유가 있었다. 고통스럽게 깨닫고 난 뒤에야 바뀌었다. 이제는 쉽게 미래를 단정하며 내 행동에 제어를 걸지도 않는다. 해보고 싶다는 작은 느낌만 있어도 해볼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생각의 과정을 최대한 줄여내고 일단 저질러버린다. 아직도 정해져 있지 않은 미래에 외줄 타기를 하는 듯한 불안감은 여전하지만, 이 불안함은 오히려 내게 스릴감을 맛보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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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상경을 전공한 내가 정기적으로 글을 작성하고 있다. 인상 깊은 구절을 메모하느라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하는 데 배로 걸렸던 시간은 글을 쓰는데 참고할 문장과 어휘력에 도움을 주었다. 한때는 나에게만 들이닥치는 것 같았던 시련이 후엔 글의 소재, 이를 극복해낸 나만의 노하우로 자리 잡았다. 무수히 많은작은 경험들이 이제야 발현되고 곧 내게 유니크함을 선사한다.

 

타이밍 좋게 모든 순간이 맞아떨어지는지 아니면 내 시각이 바뀌어서 그런지 몰라도 확실히 내 본연의 색은 점점 선명해졌다. 이제야 밝고도 맑은 내가 되었다. 누군가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하고 싶은 걸 착실히 해내서 멋있다고.

 

글쎄, 아직은 좀 얼떠름하다. 그래도 이제는 누군가의 follower라기보단 스스로 빛을 일구어내는 사람인 게 인정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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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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