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용히 무언가를 삼키듯, 별을 쫓는 아이 [영화]

별을 쫓는 것은 상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
글 입력 2020.06.1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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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별을 쫓는 아이는 아가르타라는 저승과 같은 세계에 가게 된 아스나의 이야기이다.

 

아스나는 슌을 잊지 못해 지상을 떠나 아가르타에 가지만 그곳에서 자신이 맺었던 지상에서의 관계들을 떠올리게 된다. 같이 아가르타에 가게 된 모리사키 선생님이 자신의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아스나를 희생시키려 할 때 슌의 동생 신의 도움으로 아스나는 무사히 살아서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상실감을 끌어안고 살아가라는 거야.

인간이 받은 저주지.

 

 

아스나는 외로움 때문에 그곳까지 갔다지만 모리사키 선생의 맹목은 도저히 그냥 봐줄 수가 없을 정도로 지상에서의 삶을 완전히 포기한 채 아내를 되살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맹목(盲目)은 글자 그대로 실현이 되어 그는 아내를 되살리는 대가로 눈이 멀게 된다.


 

살아있는 사람이 중요해.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이 중요하다며 아스나를 구한 신 덕분에 모리사키 선생은 눈을 잃은 대가로 몇 분 동안만 아내를 만난 꼴이 되고 아내는 선생에게 행복을 찾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살아있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은 모리사키 선생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상실감을 끌어안고 그대로 살아가야 한다. 행복을 찾으면서 말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아스나는 별을 쫓지 않는다. 아가르타 소년인 슌이 왜 지상에 아스나를 만나러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만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만 같은 별을 보다가 아가르타의 문지기가 죽듯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는다.

 

별이 구체적인 목표물로 나오지 않는 이 작품에서는 먹는 행위가 많이 나온다. 상실에 관해서 생각해보면 먹는 행위는 무언가에 대한 상실을 견디는 외로움을 수용하는 것, 즉 별을 쫓는 행위와 관계가 있다. 인간이 무언가를 삼키고 무언가로 입 안의 빈 공간을 채우는 먹는 행위는 혼자서 외로움을 견디며 무언가를 갈망하는 행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외로운 아스나가 라디오를 들으며 혹은 집에서 홀로 있으며 하는 것은 샌드위치를 먹고, 밥을 지어 먹는 일이다. 또 팔을 다친 채 죽은 슌을 상징하듯 한 쪽 팔이 없는 아가르타의 문지기는 아스나를 수호하던 고양이 미미의 죽은 몸을 삼키고, 생사의 문에 아스나와 신을 데려다 줄 때 그 둘을 입으로 삼킨 채 절벽에서 떨어진다.

 

아스나와 신을 삼킨 후의 모습은 마치 임산부가 아이가 있는 배를 쓰다듬는 모습처럼 보인다.

 

 

[크기변환]별 보는 아이.jpg

 

 

세상과의 교류를 끊고 살아가는 아가르타의 이족이라는 괴생명체들도 살아가기 위해 어두운 그늘 속에서라도 아스나를 집어 삼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교류를 끊어버렸기 때문에 삼키는 행위는 저지된다.

 

꼭 삼키려는 대상이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외로움과 관계 맺기를 견디기를 마다한 채 생명을 연장하려는 것은 이치를 거스르려는 것이기 때문이어서일 것이다. 마치 생과 사를 마음대로 바꾸려고 했던 모리사키 선생처럼 생의 이치를 거스르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살아있는 생명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삼키고 먹는 행위는 상실감을 견디기 위해 해나가는 최소한의 일인지도 모른다. 견디는 일은, 인간에게 주어진 저주이자 축복이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치이기도 하다.

 

아스나처럼 아가르타에서의 일 때문에 지상에서의 관계 그 모든 것을 지울 수는 없으므로 지상 즉 현재의 관계와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견디는 일도 필요하다. 아가르타의 신이 타고 있는 배가 하늘을 건널 때 울리는 종소리는 그 사실을 온 세상에 알리려는 듯 조용히 그러나 멀리 멀리, 울려퍼져 나간다.

 

생명은 상실감과 외로움을 끌어안고 살아가다가 죽어서 좀 더 커다란 것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죽은 아가르타의 문지기의 마지막 노래는 신이 탄 배의 종소리처럼 어디까지든 형태를 바꾸어 전해지고 세계에 영원히 기억된다. 지금도 어떤 곳에서는 상실감을 끌어안고 살아가라는 축복이 어떤 형태로든 전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에서 우리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무언가를 삼키면서 외로움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아마 이것이 별을 쫓는 아이가 전하려는 무언가일 것이다.

 

 

 

김수연이다.jpg

 

 

[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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