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억할만한 것을 만들지마 - 환상의 마로나

글 입력 2020.06.10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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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사람과 관계 맺기 위해선 그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알고 기억하며 대면하는 순간마다 환기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얼마나 아는가에 의해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정의됩니다. 많이 알수록 친한 관계일 겁니다. 모를수록 친하지 않은 관계일 겁니다. 그 사람을 더 알고 싶고 더 친해지고 싶어서 신상을 뒤적인 때가 있었습니다. SNS를 헤집고 접점이 있는 사람을 수소문했습니다. 그렇게 안 것들을 기반으로, 혹은 별개로 몇몇 사람들과 친해졌습니다. 친밀감은 맹세를 하게 만듭니다. 이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거란 맹세를 속으로 한 적이 많습니다.


수많은 관계를 겪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좋은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맺은 적이 종종 있습니다. 바위 같은 관계가 없다는 걸 압니다. 관계 역시 흘러가는 것들의 일종임을 압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영원함을 담보하는 관계가 없다는 걸 알아도 때때로 나는 맹세를 합니다. 당신과 함께하는 순간이 즐거워서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영원한 관계를 이룩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맹세는 말 뿐입니다. 맹세는 맹세하는 순간에만 유효합니다. 좋았던 순간에, 즐거웠던 순간에, 당신의 장점만 보이던 순간에 영원하자고 맹세하는 건 쉽습니다. 내가 변합니다. 당신도 변합니다. 상황도 변합니다. 삶은 우리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아서 관계를 난처한 지경에 이르도록 합니다. 우리는 싸우며 각자의 치부를 공격하고 기어이 서로에게 상처를 새깁니다. 도무지 아귀가 맞지 않는 구석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역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는데 시간과 상황이 그러지 못하도록 나와 당신을 끌어당깁니다. 대화하는 시간을 내는 게 힘이 부치고 귀찮습니다. 얼굴을 볼 수 없는 나날이 이어집니다. 그 때부터 관계는 휘발됩니다. 그렇게 많은 맹세를 했는데 휘발되고 흘러간 관계들이 많습니다.


관계가 흩어져도 당신에 대해 알았던 것들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어떤 앎은 기억이 됐습니다. 기자가 되고 싶어 수첩을 끼고 다닌 W. 헤실 거리는 표정이 얼굴에 붙어있던 J, 조악한 농담을 할 때마다 경멸하던 B, 힙합을 좋아해서 가사를 읊고 다녔던 K. 이미 지나가서 복구할 수 없어졌지만, 어떤 “관계”라고 부를 수 없는 사이가 됐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여전한지 궁금한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괜히 허탈해집니다. 그게 왜 궁금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원한 관계가 없다는 걸 겪었음에도 아직까지 누군가와 관계 맺고 유지하는 일에 전전긍긍 하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좀 더 힘들이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2.


 

<환상의 마로나>는 관계에 대한 영화입니다. 이별에 대한 영화입니다. 주인이 바뀔 때마다 마로나의 이름도 바뀝니다. 마로나가 주인이 누군지 인지하지 못할 무렵 마로나의 이름은 “아홉”이었습니다. 그 때 마로나는 행복했습니다. 곁에 남매가 있었고 엄마의 품이 울타리를 둘러줬습니다. 행복은 잠깐 비치는 볕 같아서 행복이라고 불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행복을 앗아갑니다. 마로나는 엄마 곁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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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나의 첫 번째 주인은 마눌입니다. 마눌은 그를 “아나”라고 부릅니다. 이름을 붙이고 호명하는 행위는 관계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이름은 다른 무엇인가로 대체되지 않는 언어입니다. 이름을 다른 낱말로 치환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서로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우리는 우리 관계가 고유하고 특별함을 확인합니다.


마눌은 보잘 것 없는 집을 제공한데에 미안해하지만 마로나는 개의치 않습니다. 마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됩니다. 그라는 존재가 특별합니다. 보잘 것 없지 않습니다. 그와 관계 맺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로나의 마음은 들뜨고 일렁입니다. 나도 비슷했습니다. 우리도 비슷했습니다. 당신이 거기 있고 당신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내 존재가 한껏 차오르는 느낌을 받은 적 있습니다.


마눌에겐 욕망이 있습니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보잘 것 없음을 비범함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건 성취욕이라고 불리고 꿈이라고도 불리는데 때때로 그것은 지금 쥐고 있는 것들의 비범함을 잊게 만듭니다. 인간은 자기 존재의 특별함을 잊고 자꾸 무언가를 쫓으려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눌은 꿈에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나서부터 자기가 초라하다고 되뇝니다.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이 오히려 자기 발목을 잡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 때부터 마로나는 더 이상 그에게 행복을 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마눌은 이제 마로나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의 한숨과 후회와 초라하다는 자각은 마로나에게도 전염됩니다. 마로나는 떠납니다. 그러면 마눌이 행복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아나”라는 이름도 이제 사용될 일이 없습니다.


마로나는 폐허에서 뒹굽니다. 쓸쓸합니다. 그 쓸쓸함을 구제해준 것 또한 관계입니다. 이스트반이 마로나를 발견합니다. 먹을 것을 주고 집을 만들어줍니다. 마눌이 그랬던 것처럼 이스트반은 마로나에게 이름을 답니다. “사라” 어쩌면 마로나는 이스트반에게서 마눌을 본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름을 붙이던 당신. 내게 이름을 붙이며 특별하다고 말해주는 당신. 이 관계가 특별하다고 말하는 당신. 마로나는 이스트반을 사랑합니다. 그럼에도 이스트반이 처음부터 마로나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은 건, 책임 때문일 겁니다. 그는 이미 어쩔 수 없는 관계 때문에 버겁습니다. 엄마가 그렇고 아내가 그렇습니다. 자기 손으로 절단 할 수 없는 관계를 기우고 이어서 힘겹습니다. 결국 마로나를 집에 데려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에서 부담해야할 책임의 양이 늘어납니다.


마로나는 이제 불행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이별의 조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스트반이 감당할 책임의 양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까지 이를 때, 마로나는 마눌과 그랬던 것처럼 그와도 언젠가 이별하리란 걸 예상합니다. 이스트반이 좋아해서 마로나 역시 공 던지기를 좋아합니다. 기어이 그는 공을 던지고 사라집니다. 이스트반은 관계의 부담을 회피한 겁니다. 비겁합니다. 서로 좋아하는 일을 마지막으로 하면 괜찮은 이별이 될 거란 마음에서였을까요. 마로나는 앞으로 공 던지기를 좋아할 수 있을까요.


마로나는 냉소적으로 변합니다. 행복의 다음 순번이 고통임을 압니다. 삶이 그렇게 생겨먹은 걸 압니다. 다음 주인인 솔랑주가 마로나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마로나에게 솔랑주는 눈이 먼 사람입니다. 애정과 사랑에 기반한 관계는 눈을 멀게 합니다. 내게 부과된 현실의 짐을 잊게 합니다. 솔랑주가 그렇습니다. 그는 마로나를 사랑하지만 그래서 눈이 멀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에게만 집중하도록 하는 힘이 있지만 동시에 다른 것들을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합니다. 마로나는 압니다. 솔랑주의 사랑 역시 한시적일 것임을 압니다.


“기억할만한 것을 만들지마” 마로나는 인간들에게 그렇게 외칩니다. 실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영원한 건 없습니다. 특히 관계가 그렇습니다. 마로나는 모든 관계가 헤어짐으로 끝나는 걸 압니다. 어떤 관계에서 영원히 멈추는 시간 같은 게 없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기억할만한 것을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기억은 때때로 환기돼 마음을 아리게 하니까.


그래서 마로나는 이제 누가 자신을 어떻게 부르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 관계가 언젠가 흩어지고 조각날 거란 짐작을 마음에 품고 삽니다. 시간이 지나고 솔랑주는 더 이상 안대를 착용하지 않습니다. 사랑에 눈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관계를 귀찮아하고 이전만큼 애쓰지 않습니다. 마로나도 초월한 듯 보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마지막에 마로나는 솔랑주에게 뛰어갑니다. 그의 인장에 무언가를 새겨놓고 맙니다. 알아도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아무리 냉소적으로 마음먹고 기억할만한 것을 만들지 않으려 애써도 사랑은 찾아오고 사랑하는 사람이 또 다시 생깁니다. 마로나는 끝까지 솔랑주를 사랑했습니다. 마로나는 아마 솔랑주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겁니다. 솔랑주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 겁니다.

 

 

 

3.


 

영화를 다 보고 나선 화가 났습니다. 집에 와선 울먹거렸습니다. 내 곁을 채우고 지나갔던 관계들이 생각나서 그랬습니다.


나는 아마 또 다른 누군가와 만날 겁니다. 또 흘러가는 인연을 대면하게 될 겁니다. 맹세하지 말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마도 계속 맹세를 할 것 같습니다. 마로나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어쩔 수 없습니다. 삶은 허무한 재귀 같은 거니까. 같은 일을 똑같은 모양으로 저지르는 것. 같은 맹세를 수없이 하게 되는 것.

 

나는 마지막들을 떠올립니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울먹거렸습니다. 누군가는 그게 마지막은 아닐거라는듯한 상냥한 표정이었습니다. 나는 마지막의 그들을 기억합니다. W는 여전히 기자가 되고 싶은지. J는 아직도 웃는 얼굴인지. B의 그 경멸하는 표정은 그대로인지. K가 요즘 좋아하는 힙합은 무엇인지. 그들 모두 기억이 됐습니다. 그들 다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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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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