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통이 부여하는 생명력 - 트라우마 사전 [도서]

글 입력 2020.06.0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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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다양한 요소가 있다. 그 중 상처와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인물의 깊은 내면에 가까이 접근하는 방법이다.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어떤 행동을 할지,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할 수 없을 때가 있을 것이다. 창조자의 이해가 부족한 캐릭터는 줄에 매달린 마리오네트처럼 삐걱거리며 부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캐릭터에 자연스러운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해 봐야 할 책 한 권을 소개한다.

 

 

 

트라우마 사전


 

트라우마 사전_표지 입체.jpg

 

 

인물을 창조할 때 상처(트라우마)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현실감 있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원한다면 인물의 두려움과 고통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한다. '작가를 위한 캐릭터 창조 가이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 <트라우마 사전>은 무엇보다 캐릭터의 '트라우마'에 집중하여 인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책은 크게 배신, 범죄 피해, 사회적 부정의와 개인적 고난, 실패와 실수, 어린 시절의 특정한 상처, 예기치 못한 불상사, 장애와 미관 손상으로 구분되어 각각의 트라우마 항목들을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

 

구체적 상황, 훼손당하는 욕구, 생길 수 있는 잘못된 믿음, 가질 수 있는 두려움, 가능한 반응과 결과들, 형성될 수 있는 성격특성, 상처가 악화될 수 있는 계기 그리고 상처를 직면하고 극복할 기회라는 기준들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바로 적용해 볼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며 세심하게 나와 있다.

 

 

 

고통이 만드는 맥락(context)


 

트라우마는 이 인물이 무엇을 위해 혹은 무엇이 두려워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맥락을 부여해 준다. 이야기에 맥락이 없다면 우리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 없다.

 

최근 많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지선우(김희애)를 예로 들어보자. 지선우는 어린 시절 부모가 사망하는 트라우마를 겪었다. 지선우는 사고사처럼 보이는 이 사건이 사실 아버지의 외도를 알게 된 어머니가 행한 동반자살임을 알게 된다.

 

지선우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로서 일 중독의 경향을 보이며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약간의 강박증이 있고, 와인을 자주 마시며, 예민하다. 부모의 사망이라는 상처로 충분히 발현될 수 있는 증상들이다. 지선우는 안전과 안정, 애정과 소속감에 대한 욕구를 채우지 못했기에 이태오(박해준)을 만나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자 했다.

 

준영이의 부모가 되면서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일궈냈다고 생각하던 찰나, 배우자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다. 지선우의 안전과 안정, 애정과 소속감에 대한 욕구는 무참히 짓밟히고 만다. 지선우에게는 두 개의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지선우의 상처를 목격한 뒤 극 초반의 불안정하고, 자식에게 집착하며, 자해적인 태도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지선우의 고통을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한 시청자들은 그에게 이입해 복장이 터져가면서도 드라마를 계속 보게 되는 것이다.

 

 

 

보여주기


 

책의 저자들은 독자에게 트라우마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다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독자들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기 위해서는 흐름과 리듬, 속도감이 중요하다. 지루하고, 궁금하지도 않은 캐릭터의 고통이 상세하게 나열되어 봤자 끝까지 읽히지 않는다면 소용없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작가의 역량에 달려있다. 저자는 '말하기 telling' 보다는 '보여주기 showing'의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어떤 풍경이 멋지다는 것을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이야기한다 해도 풍경을 한 번 보는 것만 못 하다.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대사로 줄줄 읊는 것만큼 재미없는 방식도 없다.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보여줘야 할까? 보여주기의 방법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으니 책으로 확인해 보기 바란다.

 

 

 

사전의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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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를 할 때 무작정 영어 사전을 보며 나오는 단어들을 조합해 영작하지 않는다. 스스로 먼저 무언가를 만든 다음 잘 모르는 부분은 사전을 참고해 이해해 가며 보충한다.

 

이 책의 사용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먼저 자신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그다음 캐릭터의 상황에 맞는 트라우마를 고민해보고 부족한 부분을 이 책에서 얻어가면 된다. 이 책은 정답이 적혀 있는 해답지가 아니다. 캐릭터에게 생명력을 부여하는 책임은 작가에게 달려있음을 잊지 말자.

 

창작을 위한 사전답게 작가들이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을 서문의 '피해야 할 문제들' 파트에서 상세하게 다뤄주고 있다. 이야기를 쓰기 전, 쓰는 중, 쓴 후에 걸쳐 여러 차례 반복해 읽어야 할 부분이다. 창작이라는 힘겨운 과정을 이 책과 함께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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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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